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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⑰ 덕성여대 김이강] 이미지의 가면 지우며 느낀 해방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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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2호 윤하나⁄ 2016.12.02 16:52:27

▲김이강, '화이트 드로잉 12'. 2016.

 

길을 거닐기만 해도 텅 빈 머리가 어느새 가득 찬 장바구니가 된 듯이 지끈하다. 메시지와 의도가 넘치는 요즘, 글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목소리가 실리기 마련이다. 파악하기도 전에 눈으로 인식한 이미지가 전하는 이야기가 버거운 짐처럼 피로할 때가 많다. 유리에 붙은 스티커처럼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 완전히 삭제했다고 믿는 컴퓨터 파일이나 프로그램도 결국 미세한 조각으로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남아 있듯, 이미지는 지우는 과정에서조차 지움의 흔적을 남긴다. 이미지가 우리 눈 앞에 씌워진 가면이라면, 작가 김이강은 그 가면을 지우는 과정을 통해 벗겨내고자 시도한다.


그림의 숨은 의도라는 족쇄 벗어두기


연필로 썼다 지운 자리에는 필압의 흔적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그리다가 지운 그림에도 그 흔적이 드러나곤 한다. 무언가를 지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움의 행위는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다. 직전에 만든 허상보다 더 알맞은 또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지운다. 지우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김이강이 이미지를 지워나가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림의 목적과 의도에 익숙한 미술기자는 의례 그래왔듯 김이강 작가를 만나 작품의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림을 보면서 너무 어렵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전 누가 제 그림을 보고 혹시 ㅇㅇ를 그린거야?’라고 물어보면 그렇게 본 게 맞다고 얘기해요. 힘들게 답을 찾는 그림 말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그림이 그리고 싶었어요.”


실제로 근래의 미술은 전략과 의도로 점철된 퍼즐처럼 첫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마치 문학작품을 보고 지은이의 의도를 획일적으로 풀어내는 국어 시험처럼, 미술 작품에서도 열쇠를 찾아 해석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어려운 그림, 숨은 의도를 담기보다는 해석의 가능성을 활짝 열고자 노력한다. 무엇일까 알쏭달쏭하지만 위압적인 정답 대신 온전히 상상하는 이의 몫이 되는 그림 말이다.  


▲김이강, '화이트 드로잉 13'. 2016.


화이트 드로잉연작

- 흡수한 이미지 뱉어내고 지우는 이유


작가는 어디선가 본 이미지를 종이 위에 뱉어내듯 그림으로 옮기고 그것을 도로 지워낸다. 의식하지 못한 채 흡수된 이미지가 늘 머릿속 캐시 저장고에 한가득인데, 그는 머릿속의 이미지를 끄집어내 종이 위에 연필이나 펜, 마커 등으로 그린다. ‘화이트 드로잉연작은 이렇게 그린 그림 위에 화이트 수정 테이프(이하 화이트)로 윤곽을 지워낸 작업이다. 화이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유독 하얀 인공선이 남아 이미지의 폐허를 부각시킨다.  

 

이는 해당 이미지를 삭제하기보다, 이미지가 가진 껍데기를 지우고 해체하기 위한 태도에 가깝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제가 만든 이미지를 다시 지울 때 해방감을 느껴요. 다른 사람이나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지워내는 과정에서 더 본질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 흔적을 보면 내가 뭘 그렸나 헷갈릴 때도 있어요. 그러니 보는 사람도 그럴 거예요.작가는 이미지의 만들어진 완결성보다 이미지를 해체하면서 해방되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김이강, '마스크 2(Mask 2)'. 2015.

▲김이강, '화이트 드로잉 3'. 2016.


이 해방감은 의도를 실어 날라야 한다는 의무감의 탈피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그림이나 글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거나 부담감을 느껴 회피하기도 한다. 이 부담감을 내려놓고자 작가는 자신을 짓누르던 정체 모를 이미지의 가면을 벗겨낸다. 우선 수면위로 떠오른 이미지의 외면을 떠올려 그 위에 흰 선을 덧대는 방식으로 해체를 시도하는 것이다. 흰 수정 테이프는 이미지의 단서와 정체를 숨기는 동시에 이미지의 폐허를 조성한다 이미지의 딱딱한 외피가 흰색으로 지워지고, 그 흔적을 통해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작가는 지우는 행위는 만들어진 모든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는 돌파구로, 작가 또는 관객이 정의한 실체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원하지 않아도 흡수되고 자기 안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이미지에서 비로소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박미연 덕성여대 서양화과장 추천사]

"열의와 미술에 대한 주관 뚜렷해"


김이강은 학부생 때부터 지난 5년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림에 대한 열의가 크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차분한 성품을 소유한 학생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하고 다른 성격의 일처리에도 균형 있는 조화를 갖췄다.


또한, 본인의 자기개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여 그림에 남다른 소질과 더불어 앞으로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진행하는 훌륭한 작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소양을 겸비하고 있다.


최근 신진작가 창작 프로그램에 지원해 인사동에서 기획 초대전을 개최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에 우수한 재원을 덕성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추천작가로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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