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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⑲ 서울여대 대학원 주다인] 오리지널→프리퀄→시퀄 잇는 이야기꾼

뱅크시의 벽화서 끌어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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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4호 김금영⁄ 2016.12.16 11:05:07

▲주다인, ‘오리지널: 뱅크시 날려버리다’. 혼합 미디어, 가변 크기. 2011.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프리퀄과 시퀄. 오리지널 이야기보다 앞선 이야기를 담은 속편이 프리퀄, 전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시퀄이다. 영화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 올해만 해도 다양한 프리퀄과 시퀄 영화가 등장했다. ‘터미네이터’ ‘에이리언’ ‘해리포터’ 등은 대표적인 시퀄, 즉 시리즈 영화다. 그리고 이중 ‘해리포터’ 시리즈의 프리퀄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 현재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오리지널을 중심으로, 못 다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퀄과 시퀄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특별한 프리퀄, 시퀄이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주다인 작가의 ‘뱅크시’ 시리즈다. 오리지널 ‘뱅크시 날려버리다’(2011)를 시작으로, 프리퀄인 ‘워터앤파워 점프수트의 사나이’(2016), 그리고 시퀄 ‘뱅크시 월 아트 체육관’(2016)까지 작가는 자신만의 오리지널, 프리퀄, 시퀄 작업을 펼쳐 왔다. 그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오리지널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작가는 어학연수 차 미국 LA에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뱅크시, 정확히는 뱅크시의 흔적을 발견했다. 뱅크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지만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다. 소리 소문 없이 거리 이곳저곳에 작품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는 ‘거리의 예술가’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웨스트우드 거리를 걷다가 뱅크시가 벽에 그려놓은 ‘크레욜라 슈터(Crayola Shooter)’를 발견한 것. 그려진 지 얼마 안 된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작이었다.


“군모를 쓴 어린이가 기관총을 들고 있는 낙서였어요. 그런데 진짜 총알이 아닌, 크레용이 채워진 탄창이 눈에 띄었죠. 정말 우연한 기회에 뱅크시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이 작품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주인이 그 그림을 지워버렸어요. 분명 존재했던 그림은 현실에서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죠. 이때 뱅크시의 작품은 사라졌지만, 제 작업과 연결시켜 현실에 다시 부활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다인, ‘프리퀄: 워터앤파워 점프수트의 사나이’. 채널 비디오 2개, 적외선 필름, 다이크로닉 필름, 가변 크기. 2016.

생각을 굳히고 작가는 크레용을 사러 갔다. 크레용 겉 포장지를 떼어내고 자신의 영문 이름을 적은 스티커를 명함처럼 제작해 붙였다. 그리고 이 크레용을 뱅크시의 작품이 지워진 벽 앞에 쏟아놓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건 무슨 의미였을까?


“기존 뱅크시가 남겼던 작품엔 아이가 기관총을 쏘는 듯한 모습이 담겼죠. 그런데 총알이 발사될 때는 탄두만 앞으로 나아가고, 탄피는 바닥으로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기관총을 들었던 아이가 탄피를 떨어뜨리고 사라진 현장을 재현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가 나름대로의 작품 되살리기 현장에 많은 행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진짜 크레용을 주워가거나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크레용 위에서 배설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찾은 벽에는 또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크레용으로 이것저것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기존 뱅크시의 작업을 자신의 작업으로 연결시킨 작가의 작업에 또 다른 사람들의 해석이 더해진 셈.


뱅크시가 남겼던 크레용 총알이 시공간 넘어 한국에


▲주다인, ‘시퀄: 뱅크시 월 아트 체육관’. 혼합 미디어, 가변 크기. 2016.

이 작업은 시공간을 넘어 한국에까지 연결됐다. 졸업 전시 때 전시장에 해당 퍼포먼스를 촬영한 영상을 벽에 크게 비췄다. 그런데 한국 전시장 바닥에는 크레용의 윗부분, 즉 크레용 탄두가 흩뿌려졌다. 크레용의 아랫부분인 탄피는 총알이 발사된 LA 거리에 있고, 윗부분인 탄두가 한국으로 날아왔다는 의미다. 결국 뱅크시의 작품에서 시작된 것이 작가만의 새로운 오리지널 작품 ‘뱅크시 날려버리다’로 부활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5년이 지나고 작가는 ‘뱅크시 날려버리다’의 프리퀄과 시퀄을 준비한다. 석사 청구전을 준비하면서 미국에 또 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마침 뱅크시의 작품을 우연히 봤던 LA와 가까운 곳이었다. 5년 전 그날 이후 벽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후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과 시퀄 콘셉트로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프리퀄을 제작하기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들고 갔다. 적외선 카메라는 실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래 스케치를 투시하는 기능이 있다. 벽의 과거를 읽기 위해 준비해 갔다. 5년 뒤 벽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림은 다 지워지고, 크레용도 없었다. 그리고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잠시 쓰레기통을 치우고 벽을 촬영했다. 적외선 카메라에 마치 멍 자국 같은 흔적이 보였지만, 뱅크시의 작품이 잡히지는 않았다. 탄소 성분을 인식하는 적외선 카메라가 스텐실(글자, 무늬 등 모양을 오려낸 후 그 구멍에 물감 넣어 그림을 찍는 기법) 기법을 사용하는 뱅크시의 흔적을 잡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프리퀄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이 뱅크시의 작품을 만났던 때처럼 또 우연히 생겼다.


▲주다인, ‘무빙 박스(Moving Box) Ⅰ’. 단프라 시트, 200 x 430 x 170cm. 2012.

“한창 촬영 중 어떤 남자가 말을 걸더라고요. ‘거기 뭐가 있었는지 아냐’고요. 바로 옆 건물 변호사였어요. 5년 전 새벽 3시 반 정도 차를 몰고 가다가 벽 앞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봤대요. 그땐 단순히 공사를 하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뱅크시였던 거죠. 그 변호사는 ‘그때 내가 차를 세웠으면 뱅크시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 그림을 봤다고, 5년 전 퍼포먼스도 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변호사가 그것도 기억한다고, 자기도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엔 자기가 바로 뱅크시라는 돌발 발언을 했어요. 사실인지,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는 열린 결말이죠.”


변호사의 발언을 바탕으로 프리퀄 작업은 ‘워터앤파워 점프수트의 사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점프수트를 입고 작업하다 사라진 뱅크시, 즉 벽의 과거 이야기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벽의 화면을 인화해 전시하고, 변호사의 인터뷰 영상도 함께 틀었다.


다음은 시퀄 작업이다. 이 작업은 트렌드가 반영된 우연의 결과다. 작가는 작업을 할 때 항상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데, 거기서 비롯되는 우연이 아이디어를 줄 때가 많다. 이건 항상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의 태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프리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한창 포켓몬고 게임이 유행이었다. 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하기가 힘들었다. 미국에서 해볼 생각에 게임을 틀었다가 왠지 익숙한 장소를 발견한다. 이럴 수가! 또 그 벽 앞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것 또한 좋다


▲주다인, ‘무빙 박스(Moving Box) Ⅱ’. 단프라 박스, 사운드 설치, 71 x 91 x 63cm(각 박스). 2012.

“제가 트레이너가 돼서 희귀한 포켓몬을 모으는 식으로 게임이 진행되죠. 그런데 여기에 체육관이 존재해요. 몇 킬로미터마다 체육관이 있는데, 이 장소를 점령하고 있는 관장과 게임 배틀을 붙어서 승리를 하면, 제가 그 체육관을 소유하게 되죠. 실제 박물관 등 유명 장소에 체육관이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니 웨스트우드 근처에 ‘뱅크시 월 아트 체육관’이 있더라고요. 설마 하고 가보니, 바로 퍼포먼스를 벌였던 그 벽이었어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덧 유명 장소가 됐던 거죠.”


게임 초보였던 작가는 이 장소만은 어떻게든 차지하고 싶었다. 5년 전 총알 오브제로 크레용을 사용해 그 장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는데, 이번엔 이 체육관을 점령해서 그 공간을 다시금 끌어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단다. 이건 오리지널 ‘뱅크시 날려버리다’ 이후의 일을 보여주는 후속, 즉 시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 보는 시간 외에는 포켓몬 키우기에 몰두했고, 결국 귀국 전 배틀에서 승리해 ‘뱅크시 월 아트 체육관’의 새로운 관장이 됐다.


배틀을 펼치는 영상, 그리고 5년 전 한국에 날아왔던 크레용 총알이 계속해서 날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크레용 탄두 홀로그램 영상까지 함께 전시했다. 이게 시퀄 ‘뱅크시 월 아트 체육관’이다. 그리고 특별히 시퀄 전시장에서는 퍼포먼스도 함께 이뤄졌다. 증강현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계속 돌아다니면서 현장을 찾아다닌다. 실제로 그 현장에 들어온 느낌을 주기 위해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전시장 안을 돌아다니게 했다. 그로 인해 전시장은 웨스트우드 거리를 가져온 매개체가 된다. ‘뱅크시’ 시리즈의 오리지널, 프리퀄, 시퀄이 모두 함께 전시돼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주다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디어 파사드에 비디오, 1분 4초. 2012.

이야기를 듣다보니 호흡이 길고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듯 바로 살아가는 현장에서 자신이 몸소 느끼고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특정 장소나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넘나든다. 자폐아동인 사촌동생이 하루 종일 떠드는 말을 듣고 작업한 ‘무빙 박스’ 시리즈도 있다. 이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 오고 있는 작업이다.


“처음 사촌동생을 봤을 땐 병이 나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자폐증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보면서 궁금증이 생겼어요. 자폐아동이 음성언어를 뇌에서 처리하는 시간이 평범한 사람보다 평균 1/50초 느리다는 연구를 봤죠. 그걸 보고, 동생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무빙 박스’는 그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이었어요. 이삿짐 박스를 울림통으로 사용해 여기에 녹음한 동생의 목소리를 변형해서 넣거나, 소리를 편곡해서 마치 하나의 곡처럼 만들기도 했죠. 사람들에게 이 소리를 들려주는 거예요.”


소리가 담기는 박스의 크기도 가지각색이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크기의 박스도 있었고, 작은 박스도 있었다. 그런데 작은 박스는 해외 아무 주소에 발송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누가 받을지,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알 수 없다. 반송될 수도 있다. 해외로 보낸 박스와 관련된 피드백은 없었지만, 그것도 그 나름의 의미라 작가는 생각한단다.


“어떤 특정 시공간에 한정을 받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그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작업 스타일을 지향해요. 또 이 작업들을 그냥 눈으로 보고 그치는 게 아니라 함께 체험하고 생각하길 바라요. 작품은 작품, 관객은 관객이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게 아니라 작품에 관객들을 개입시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앞으로도 다양한 작업에 도전하고 싶어요.”


작품으로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작가. 꼭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다인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영화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장
“순간을 포착하는 기지와 재치”


관심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부터 그것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시각화 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던 주다인은 자신만의 새로운 생각을 구축하고자 늘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작품을 한 예로 소개하자면, 본인이 잠시 LA에 머무를 때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을 만난 순간을 포착해 기지와 재치로 퍼포먼스를 한 작품입니다. 그 작품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공간의 연결성을 보이며 3단계로 논리 정연하게 전개됐고, 이를 통해 주다인은 다양한 사고력을 가진 예술성이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작품에 부단한 노력을 쏟는 주다인을 관심 있게 지켜본 교수로서, 작품의 깊이를 더해가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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