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성 뒤에 숨겨진 위안의 장인 정신… 작가 이나진, 개인전 이어 KIAF에서도 작품 선보여
▲이나진, ‘고마워! 나를 키운 꽃과 바람아!’. 혼합 매체,130.3 x 162cm. 2016.
케이크를 데커레이션 하듯 물감을 짜서 그림을 완성하는 스퀴징 기법으로 유명한 작가 이나진의 개인전 ‘The Baby Animals'를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서 만날 수 있다.
이나진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장식적인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예쁘다'는 느낌이 첫인상으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지만, 그것은 사실 작가의 오랜 시간에 걸친 재료 연구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나진은 각종 재료를 조합해 그만의 물감을 만든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마다 다른 물감의 점도와 투명성은 동물이나 꽃 같은 흔한 소재의 그림에 독창성과 입체적인 느낌을 더한다. 두껍게 화면을 덮은 물감은 빛이 있을 때 그림자가 깊어지며 그 입체성이 더 강해지고, 물감 사이사이 숨어있는 유리가루나 펄 같은 재료는 그림의 장식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렌티큘러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 렌티큘러: 시차를 이용해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디스플레이 기법.
작가가 작업 초기 당시 캔버스 위에 펼쳐진 입체적인 질감으로 재현하려고 했던 것은 잘 짜인 자수 작업과 같은 질감이었다. 보통 여성적인 작업으로 인식되는 자수는 공예적인 정체성 즉, 반복적인 행위로 완성되는 인내와 절제의 시간성을 담고 있고, 인간의 생존을 위해 기본으로 충족돼야 하는 물품을 만들어내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인류 역사적 의미로서, 또 다른 한편으론 여성 삶의 은유적 표현으로 많이 사용돼왔다.
그런 자수의 작업 방식을 동기 삼아 변화를 거듭해 온 이나진의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공예 장인의 작업처럼 색면의 쪼개짐과 자세한 표현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인제노 갤러리의 전시공간에서 작품들과 함께한 이나진 작가.(사진=이나진 작가 제공)
한편, 작업 초기에는 꽃처럼 수학적 규칙이 잘 드러나는 자연물 위주의 소재로 자연 혹은 우주가 형성된 원리 등을 탐구했던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맞이할 때마다 더 예쁘고 화려하며 직관적인 소재를 찾아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에 거주하며 작업하던 작가는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재난을 근거리에서 체감했고, 홍콩의 '우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재난과 투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이나진, ‘고마워! 나를 키운 꽃과 바람아’. 혼합 매체, 14 x 18cm. 2014.
▲이나진, ‘인생의 회전목마, 인생은 회전목마일까…’. 혼합 매체, 14 x 18cm. 2011.
이렇게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줄 수 있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소재를 찾아 표현하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소재는 아기 동물들의 모습이다. 세상의 어떤 때도 묻지 않은 아기 동물들의 초롱초롱한 눈매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일본 귀족들의 혼수품으로도 쓰였다는 태피스트리처럼 작가의 이번 작품에는 딸의 탄생과 함께 혼수를 제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묻어난다. 색을 배제하고 입체적으로 표현된 배경이 세상의 전부인 아기의 모습은 마치 자기가 세계의 왕인 양 화려한 왕관을 쓰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만끽하고 호기심어린 어린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더 넓히지 못한 채 자만에 빠져버린 어른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14일까지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선보이는 이나진 작가의 작품은 13~16일 개최되는 'KIAF 2016'서 연이어 만날 수 있다.
▲이나진, ‘고마워! 나를 키운 꽃과 바람아!’. 혼합 매체, 각 45.5 x 53cm. 2016.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