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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전시- ‘표면 위, 수면 아래’전] 예술가들의 사유는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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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5-516호(신년) 김연수⁄ 2016.12.23 15:17:19

▲한성우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아마도 예술공간의 1층 전시실. (사진=아마도예술공간)


사유의 공간

조혜진, 한성우의 2인전 ‘표면 위, 수면 아래’를 살펴보기 전에 전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듯싶다. 요즘에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이 직접 전시 공간을 꾸미는 일이 일반화됐고, 그런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문화와 계층 혹은 권력의 문제 같은 사회-경제적 해석 또한 뒤따르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하나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면, 전형적 전시공간으로 여겨지는 깨끗한 흰색 벽의 ‘화이트큐브’라 불리는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화이트 큐브는 그것만의 철학-미술사적, 정치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하게 감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작품을 제외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다른 것에 대한 사유가 흰색으로 제거-제한된 감상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르게 얘기하면, 전시 공간 안의 작품 이외의 요소들이 불러일으키는 사유들을 허용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마도 예술 공간은 화이트 큐브 형식의 친절한 전시 공간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전시장들 중에서도 조금 더 당황스런 공간이 될 수 있다. 낡은 개인주택을 구조 변경 없이 비운 공간은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을 거치며 남긴 페인트가 흐른 자국, 테이프 자국과 같은 흔적들이 중첩돼있다. 어떤 작가들은 이 공간만의 특징을 이용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화이트큐브에 있던 작품이 이 공간에 오는 것만으로도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현실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돼있으며, 사람들은 그 가운데 자신의 사유를 끄집어낸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 명의 사유의 흔적이 남겨진 이 공간은 또 다른 현실의 공간이며, 예술가들은 이 공간에서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유의 계기가 되는 열쇠로서 예술을 제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복도에서 바라본 1층 전시실에 설치된 한성우 작가의 작품. (사진= 아마도 예술공간)


한성우: 표면 위

한편,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한성우와 조혜진의 작업은 형식과 주제도 상이하지만, 작품이 이 공간과 조우해 만들어내는 느낌 역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건물의 1층을 차지한 한성우의 작품은 어두운 색감의 유화들이다. 겹겹이 쌓인 두터운 붓질로 표현된, 언젠가는 사람이 머물러 있었을 법한 폐허가 된 건물과 부서진 집기들이 연상돼는 이미지들은 전시 공간 안에 한 작품인 듯 스며드는 결과를 나타낸다.

한성우는 첫 번째 관심을 가지게 된 작품의 소재는 목공실의 풍경이었다고 전한다. 작가에게 목공실이란 깔끔하게 정리된 전시 공간 뒤 남겨진, 혹은 숨겨진 더 실질적으로 와 닿는 공간일 수 있다. 사람들이 머물다간 흔적들이 남은 장소들을 관찰하며, 아무도 없는 부재의 공간에서 느낀 존재감에 대한 흥미를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는 무대, 즉 보이기 위한 장소는 사물들이 놓여야 할 장소에 놓이는 등 인과관계가 분명한 반면, 무대 뒷면은 자연스런 행동들에 의한 우연적 결과들이 펼쳐진다고 전한다. 그렇기에 그런 풍경들에 놓인 요소들, 예를 들면 일그러지거나 아무렇게나 놓인 사물들, 꾸며지지 않고 때 탄 벽들이 가지는 성격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작가는 더불어, “관객들이 완성된 이미지를 봤을 때, 이미지가 만들어진 과정이 같이 보이길 원한다”고 밝힌다. 그 이유는 그가 전달하는 것이 객관적인 실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달하는 정서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작가가 캔버스 위에 그린 것은 풍경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벽과 사물같은)이 가지는 특징적인 질감이 아니라, 관찰하고 탐구했던 성격이 전달하는 정서의 중첩이라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희미한 형상이 느껴지지만 가까이서 보면 추상적인 표현으로 보일만큼 요소들의 질감표현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그리는 과정에서 꾸준한 정서를 유지한 제작 과정을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한 시점의 정서가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이 축적돼 나타난 결과물은 이미지이기에 그 정서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름붙일 수 없는 정서들이기에 모든 작품들의 제목은 ‘무제’다. 

▲한성우 작가의 소품 작업. 모든 작품들은 제목이 없다. (사진=김연수)


조혜진: 수면 아래

2층에 전시된 조혜진의 작업은 욕실의 타일이나 다락방, 침실 등 예전 가정집 공간의 용도가 쉽게 짐작되는 공간에 영상, 입체, 기록물 등의 통일되지 않은 형식으로 선보인다. 조혜진의 작업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작업 주제에 대한 탐구 혹은 사유의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호기심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완성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미지들, 예를 들면 광고 전단지, 종이컵의 그림 등 유통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물들로부터 비롯한다. 종이컵의 흰 색을 못 견디고 채워지는 이미지들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 사물이 시작한 지점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조혜진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완벽한 사물들이 우리 곁이나 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며, 그것의 체계적인 생산-유통 시스템의 구성에 대한 탐구와 사유 그리고 와해를 시도한다. 순서로 따지자면, 이미지 유통 시스템에 그들이(체계적인 이미지를 생산-소비하는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뜬금없이 다른 이미지를 끼워 넣는 시도가 먼저다. 이번 전시 이전 그의 작업은 벽지에 철거민들에 관련한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어 신축 아파트에 실제로 도배되는 것이었다. 그 벽지는 실질적인 유통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조혜진, '모의주행작업실-공장-자판기'. 양면투사 영상, 7시간 42분. 2016.


이번 전시에서 그가 선보이는 작업들은 △자판기로부터 시작해 종이컵이 유통되는 생산 공장을 추적하는 과정을 내비게이션 영상과 서류 등으로 제시하는 것과 △여태까지 그가 해왔던 전시, 즉 완성된 이미지를 제시하기까지 관계 기관들과 주고받은 서류 및 작품 설치 계획이 담긴 도면과 그것을 그래픽 이미지로 만든 작업들, △그리고 입간판이나 현수막이 이미지가 제거된 채 하얀 입체물의 설치물로 제시된다. 

앞서 밝혔듯이 조혜진의 작업의 과정의 단계 중이며, 그가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는 것은 다양한 탐구(추적) 방법의 갈래에 가깝다. 이미지 생산 과정을 또다시 이미지화 하는 시도, 그리고 직접적인 행위와 구체적 사물을 이미지를 벗겨내며 이뤄지는 물리적인 탐구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의 작업들은 사유의 방법으로 감상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공간의 운영자 김성우는 ‘표면 위, 수면 아래’라는 전시 제목 역시 사유의 방법을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한성우, 조혜진 둘 다 우리 주변의 겉으로 드러나 이미지에서 시작하고, 추적해 들어가는 사고의 과정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의 표현에 있어서는 한성우가 캔버스 표면 위에서 축적의 방법으로 선보이고 있다면, 조혜진은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탐구하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이 암시하는 사유의 방법이란 예술가의 작업 방식보다 감상자의 사유 방법을 안내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전시 작업 과정을 이미지로 만든 조혜진 작가의 전시 공간. 오른쪽이 전시를 준비하며 발생된 각종 서류들이고 왼쪽엔 대칭으로 그 서류들을 바탕으로 만든 패턴 이미지다.(사진=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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