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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작가 탐구 ① 안지산] 그림에 던진 질문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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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8호 윤하나⁄ 2016.08.26 18:09:18

▲안지산, '반지하(Semi-basement)'. 180 x 200cm, 캔버스에 유화. 2016. (사진 = 합정지구)

안지산 작가의 다부진 손에는 물감이 오래 머물다 간 흔적이 남았다. 그는 직접 자신의 손과 발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거나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직접 찰흙으로 빚은 토끼를 그리고 그 토끼에게 그림에 대해 묻기도 했다계속 그림을 그리면서도 , 그리고 무엇을 그려야 할까?’란 고민을 직접 캔버스로 끌어들이는 작가 만났다.

 

반지하의 낙서(落書)

어지럽게 낙서 된 거실 저편에 쌀자루에 발을 딛고 선 아이가 있다. 아이는 손을 높이 뻗어 까치발을 세우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린다. 대체로 모습은 다르지만, 그림 속 공간은 작가의 반지하 작업실과 어딘가 닮았다. 작업실에서 낙서하는 어린이는 과장을 조금 보탠 작가의 자화상이 아닌가.

 

   

▲안지산, '발끝으로 서다(Stand on Tiptoe)'. 90.9 x 60.6cm, 캔버스에 유화. 2016. (사진 = 합정지구)

  

반지하그림 옆에는 또다시 발끝으로 선 누군가가 있다. 매끈하게 광이 나는 레자의자 위로 가지런한 발이 발꿈치를 세운 채 가까스로 무게를 지탱하며 서 있다. 연약한 발목을 따라 긴장된 발가락이 있는 힘을 다해 의자를 움켜쥔다. 상황 그 자체로 아찔한 이 그림은 누군가에겐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단순히 전구를 갈아 끼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현재의 순간이다.

 

상대적으로 데뷔 시기가 늦었어요. 학교도 다 마치고 전시를 제대로 시작한 게 2012년이니까…안지산은 한예종 3학년 때 불현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독학으로 여러 가지 표현 기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에서 더 나아가고 싶었던 그는 직접 손으로 빚은 무언가를 그리거나, 붓이 아닌 손발에 물감을 묻히고 흔적을 남기는 실험들을 시작했다. “그림은 그림만으로 존재할 수 없잖아요. 작가-대상-캔버스 이 셋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이렇게 다양한 행위를 실행하면서 마치 낙서(落書, 떨어지는 글·그림)하는 어린아이 같은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들이 이미지를 기획하고 발상과 개성을 집어넣고 '플레이'하는 것, 저도 그렇게 작업하는 측면이 당연히 있죠. 거기에 대한 성취감은 작가 아니면 몰라요. 쾌감이 있어요. 하지만 플레이할 캔버스와 도구에 손대면서 자연히 자기 세계가 펼쳐지기 이전에 고민을 한번 해보자는 거죠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자신도 없지만,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작가인 저는 뭘 그려야 하는지."


▲안지산, '전단지 2(Flyer 2)'. 캔버스에 유화, 60.6 x 50cm. 2016. (사진 = 합정지구)


쉽게 소비되는 그림도 전단지와 다르지 않아     

합정지구에서 열리고 있는 안지산의 플라이-(fly-er)'전은 전시 제목처럼 중의적인 두 가지를 표현했다. 바로 길거리에 떨어지고 버려지기 일쑤인 전단지와 추락 전의 사람이다. 그는 전작에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직접 추락하거나 사라졌던 네덜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델(Bas Jan Ader, 이후 아델)’의 작업을 연구했다. 아델의 추락과 사라짐은 작가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심해오던 주제 추락(falling)'과 깊이 맞닿아 있었다.떨어지기 직전까지 매달려 있는 상황이 바로 삶이 아닐까" 생각하며, 타의든 자의든 매달려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관찰의 결과가 이번 전시에는 전단지로 나타난다.

 

네덜란드 유학과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까지, 총 7년여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그가 귀국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제 작품이 서구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가서 이곳의 세상을 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바깥엔 (전단지의) 저런 풍경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길에 떨어져 있거나 쉽게 사라질 것들… 저렇게 붙어 있어도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잖아요. 너무나 흔하니까.

     

그렇게 발견한 전단지가 그에겐 한편으로 그림 같았다. “요즘 그림도 굉장히 빨리 소비되고 사라지잖아요. 현대미술 안에서도 더 이상 이슈를 만들어내지 않고 조용히 예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진 않나 싶어요. 그림의 위치가 계속 밀려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익숙한 매체인 동시에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그림들은 전단지처럼 언제 사라지고 대체될지 모른다. 안지산의 고민은 이런 위기감을 자연스레 체득하며 시작되지 않았을까?


▲전시장 풍경. (사진 = 합정지구)


기묘한 페르소나 두 번째 숨바꼭질

합정지구 1층 전시장 밖에서 바라본 작품들은 어딘가 불안정해보인다. 작가는 떨어지기 직전의 불안감이 묻어나도록, 그림 속 공간의 수직-수평을 일부러 맞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찬찬히 작품들을 들여다보다 한 작품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림 속 벽걸이에 걸린 초록색 옷에는 물감 자국이 역력하다. 그런데 이 옷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 앞을 향했는지, 뒤를 향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그의 양손은 모두 오른손처럼 보인다. 두 손 모두 오른손인지, 아니면 두 사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이 작품에 대해 묻자 안지산은 실제 제 작업실에 저런 옷걸이와 옷이 있어요. 모두 이 작품을 모호하다고 말하는데, 전 그게 바로 작가의 놀이가 아닐까 싶어요라고 애매한 여지를 남겼다. 두 개의 오른손, 혹은 한 사람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작가로서 회화를 실험하는 그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작품 '두 번째 숨바꼭질' 옆에 선 안지산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안지산, '발뒤꿈치 들기(Heels up)'. 50 x 60.6cm, 캔버스에 유화. 2016. (사진 = 합정지구)

안지산은 첫 전시를 시작한 후부터 "운이 좋게도"(작가의 말3~4개월마다 크고 작은 전시를 진행해왔다이 살인적인 일정에서도 매 전시를 신작들로 채워온 그의 에너지가 경이로웠다기자가 놀라 어떻게 그렇게 작업만 하고 사냐고 묻자 정답이 있으면 안 하죠정답이 없으니까계속 궁금해서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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