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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 유의정] 유물 되라고 자기 도자기 파묻는 남자

갤러리퍼플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전서 신작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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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0-501호 김금영 기자⁄ 2016.09.08 11:48:08

▲유의정, '동시대 문화 형태 연구'. 도자기, 동, 철, 수금, 백금, 레진, 사진 전사, 350 x 100 x 240cm. 2014.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유적 발굴의 현장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과거 역사의 현장이기에 조금이라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손길 하나하나가 민감하다. 그런데 이런 발굴의 현장이 있는가 하면 늘 전시장 주변에서 반대로 땅을 파고 무언인가를 묻는 한 작가가 있다. 쓰레기 투기의 현장? 아니다. 다소 상반돼 보이는 두 현장에서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바로 도자기.


유의정 작가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갤러리퍼플에서의 개인전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Imagery & Figuration)’을 선보이는 중이다. 유 작가는 전통적인 도자의 형태에 현대의 문화와 현상들을 기록하는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항상 그가 매 전시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신작을 선보이는 것과 전시장 주변에 도자기를 묻는 것이다. 전자야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고 싶은 의지라지만 후자는 좀 의아하다. 왜 그는 이런 행동을 하게 됐을까?


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의 일상부터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식사 시간부터다. 매끼 식탁에는 음식이 담긴 다양한 그릇들이 등장한다. 카페나 음식점에 가도 따뜻한 커피나 물이 컵에 담겨 나오고, 상점에 가면 술이나 주스가 담긴 예쁜 병부터 샴푸 등을 담을 수 있는 예쁜 용기까지 다양한 그릇들을 판다. 이 모든 그릇들을 만지는 사람들의 손길은 친근하고 거침없다.


▲유의정,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Imagery & Figuration)'. 백자, 유약, 수금, 26.5 x 26.5 x 3.5(t)cm. 2016.

그런데 이 그릇들이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 있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손도 댈 수 없는 유리 케이스에 갇힌 그릇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작가는 여기서 흥미로움을 느꼈다. 결국 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들도 과거 누군가 일상에서 평범하게 썼던 물건인데 ‘유물’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많은 것이 바뀐다는 것.


“친근하게 쓰던 대접이나 그릇이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달라져요. 일상에서 편하게 쓰는 그릇을 보고 ‘예술’이라고 떠올리는 경우는 많이 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그릇이 박물관에 전시되면 예술이라 여겨지며 다소 거리감이 생기죠. ‘어우, 함부로 손대면 안 돼’ 식으로요. 결국 도자기의 타고난 재료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 어떤 의미를 덧씌웠느냐에 따라 예술이고 아니고가 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작가는 “이처럼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건 특히 도자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수성”이라고도 짚었다. “그림의 경우 과거에도 벽에 걸어 전시해서 예술이라는 개념이 강했지만, 그릇은 그냥 일상에서 밥 먹을 때 꺼내 쓰던 도구에 가까웠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단다.


일상에서 친근하게 쓰던 도자기에
‘유물’ 타이틀이 붙을 때 생기는 경계


▲유의정, '클라우드 & 플레인(Cloud & Plane)'. 도자기, 사진 전사, 수금, 36 x 36 x 63cm. 2015.

이 흥미로움을 바탕으로 다시 작가가 도자기를 땅에 묻는 이유에 다가가 본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번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기 이야기다. 작가는 도자기의 기능을 설명했다. 유물로서의 도자기는 예술의 측면도 지녔지만 이뿐 아니라 역사, 즉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유추하는 기능도 한다. 역사 책에서도 고구려 시대에는 어떤 그릇을 사용했다, 고려 시대에는 상감청자가 대표적이라는 등 도자기를 통해 당시대의 유행과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실제 과거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기에, 과거를 산 사람들이 남긴 글, 옷, 건물, 그림 등을 통해 그 시대를 유추할 수밖에 없어요. 그중 하나가 도자기예요. 특히 도자기는 1억 년이 넘도록 썩지 않기에 역사적 근거로 많이 활용돼요. 그릇의 모양이나 기법 등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에는 이런 패턴이 유행했구나’ ‘이 식기를 사용해서 밥을 먹었겠구나’ ‘이런 사상이 있었겠구나’ 등을 유추하죠. 그런데 이것은 유추이기 때문에 이것이 맞을 수도, 가까울 수도, 전혀 진실과 다를 수도 있어요. 사실과 허구의 경계 지점에 놓이는 거죠.”


▲유의정,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 - 골드 & 옐로우(Imagery & Figuration - Gold & Yellow)'. 백자, 유약, 수금, 16.5 x 11 x 1(t)cm. 2016.

작가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어렸을 때 국립중앙박물관 근처에 살았던 그는 박물관을 제집 같이 드나들었다. 고려실, 조선실, 백제실 등으로 나눠진 방에는 그 시대 쓰던 사람들의 물건들이 마치 시간 여행 매개체처럼 고스란히 전시돼 있었다. 몇천 년 전 물건이 현 시대에 존재하는 것도 신기했고, 작가는 이 물건들을 통해 그 당시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다시 도자기들을 보니 이 이야기들에 오류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컨대 금고라고 전시된 도자기를 보면서, ‘이게 정말 금고로 역할을 했을까?’ ‘서술해 놓은 것 중 과연 몇 퍼센트가 맞을까?’ ‘저 안의 유물이 진짜일까?’ 등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 것.


▲유의정,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 - 블루 & 화이트 드래곤(Imagery & Figuration - Blue & White Dragon)'. 백자, 유약, 수금, 35 x 35 x 44cm. 2016.

“모나리자 그림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진짜냐, 가짜냐의 이야기가 있죠. 박물관의 도자기를 보면서도 그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을 근거로 이 도자기가 진짜라고 전시돼 있을까, 단순히 오래돼 보인다는 이유로 그런 건 아닐까 궁금해지면서 결국 우리가 유추해 놓은 것들이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에 존재한다고 느껴졌어요. 물론 최대한의 사실을 유추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유추일 뿐, 100% 정확할 수는 없죠. 그래서 도자기가 제게 예전에는 타임머신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면,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일상과 예술, 그리고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난 매체가 됐어요.”


그래서 작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기록해 왔고, 추후 미래 세대에도 현재 우리의 삶을 유추하는 역할로 쓰일 도자기의 역할에 대한 탐구와 실행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도자기를 묻기 시작했다. 후에 먼 미래에 도자기가 발굴된다면 이 도자기를 통해 ‘21세기에는 이렇게 살았겠구나’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어떤 도자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또 미래에 유추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도자기를 통해 따라가는 역사
현 시대는 미래에 어떻게 기록될까?


▲유의정,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 - 옐로우(Imagery & Figuration - Yellow)'. 백자, 유약, 수금, 11.5 x 21.5(h)cm. 2016.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어디에 도자기를 묻었냐고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웃음). 도자기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저는 최대한 현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나이키나 스타벅스 로고 등을 전통적인 도자기 형태에 담죠. 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도 가장 반응이 좋아요. 전통 도자기 문양은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지만 유명 브랜드 로고는 현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어, 공감의 요소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여기엔 사람들의 욕망이 담겼다고 생각해요. 고려시대 청자엔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학을 많이 새겼죠. 현대에는 소비 욕구가 강해요. 흙 표면을 그 욕망을 대변하는 유명 로고 이미지로 덮죠. 여기에 다채로운 색이 입혀져 더 강력한 시각 효과가 이뤄집니다.”


도자기 작업을 할 때는 사전 자료 조사 작업도 함께 이뤄진다. 국내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자기 흐름도 살펴본다. 작가는 여기에서 각국의 유행 스타일이 다르지만, 서로 문화를 주고받으며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도 발견했다. ‘혼재한 경계의 상태’가 작가가 발견한 도자기의 이야기다.


▲유의정, '2015 신 수복강녕'. 도자기, 사진 전사, 수금, 39 x 39 x 70cm. 2015.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총 4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2m 크기의 대형 도자기부터 작은 것은 20cm까지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도자기에 화려한 문양과 유약이 흘러내리는 듯한 신작 ‘이미저리 & 피규레이션’과 2010년 첫 개인전 이후 계속 진행하고 있는 ‘네 가지 풍경’ ‘동시대 문화 형태 연구’ ‘수복강녕’ 등 각기가 다른 작가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다.


특히 신작은 도자기인 듯 그림인 듯 양면적으로 보이는 형태다. 작가는 흙에 유약을 발라서 많게는 7번 정도까지 굽는데, 순차적으로 위에 이미지를 얹히는 방식으로 온도까지 달리 하며 굽는다.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린 형태도 있고, 뚜렷하게 그림이 얹힌 형태도 있다. 여기서 또 경계가 발생한다. 도자기이지만 눕힌 상태의 전시뿐 아니라 마치 그림처럼 벽에 걸어 전시하기도 한다.


“여러 매체를 바라보던 와중에 대학을 도예과로 갔어요. 공부하다보니 매력을 많이 느꼈거든요. 도예과에서 배울 수 있는 실기를 열심히 듣고 회화과, 동양화, 시각디자인과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는데, 이 모든 경험이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도자기에 사진 콜라주를 끌어오기도 하고, 입체적인 요소를 반영하기도 하죠.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에 관심이 많은 제게 딱 맞는 형태였어요. 그래서 ‘도자기=그릇’ 공식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 형태도 다채롭게 꾸미려 노력해요.”


▲유의정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처럼 도자기는 작가에게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매체로 발전했다. 추후엔 현재까지 작업해온 도자기들과 관련한 책도 쓸 예정이다. 자신의 도자기가 미래에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담는다.


“도자기부터 책까지 보이는 형식은 매우 다르죠. 그런데 제가 관심 있고 이야기하는 주제는 한결같아요. 결국 경계의 이야기죠. 어떤 한 경계에 갇히지 않고 늘 새로운 경계를 또 넘나드는 도자기는 한평생 연구해도 또 새로운 면이 발견될 거예요. 그 과정을 앞으로도 따라가고 싶어요.”


전시는 갤러리퍼플에서 10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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