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전시 - 올라퍼 엘리아슨] “혼돈 속에서 발견하는 당신의 점이 궁금”
▲설치 작품 '이끼 벽'의 부분.(사진=김현수)
SF(공상 과학)영화는 영상 촬영-편집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화면 안에서의 현실성을 더해간다. 더불어 초기 SF 영화가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결과라고 여겨졌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철학, 과학, 수학의 타당한 이론을 바탕으로 신빙성을 획득하며 만들어지기에 더욱 흥미롭다.
지금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덴마크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이런 공상 과학적 상상력을 모니터 안이 아닌 현실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으로 인한 어두운 미래 따위를 예견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SF 영화처럼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과 협업한 결과지만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그 자연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지 얘기하는 듯하다.
올라퍼와 바로의 편지
이번 엘리아슨의 전시 ‘세상의 모든 가능성’의 도록은 작가나 큐레이터의 서문 대신 엘리아슨과 천체 물리학자 오렐리앙 바로(Aurélien Barrau)의 편지글로 시작한다.
“오렐리앙에게, … 브뤼노 라투르의 글에서 따온 다음 인용문을 이 대화의 시작점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지도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이가 연속적인 이정표들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게 하는, 계산적 인터페이스의 계기판으로 여겨져야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유명한 이론인 ‘다원적 우주’ 같은 세계를. 당신의, 올라퍼”
다원적 우주론을 바탕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에 관한 이들의 논의 중 눈에 띄는 커다란 키워드는 3가지이다. 그것은 ‘우주’ ‘지도 제작자’ ‘관계-체현’이다.
*다원적 우주: 1909년 발행된 윌리엄 제임스의 저서 ‘다원적 우주(A Pluralistic Universe)’에서 유래. 제임스는 우리가 통일된 우주의 모습을 볼 수는 없으며, 단지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지도 제작자
이들은 작가도 천체물리학자도 모두 ‘지도 제작자’라는 것에 동의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서로 다른 우주에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런 현실 혹은 우주를 재현하는 것은 기존의 축을 바꾸려는 시도다.
전시장 입구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보이는 커다란 설치 작품 ‘이끼 벽’을 이루고 있는 이끼는 북유럽 지역에서 자라는 순록이끼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카펫처럼 부드러운 질감만이 남은 벽은 작가가 경험했을 아이슬란드 및 북부 유럽 자연의 공기와 냄새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하다. 수분을 많이 머금을수록 팽창하면서 코를 찌르는 것 같은 냄새를 낸다고 하는데, 전시장 안에는 특이한 냄새보다는 신선하다고 할 만한 독특한 향이 미세하게 감돌았다.
따로 방을 만들어 선보인 ‘무제(돌바닥)’은 아이슬란드 북부에서 4가지 색의 화산암을 채취해 타일처럼 바닥에 배열한 작품이다.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맞물려 만들어 낸 패턴은 상자가 입체로 반복돼 놓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고대의 수학자들이 자연으로부터 수학을 발견했듯 수학자 겸 건축가 아이너 톨스타인(Einer Thorstaien)에 의해 개발된 패턴으로 재현된 아이슬란드의 자연(화산지대)이다.
엘리아슨은 “어린 시절 도시의 문화 속에서 살 때는 자연과 문화가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화는 결국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며, 창작은 문화와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의 작품은 그의 우주가 그려진 지도며, 타인의 시선과 마주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축과 균형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바닥에 설치된 '무제(돌바닥)'의 부분 이미지.(사진=김현수)
관계 -체현
엘리아슨은 “체현(embodiment)은 내 작업을 관통하는 개념”이라고 밝힌다. 그는 “우주를 체현하려면, 우주에 대해 배운 것을 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습득하고 경험한 것을 내려놔야 새로운 세계를 보는 감각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로는 ‘감각을 연다’기보다 ‘틀을 바꾼다’고는 할 수 있다고 대응한다. 그리고 각자의 우주가 만난 세계, 즉 관계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쟁점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무지개 집합’은 천정에 설치된 지름 13m의 원형 구조물로부터 미세한 물 입자가 내려와 만든 이슬비 장막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면 기름띠에서 보이는 것 같은 무지개가 형성되는 작업이다. 장막 외부에서보다 살짝 비를 맞고 들어가 안쪽에서 감상하는 것이 무지개가 더 잘 보인다. 도시 한가운데서 만난 계곡 근처의 공기 같다.
엘리아슨은 정신적인 교감 혹은 공감에 의한 감상이 아닌 신체의 지각을 통한 감상법을 추천한다. 그는 “작품은 각자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작품의 완성은 각자 다른 시선(세계)을 만들어내는 관람자가 있을 때 가능하다”며, “나는 그저 현상을 제시하는 기술자일 뿐”이라고 전했다.
▲올라퍼 엘리아슨, '무지개 집합'. 스포트라이트, 물, 노즐, 목재, 호스, 펌프, 가변 크기. 2016.(사진=김현수)
우주
바로는 니체를 인용해 “우리는 모두 춤을 추는 별”이며, “춤을 추려면 혼돈을 먼저 품어야(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엘리아슨은 이에 대해 “우주의 이치를 찾는 사람들 즉 과학자와 예술가 등은 혼돈의 바닷속 질서의 점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엘리아슨에 따르면 이치를 찾는 사람들, 즉 예술가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관람으로 완성되는 창조적 행위는 연필을 들고 점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어머니께서 “너는 지금 연필로 지구를 밀고 있다”고 말해줬단다.
검은 벽 위에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유리구슬 1천여 개가 흩뿌려진 작품 ‘당신의 예측 불가능 한 여정’은 우주의 모습이나 별자리들이 모인 성단의 모습처럼 보인다. 어떤 유리구슬은 불투명하고 어떤 유리구슬은 투명하게 나의 모습을 비춘다. 거꾸로.
유리구슬은 혼돈의 세계에 있는 하나의 점, 세계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는 “그 안에도 많은 혼돈의 바다가 있을 것”이라며, 혼돈을 덜 두려워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제안한다. 전시는 올라퍼 엘리야슨의 우주다. 그리고 그는 흔들림이 없는 점(축)을 찍고 있다. 우리는 다른 우주의 축을 보며 어떤 경험의 조율을 할 수 있을까.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
▲벽에 설치된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의 부분. (사진=김현수)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