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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일 벗은 창작 '도리안 그레이' 관람 포인트 셋

김준수·홍서영에서 창작 뮤지컬 발전가능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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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0-501호 김금영 기자⁄ 2016.09.09 09:30:27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서 도리안으로 열연하는 김준수. 무대 배경에 그의 초상화가 가득 펼쳐진다.(사진=씨제스컬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부여받은 대신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 인간. 이 인간은 과연 행복했을까?


영원한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612명에 달하는 처녀들의 피로 목욕했다는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진시황도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아다닌 것으로 유명하고, 현 시대에서도 수많은 안티 에이징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스러운 주름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말도 있지만, 보톡스를 맞으며 눈가 주름을 쫙쫙 피는 등 찬란한 젊음을 유지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에 관한 욕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또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속 도리안. 그는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지만 죄의식 없는 쾌락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헨리의 영향으로 점차 불멸의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이 커진다. 결국 화가 배질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맞바꾸고 영원한 젊음을 갖게 되지만,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 매력적인 소재는 영화,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뮤지컬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소재 자체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인 측면이 강한 뮤지컬에서 다루기엔 다소 무거운 이야기이기 때문.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의 내용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이 작품의 첫 뮤지컬화가 국내에서 이뤄졌다. 제작발표회 이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개막했다. 그 현장을 찾았다.


관람 포인트 하나. 김준수 나르시시즘의 극대화와
비열한 박은태, 갈등하는 최재웅


▲화가 배질 역의 최재웅(왼쪽)과 그의 모델인 도리안 역의 김준수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사진=씨제스컬쳐)

김준수에게 이제 평범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걸까. 이건 그만큼 김준수가 독특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김준수는 ‘엘리자벳’에서 엘리자벳을 죽음으로 유혹하는 토드, ‘드라큘라’에서 영원의 삶을 사는 드라큘라, ‘데스노트’에서는 사신과 대결을 펼치는 천재 탐정 엘(L) 등 평범함을 벗어난 추상적인 역할을 도맡아 왔다. 이번엔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고 점차 죄책감과 인간의 감정을 잃어가는 도리안이다.


김준수의 팬들이라면 이 공연을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아름다움과 순수함의 결정체인 도리안을 연기하기 위해 외모의 극대화가 이뤄졌다. 백발에 가까운 묘한 금발 머리에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점차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퇴폐미까지 갖추게 된다. 그 와중 무대 위에는 김준수의 초상화가 꾸준히 다방면으로 펼쳐진다. 김준수는 계속 무대 위에 크게 구현되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주변의 찬사를 들어야 한다. 따라서 보통 나르시시즘에 빠질 각오가 아니면 이 역할을 소화하기 낯부끄러웠을 것 같다.


김준수의 창법은 뮤지컬계에서 튄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눈을 감고도 “이건 김준수”라고 바로 알아들을 음색이다. 그 음색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속삭이듯 노래 부를 때 관객들은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아이돌 그룹 출신인 김준수의 능력도 무대는 잘 활용한다. 발레, 현대무용, 군무 등 다양한 안무가 펼쳐지는데, 김준수를 중심으로 역동적인 댄스가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처음엔 뮤지컬이 아닌 콘서트 현장에 온 것 같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결국엔 정적이었던 무대에 역동감을 부여해 다시금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도리안(왼쪽, 김준수 분)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죄의식 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헨리(박은태 분)의 유혹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사진=씨제스컬쳐)

그리고 김준수를 비롯해 이 공연은 무엇보다 남자 배우들의 힘이 크다. 일명 세 남자의 '브로맨스'다. 도리안의 순수함을 사랑한 화가 배질 역의 최재웅,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와 선한 심성을 모두 갖춘 완벽한 인간을 연구한다는 명목 아래 도리안을 타락의 길로 이끄는 헨리 역의 박은태다. 제작발표회 당시 최재웅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그의 역할이 크다. 도리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자신의 영혼까지 불어넣은 초상화가 망가지면서 또한 고통스러워하는 배질의 모습이 펼쳐진다.


헨리 역의 박은태는 "너의 아름다움은 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도리안에게 주입하며 도리안이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도록 한다. 또한 "진정한 쾌락은 죄의식 없이 이뤄져야 한다"며 도리안의 악행을 부채질한다. 배질의 고통스러움을 비웃는 그에게서는 비열한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배질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리안을 사랑했음이 드러난다. 이 세 남자의 무게 중심으로 극이 흘러간다.


관람 포인트 둘. 스타 탄생 예감
신예 홍서영의 열연


▲도리안의 첫사랑인 시빌 베인 역의 홍서영. 이번 작품으로 뮤지컬에 첫 데뷔했다.(사진=씨제스컬쳐)

‘도리안 그레이’에서 남자 배우들의 역할이 크기는 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발견한 보석이 있다. 도리안의 첫사랑 시빌 베인 역의 홍서영. 그는 이번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했다.


여배우 시빌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으로 도리안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도리안을 사랑하게 된 뒤 무대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연기를 할 수 없게 된 시빌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그리고 이런 시빌에게서 아름다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며 도리안 또한 떠나버린다.


▲남자 배우들의 열연 속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한 홍서영.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왼쪽부터) 홍서영,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은 모두 원캐스트로 출연한다.(사진=씨제스컬쳐)

무대 위에서 홍서영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는 않다. 동생과의 작별을 아쉬워하고, 도리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며, 또 이 사랑에 배신당해 처절한 아픔을 느끼는 장면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시빌 역할에 어울리는 외모와 깨끗한 음색, 그리고 안정적인 연기가 오랜 인상을 남긴다. 더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아쉬움과 기대가 공존한다. 이지나 연출은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홍서영이 차후 몇 년 안에 캐스팅하기 힘든 여배우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진짜 실행될지도 모르겠다.


관람 포인트 셋. 해외 촬영 영상 활용한 연출
처음엔 “굳이 왜?” 했지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체코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들이 무대에 활용된다.(사진=씨제스컬쳐)

이지나 연출. 그는 ‘도리안 그레이’ 제작발표회 때 “어렵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함께 자리한 김문정 작곡가와 극작을 맡은 조용신 작가도 같은 말을 했다. 원작 소설이 지닌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도 문제였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어떤 형태로 무대 위에 구현할 것인가였다.


당시 ‘도리안 그레이’ 팀은 이를 위해 체코의 플로스 코비체 성을 직접 찾아가 영상 및 화보 촬영을 했다고 밝혔다. 극 중 배경이 1884년 런던인데, 이 분위기를 느끼게 할 만한 장소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무대 위 배경 요소로 활용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하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거지?” 식의 생뚱맞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까지 촬영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생뚱맞을 것 같은 이 이야기가 무대에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도리안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위에는 분명히 노래를 부르는 도리안이 존재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도리안이 나타난다. 큰 무대 전체가 스크린이 돼 체코에서 찍은 영상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고뇌하는 도리안의 모습이 함께 펼쳐진다. 도리안 속 또 하나의 도리안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형태다.


무대 위에서는 한계지어질 수밖에 없는 장소와 배우들의 표정이 영상에서는 한계 없이 펼쳐지고 클로즈업된다. 영상이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까지 사용되는 건 아니어서 흥미로운 장면을 여럿 볼 수 있다. 다만 ‘도리안 그레이’가 만약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이후 배우가 바뀌어 또 무대에 오른다면, 그때도 영상 촬영 방식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바뀌었는데 계속 기존 찍은 영상을 활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관람객 앞에 첫발을 내딛은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한 장면.(사진=씨제스컬쳐)

안무와 노래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도리안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고통스러워하는 배질이 등장하는 첫 무대에는 이 배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여주는 무용이 펼쳐진다. 이를 포함한 다양한 안무에 쇼팽 연주곡을 적절히 활용하고, 배우들의 음역대를 고려한 노래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극을 이해하려면 다소 공부가 필요하다. 기본 줄거리를 아예 모르고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도리안이 헨리의 유혹에 빠져드는 개연성이 확실하지 않고, 도리안이 타락의 길에 빠지게 되는 과정도 아직은 충분한 설득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후 갑작스레 전개되는 배질과 도리안의 이야기도 이해가 되기엔 충분하지 않다. 상당 부분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 “진정한 쾌락은 죄의식이 없는 것”이라는 대사에 의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극의 전개는 1막이 더욱 흡입력 있고, 2막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1막에서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2막은 1막에서 느낀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촘촘한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안 그레이’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창작 뮤지컬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그래서 색다른 시도가 함부로 이뤄지지 못하는 뮤지컬 시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또 배우들의 새로운 발견도 볼 수 있었다. 공연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10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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