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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BMW “내가 최고” 자랑에 벤츠 “동생 많이 컸네”

라이벌의 품격: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걸어온 선의의 경쟁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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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2호 윤지원 기자⁄ 2016.09.24 07:52:10

▲라이벌인 BMW의 창사 100주년을 축하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재치 있는 메시지. (사진=벤츠)


- BMW 100주년을 맞아 살펴보는 경쟁과 시너지의 역사


2016년 3월 7일, 글로벌 고급차 시장의 최강자인 BMW가 창사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BMW의 최대 라이벌인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면광고와 SNS를 통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BMW의 상징인 더블키드니-그릴(Double Kidney Grill) 위로 “100년 동안 우리와 경쟁해줘서 고맙다”라는 자막을 띄워 라이벌을 인정해줬다. 물론 한마디를 더 보탰다. “솔직히 그 전 30년은 너무 시시했거든.” 벤츠는 스스로를 ‘동생을 칭찬해주는 형’, ‘도전자를 쓰담쓰담해주는 챔피언’으로 격상시킨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또 BMW 직원들에게 관대한 제안도 했다. BMW 100주년 기념일 다음 주에 ‘메르세데스-벤츠 전시관’을 방문하는 BMW 직원들에게는 무료입장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또한 그들이 BMW 차를 타고 오면 정문 앞 주차를 무료로, 그리고 선착순 50명에게는 구내 레스토랑에서 더블키드니-그릴을 본 딴 특별 메뉴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잘 대접해줄 터이니 와서 30년 앞선 우리 역사를 한번 배우기는 해야지?”라는 친절과 조크가 담긴 초대였다.


다른 업체 차는 타지도 못하도록 하는 한국 자동차 업계의 냉랭함에 비한다면, “우리 재밌게 경쟁해봅시다”는 유럽식 여유가 느껴져 두 회사를 바라보는 애호가들을 웃게 만들었다. 경쟁 기업 사이의 흔한 네거티브 공방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라 ‘경쟁도 명품 급’이란 소리를 들을 만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세계 자동차 최고 라이벌로 꼽힌다. 니샤푸르의 한 차고 문에 그려진 두 기업의 엠블럼. (사진=위키피디아)


Part 1. 두 거인 BMW-벤츠가 대등해지기까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정상에는 여러 기업이 있지만, 역시 라이벌이라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가 가장 우선적으로 꼽힌다.

BMW와 벤츠는 여러모로 경쟁관계에 있다. 역사적으로는 당연히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기업’인 벤츠가 큰형님이다. 벤츠는 여러 ‘최초’ 타이틀을 가진 명가다.

1886년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가 만하임에 공장을 설립한 것이 벤츠 브랜드의 시초였다. BMW는 1916년 3월 7일을 창사 기념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벤츠가 30년 더 오래된 회사다.


▲메르세데스-벤츠 전시관 내부의 모습. (사진=벤츠)


- 같은 목표, 다른 출발선


처음 두 기업이 활약한 시장은 각기 달랐다. 벤츠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들었다. 반면 항공기 엔진에 주력하던 BMW는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 시장을 장악했고, 1920년대 후반에야 자동차 생산에 나섰다. 최초의 BMW 차가 나온 1932년 당시 벤츠는 유럽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였다.


벤츠는 리무진을 포함한 고급 승용차를 주로 만들어 각 나라의 원수를 포함한 부유층 인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후발 신생기업 BMW는 레이싱에 참가하는 스포츠카에 주력하며 자기들의 뛰어난 엔진 기술을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두 기업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BMW는 공장이 너무 많이 파괴돼 법정관리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벤츠가 종전 뒤 2년 만에 자동차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던 반면, BMW는 모터사이클 생산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 주문받은 물량을 생산해 배달을 완료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1951년 자동차 생산을 겨우 재개한 BMW는 전과 달리 대형 세단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시작은 패착이었다. BMW가 1950년대에 만든 자동차들은 벤츠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명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평가와 판매는 달랐다. 전후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대형 세단과 고성능 스포츠카는 무리였다.


▲BMW의 창사 100주년 기념 엠블럼은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사진=BMW)


BMW는 미국 시장에서까지 실패하면서 적자가 누적되더니 결국 파산 위기에 몰렸다. 1959년 말 열린 임시 주주총회는 매각을 결정했다. 이때 도이치 은행을 통해 BMW 인수에 나선 회사가 바로 벤츠였다. BMW는 벤츠 산하의 부품회사로 전락했었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 BMW를 살린 것은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 와중에도 BMW에는 골리앗 벤츠를 라이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액 주주들과 노동조합은 임시총회의 매각 결정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들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3만 대 이상의 선주문을 받은 700을 생산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BMW 경영고문회의 의장은 배터리 제조사 아파(AFA: 지금의 Varta AG) 사장이자 BMW의 주주였던 헤르베르트 크반트(Herbert Quandt)를 설득했다. 크반트는 심사숙고 끝에 BMW의 주식 30%를 사들여 대주주가 되었고, BMW는 그 돈으로 2만 5000 대의 700을 생산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BMW는 적자 탈피를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중량급 세그먼트의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대량생산이었다. 벤츠가 장악한 최고급 시장을 피해 ‘아래로부터 위로’ 쳐들어가겠다는 작전이었다. 1961년 출시한 ‘준중형’ 세단 1500이 드디어 흑자를 만들어 내면서 이 전략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후속 모델인 1800, 2000 등이 줄줄이 히트를 기록했다. 다시 정상 가동된 뮌헨 공장에서도 주문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없어 란츠후트 공장, 딩골핑 공장 등을 합류시켜야 했다. BMW는 드디어 ‘무적 메르세데스-벤츠’의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90리터 V16 엔진을 장착한 BMW의 롤스로이스 101EX 프로토타입. (사진=위키피디아)


Part 2. 명품스러운 경쟁, 자동차 산업 이끌다


벤츠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이에 대해 BMW는 “진정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이처럼 모토는 다르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으로 발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기술을 앞세운 진검 승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의 역사에서 이런 면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983년에 등장한 벤츠의 190E 2.3-16은 DTM(독일 투어링카 챔피언쉽) 레이스에서 승승장구했다. BMW는 이에 맞서기 위해 2년 뒤 2세대 3시리즈(E30)를 기반으로 M3를 개발했다. 둘은 190E와 M3를 앞세워 DTM 최고 라이벌 구도를 그리면서 90년대까지 이어진 세계적인 카 레이싱 붐을 주도했다.

▲1995년, BMW가 750iL에 V12를 도입하는 강수를 두자 벤츠는 S600으로 이에 맞섰다.

▲1998년, 벤츠가 시계업체 스워치와 협력해 초소형 승용차 스마트(Smart)를 론칭하자 BMW는 2000년 C1 시티 바이크로 응수했다.

▲BMW가 롤스로이스를 인수한 후 V16 엔진을 실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2004년 공개했다. 벤츠가 이 괴물에 맞서기 위해 택한 전략은 마이바흐의 부활이었다. 벤츠는 V12 엔진 두 개를 얹은 진정한 괴물 V24도 고려했지만, 결국은 2005년 V12의 57s를 공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2009년 벤츠는 300SL의 걸윙(Gullwing)을 재현한 SLS AMG를 만들었다. 2011년 BMW는 이 회사 최초의 슈퍼카인 M1 탄생 30주년을 기념해 헌정용 콘셉트 카를 선보였다.

▲2012년 벤츠는 헝가리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이는 소형차에서 강세를 보이며 치고 올라오는 BMW에 대항하기 위한 시도였다.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현지 공장을 지어 글로벌 SUV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에 벤츠는 앨라배마 공장으로 응수했다.


▲벤츠의 1950년대 걸작 300SL 걸윙(왼쪽)과 이를 계승한 SLS AMG가 나란히 날개를 펼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 어느 종목에서든 지지 않는다


두 기업의 경쟁 과정은 치열한 수읽기의 연속이었다. 이런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다보니 결국 이들은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 경쟁 모델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첨예한 라이벌의 역사는 현재 두 기업의 라인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7-시리즈

6-시리즈

5-시리즈

3-시리즈

1-시리즈

X3

Z4

X5

M 디비전

MINI

롤스로이스

BMW 사우버

S-클래스

SL

E-클래스

C-클래스

A/B-클래스

GLK

SLK

ML

AMG

스마트

마이바흐

맥라렌-메르세데스


경쟁은 반드시 1 대 1로 맞붙는 형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의 자존심과 라이벌 의식은 ‘상대가 하면 나는 안 한다’는 차별의 선택을 낳기도 했다.


▲벤츠는 1936년 세계 최초의 디젤 승용차 260D를 만든 회사다. BMW는 상대의 디젤 엔진을 결코 참고하려 하지 않았다. BMW 최초의 디젤엔진 자동차는 1983년의 524td다. 그리고 3년 뒤엔 세계 최초의 전자 제어식 디젤엔진을 장착했다. 따라하진 않는다는 철학이다.

▲1997년 벤츠가 북미에서 양산형 SUV인 ML 클래스를 내놓았으나 품질과 완성도가 낮아 혹평을 받았다. BMW는 이에 첨단의 하이클래스 SUV인 X5로 맞서 성공을 거뒀다. 상대가 보인 약점을 파고들어가 아픈 일격을 날리는 작전이다.

▲BMW는 수소자동차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반면 벤츠는 아직 수소자동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BMW는 자동차를 만들기 이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사이클을 만들어왔지만 벤츠는 이 영역을 전혀 넘보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벤츠가 상용차 부문에서 90년 동안 세계 시장을 휩쓸어 왔지만 BMW는 이제야 픽업트럭 생산을 고려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싸워 온 그들이기에, 일일이 다 열거하기 벅찰 만큼 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이 펼쳐졌다는 것은 잘 드러난다. 마지막에 소개한 두 사례에서 보듯, 두 기업은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서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대인배의 품격을 보여 왔다.


▲메르세데스-벤츠는 BMW에 맞서기 위해 마이바흐 57S(사진)에 심지어 24기통 엔진을 고려하기도 했다. (사진=위키피디아)


Part 3. 인재 키우기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2009년 벤츠는 BMW 디자인팀에서 일하던 한 자동차 디자이너를 채용했고, 그는 그곳에서 F700과 F800을 디자인한다. BMW 입장에서는 상대 기업에게 디자인 노하우를 빼앗긴 셈이다. 한국-미국 기업이라면 소송으로 그 기회주의자 디자이너의 인생을 매장시키려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디자이너는 2년이 지난 2011년 다시 BMW 디자인팀으로 돌아온다. 현재 BMW 수석 디자이너인 카림 하비브(Karim Habib)의 이야기다.


그는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벤츠를 당당하게 선택했고, 거기서 일하는 동안 자동차 디자인에 필요한 여러 학위를 따며 자신의 가치를 더 높였다. 그리고 BMW는 그의 높아진 가치를 알아보고 임원직을 제안했다. 경쟁사로 떠났던 과거는 문제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이직했다.


프랑스인 자동차 디자이너 폴 브라크(Paul Bracq)도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벤츠에서 일하다가 훗날 BMW 디자인 임원으로 채용돼 M1의 시초가 된 최초의 7시리즈 모델과 터보 콘셉트의 디자인 책임자로 일했다.


근로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독일에서도 이처럼 핵심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두 브랜드를 오갈 수 있었던 사례는 벤츠와 BMW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두 기업은 직원이 자기 성취를 위해 이직하는 자유를 막지 않았다. 그 결과 더 뛰어난 인재로 돌아와 회사에 기여할 기회를 줬다. 인력 고용과 인재 양성에도 명품다운 품격을 가진 회사들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Part 4. 한국에선 항상 BMW 1위? 올해는 몰라


한국 시장에서도 둘은 라이벌 경쟁구도를 그려왔다. 수입차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판매량 순위에서 BMW는 거의 언제나 1위였다. 렉서스와 혼다에게 몇 번 1위를 내주기는 했지만 2009년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1위였다.


벤츠는 국내에서 한번도 BMW보다 많은 차를 판 적이 없지만 늘 강자의 자리를 고수해 왔다. 특히 2010년과 2015년에는 간발의 차이로 2위에 머문 바 있다. 작년엔 월간 판매량 순위에서 엎치락뒤치락 1위를 번갈아 차지하더니 연말 최종 집계가 끝나고 나서야 BMW가 4만 7877대를 팔아, 4만 6994대를 판 벤츠를 겨우 따돌리고 1위를 수성했다.


올해 상반기 두 기업의 판매량은 작년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벤츠가 1~3월 1위를 하더니 4~5월에는 BMW가 1위를 빼앗았다. 그러나 벤츠는 신형 E-클래스의 뛰어난 선전으로 누적 판매량 간격을 점점 벌려 8월까지 3만 3507대를 기록, 같은 기간 2만 8839대를 판매한 BMW에 넉넉히 앞서고 있다. 13년 만의 순위 역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 매출이 전부가 아니다


국내에서 두 기업은 시장 점유율에서의 경쟁 외에도 여러 경쟁 행보를 보이고 있다. BMW 그룹 코리아는 2014년 7월에 770억 원을 투자해 영종도 드라이빙센터를 오픈했다. 그러자 벤츠는 다음 달에 520억 원을 투자한 안성 부품 물류센터를 오픈했다.


벤츠는 이에 앞선 2014년 3월 R&D 전담팀인 벤츠코리아 R&D센터를 발족시켰다. 당시 디터 제체 회장은 “한국인의 두뇌를 활용해 한국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임러 사는 전 세계 10개국에 21개의 R&D 센터를 운영하며, 인력이 1만 4600여 명에 이른다. R&D 코리아 센터는 중국, 일본과 함께 핵심 글로벌 R&D 센터 중 한 곳이다.


이어 2015년 BMW는 브라질,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한국에 BMW의 다섯 번째 해외 R&D 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15개월 동안 한국인 직원 20명을 채용하고, 본사 파견 인력과 함께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에서 전기차 배터리와 한국형 내비게이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BMW는 2020년까지 드라이빙 센터에 총 200억 원을 투자해 R&D 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두 기업은 2010년대 들어 사회공헌 사업에도 나란히 동승했다. BMW코리아가 2011년부터 BMW미래재단을 운영하며 미래인재육성에 초점을 맞춘 사회공헌활동을 해 왔고, 벤츠 코리아는 2014년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약속’을 론칭하고 △어린이 교통안전 사업 △모바일을 통한 산학협력 △임직원 참여형 봉사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BMW 그룹 코리아의 MINI 시티라운지. (사진=BMW그룹코리아)



- “네가 있어 내가 혁신한다”


BMW 그룹 코리아의 관계자는 CNB저널에 “뛰어난 경쟁자의 존재는 BMW가 지금껏 쌓아온 혁신의 역사를 앞당긴 동력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고객만족 최우선의 원칙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 시장에서의 BMW의 위상을 수립할 수 있었다”며 “판매량 1위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100년에도 한국 자동차 문화의 선진화와 고객만족을 위해 더욱 정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BMW코리아와 더불어 시장의 경쟁자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벤츠 창업자의 철학을 지켜가며, 고객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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