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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작가 공모 - 조각 ① 김의식] 잊기 위해 뼈에 새겨쓰는 처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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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2호 윤하나⁄ 2017.02.10 17:57:47

CNB저널은 제4회 표지 작가 공모전을 실시하고, 조각 분야의 작가 3명 김의식, 송유정, 장용선를 선정했다. 이번주는 그 첫 번째로 김의식 작가를 소개한다.

   

▲김의식, '나투라(Natura)'. 80 x 40 x 40cm, 레진, 잉크. 2014. (사진=김의식)

 

손가락만한 점토를 지문으로 누른 모양새일까? 또 다시 보면 새하얀 조각 위로 마치 일군의 개미가 행진하는 것만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개미들의 정체는 바로 글이다. 빼곡한 글이 질서 있게 조형물 위로 흐르고 있다. 조각을 회전하듯 감싸며 끝없이 이어지는 이 문장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김의식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나봤다.

 

잊기 위한 글쓰기

탁자, 배게, 모자, 운동화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이 표백된 듯 새하얗다 ('온 어 저니 On a Journey' 시리즈)그런데 이 백색의 오브제 위로 쉽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 글이 자리했다. 보통의 글쓰기에 기억하고 남기려는 목적이 있다면, 김의식 작가의 글쓰기는 망각을 향한다. 글을 쓰면서 잊고 싶은 기억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가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기를 맞았을 때, 그는 힘든 기억을 지우려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잊고 싶은 기억을 품고 있을 그의 글을 선뜻 읽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김의식, '트렁크(Trunk)'. 50 x 40 x 20cm, 다중매체. 2005. (사진=김의식)


그는 십여 년 전 갑작스레 가까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한다. 당시 고인이 쓰던 물건들을 태우는 장례를 접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그때부터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떨치고자 좋지 않은 기억, 잊고 싶은 기억들은 일기에 쓰고 태워버리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내 잊고자 쓰기 시작한 일기를 자신 주변의 사물 위에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물건들도 결국 언젠가의 장례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염하듯 그는 사물 위에 흰 젯소를 바르고 그 위에 일기를 썼다. 당시에 쓴 일기들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마치 그의 기억만큼이나 또렷했다.

 

뼈를 통해 인간을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또 다른 전환기를 맞았다. 교통사고로 심한 골절상을 입어 8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 그 기간 동안 수차례 찍은 엑스레이를 보며 김 작가는 생경한 경험을 했다. 분명 부러진 자신의 뼈임을 알면서도 엑스레이 속 뼈가 자신과 분리된 어떤 생명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진 속의 뼈는 더 이상 작가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뼈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나투라 Natura’시리즈).

 

그가 만든 뼈 작업들은 부드럽고 풍부한 곡선이 인상적이다. 개체와 부위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뼈 특유의 매끈한 곡선이 살아있다. 점토 같은 재질의 치과용 레진을 사용한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가 오래도록 연구해온 뼈에 대한 세세한 디테일을 포착할 수 있다. 혈관이 연결됐던 흔적인 자잘한 구멍들과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근육섬유 조직들은 그가 만들어낸 허구의 형태에 사실감을 부여했다.

   

▲김의식, '나투라(Natura)'. 80 x 40 x 40cm, 레진, 잉크. 2014. (사진=김의식)

▲김의식, '나투라(Natura)'. 레진, 잉크. 2014. (사진=김의식)

 

깊고 부드러운 곡형은 사포를 이용해 매끄럽게 표현하지만, 세밀한 디테일은 모두 손으로 직접 마감한다. 문지문이나 손톱자국 등 그의 손이 머물던 자국들이 곳곳에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광대한 사막이나 대지를, 또 누군가에게는 인체 특유의 굴곡을 연상시킨다.

 

트라우마의 치유 - 공존으로 향하다 

초기작인 오브제 시리즈에서는 겪은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듯 일기를 썼다. 또박또박, 띄어쓰기도 하며 문장의 형태도 온전히 갖췄다. 그런데 점차 작업량이 쌓이면서 일기를 쓸 일이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그리도 선명하던 당시의 기억들은 이제 해독조차 하기 힘든 드로잉의 형태로 남았다. 글씨의 형태만 무너진 것이 아니다. 선명했던 기억은 점차 모호한 언어의 글로 변해갔다. 어렴풋하고 흐릿해진 기억은 그만큼 불확실하게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과 당시 흐르던 음악, 햇살의 느낌 등 감각적인 기억만이 파편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분명해진 글은 그를 괴롭히던 기억으로부터의 치유를 뜻하기도 했다. 자신의 기억 안에서 맴돌던 아픔과 고뇌가 치유되면서 그는 점차 자기 밖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거대한 고래 지느러미뼈를 파편화해 공중에 매단 이 대형 설치작품은 마치 자연사 박물관에 걸린 모형을 연상시켰다. 그는 포획되거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간을 위해 이용되는 고래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느꼈다며 이를 담담하고 건조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의식, '스컬(Skull)'. 150 x 60 x 50cm, 레진, FRP. 2011. (사진=김의식)


조금씩 이동해온 그의 관심사는, 최근 기나긴 여진으로 인해 계속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경주로 자리를 옮겼다. 지진 피해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의 괴로움이 그의 이전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까. 그는 현재 경주를 간간이 오가며 피해 지역의 남은 기물을 살피고 피해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스스로 치유한 상처를 기억하면서 자기 주변의 상처받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다음 작업을 구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가 최근까지 집중했던 뼈, , 기억 그리고 잊는 것은 인류학적 관점으로도 일종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기를 쓰듯 과거의 기억을 따라가면서도 이를 극복하면서 현재의 우리를 고민하는 작업이 아닐까. 진한 허무함이 묻어나는 작품을 통해 그는 치유를 경험했다. 그렇게 치유된 작가는 이제 밖으로 눈을 돌려 생명, 그리고 공존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그의 작품은 하얗고 읽을 수 없는 일기에 뒤덮여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문 같은 그의 일기가 끝까지 작품 안에 함께 할 것만 같다.

 

▲김의식 작가. (사진=윤하나 기자)

 

김의식 작가는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레지던시를 최근 마쳤다. 오는 4월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올 하반기부터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 입주할 예정이다. 현재 홍익대학교 조소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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