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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블랙텐트 ⑥] 해고노동자가 세월호 아빠까지 되는 '노란봉투'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뭉친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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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3호 김금영⁄ 2017.02.17 11:45:08

▲연극 '노란봉투'는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에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어우른다.(사진=김솔)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금이야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는 월급 노란봉투를 건넸다. 그 노란봉투 안에는 아버지가 힘들게 일한 노동의 대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 노란봉투가 시퍼랬다. 안에서 해고 통지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연극 ‘노란 봉투’의 제목은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극 중 어떤 이에게는 월급봉투, 또 다른 이에게는 해고 통지서, 또는 조의금 봉투가 되기도 한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기리는 노란 색의 의미도 있다. 2014년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공연돼 온 ‘노란 봉투’(극단 돌파구)가 블랙텐트에서 2월 14~17일 공연됐다.


‘노란봉투’에는 수십억의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경기도 안산의 한 자동차 부품 조립공장 SM기계에서 업주가 부당한 구조조정을 하려 들자 노동자들은 60여 일 동안 파업으로 맞선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엄청난 손배가압류 액수. 파업 때문에 회사가 입은 손해라며 지호에게는 5억, 병로에게는 7억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에게 그 큰 돈이 어디 있겠는가. 정식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 차압 딱지가 여기저기 다닥다닥 붙기 시작한다. 둘은 “어쩌겠냐”고 겉으로는 웃지만,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유서를 써놓기도 한다.


▲탈북자의 삶을 다룬 '목란언니' 등 동시대 이야기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전인철 연출. 그가 이번엔 연극 '노란봉투'를 블랙텐트에 올렸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손배가압류는 “부당한 현실을 힘을 합쳐 이겨나가자”며 모였던 노동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앞서 병로에게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한다”며 SM기계 노조원들을 이끌었던 노조위원장 성민에게 떨어진 손해배상 청구액은 10억. 그에게는 아직 어린 아들 민호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진 스마트폰도 아들에게 못 사주는 자신이 점점 비참해졌고, 아들에게 미안했던 성민. 결국 그는 '어용 노조'에 가입했고 그에게 떨어졌던 빚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안 받아도 됐다는 듯. 그리고 성민은 함께 힘을 모았던 사람들을 상대로 쇠파이프를 휘두르게 됐다.


또 다른 노동자 손강호는 노조 사무실로 찾아와 노란봉투를 내민다. 거기엔 ‘기업노조(어용 노조) 가입신청서’가 들어 있었고 병로와 지호는 “꺼지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데 강호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다.


극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 상황들은 모두 실제 사례들에서 나왔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금속노조에 100억 원, 현대자동차 사측은 비정규직 지회 간부들에게 90억 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쌍용자동차 금속노조에 33억,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그대로 90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故 최강서 씨는 두 아이와 아내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입었던 조끼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158억 죽어서도 기억한다”고 적혀 있었다. 158억 원은 한진중공업이 노동조합에 청구한 손해배상 총액. 당시 최 씨는 35세. 창창한 나이였다.


이런 경우도 있다.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는 회사 경영진 얼굴 사진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1억 원의 손배소송을 당했다. 이유는 인격 모독이라는 것. 경영진의 인격이 1억이라면 노동자들의 인격은 얼마일까? 하이디스지회는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대항해 신발 던지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158억 죽어서도 기억한다”


▲광화문광장엔 해고 노동자들의 텐트도 함께 마련됐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대한 국가손배 현황을 적은 텐트도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연극 ‘노란봉투’는 이 현장들과 함께 했다. 전인철 연출은 앞서 탈북자 이야기를 다룬 ‘목란언니’를 선보였고, 오는 6월엔 박정희와 김정일 이야기를 담은 ‘국부(國父)’를 선보이는 등 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 왔다. ‘노란봉투’도 그 과정이다. 파업 현장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을 직접 눈으로 봤다. ‘노란봉투’의 병로, 지호, 성민, 강호는 가상이자 현실의 인물이다. 누구나 병로, 지호, 성민, 강호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극에 사실적으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손배가압류라는 것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인간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극에 아름다운 이야기만 펼쳐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가슴에 와 닿죠.”


대개의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하지만 파업-투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부당함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계속돼 왔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조용히 살아야 밥그릇 챙긴다”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된다” 식의 교육이 횡행했고, 이게 똑똑하게 살아가는 법이라는, ‘가늘고 길게 가자’ 식의 가치관이 한국인의 머릿속 주입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재벌기업 총수들이 수감된 모습을 희화화한 조형물이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손배청구 총액은 1600억 원, 가압류 총액도 175억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손배청구 총액이 345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배나 폭증한 수치다. 기업의 힘은 커졌고, 개인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가 생각난다. 갑의 위치인 상사는 ‘열정 페이’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답한 부하직원이 대박이다. “페이를 줘야 열정이 생기죠.” 열정이 없다는 이야기에 이제 노동자들은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 교육 과정에서 노동에 관해 가르쳐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노동조합을 꾸리라고 한 뒤 노조위원장도 선출하고, 회사와 협상하는 과정도 배우죠. 어릴 때부터 노동, 그리고 노동자 권리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요. ‘눈에 띄지 않아야 회사 생활 잘 할 수 있다’ ‘불평불만이 많고 배부른 소리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렇기에 파업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는 거리감 있게 느껴지죠. 이건 노동자로서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멀리하는 거예요. 권리를 되찾기 위해 알아야 하고, 교육 받아야 합니다.”


손잡고는 시민과 함께 ‘노란봉투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손배가압류를 풀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법이다. 이 움직임에 4만 7547명이 힘을 모아 14억 6874만 원을 모았다. 노란봉투 법은 현재진행형이다. 20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뜻을 모으고 있다. 연극 ‘노란봉투’도 노란봉투법 캠페인과 연계해 열리며 대학로 극장 및 노동현장 등을 찾아왔다.


‘노란봉투’에는 세월호가 등장한다. 당초 공연 구상에 세월호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장에서 전 연출은 역사학자 한홍구를 만났고,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고.


“세월호 아이들이 안산 노동자들의 자식이란 걸 알게 됐어요. 노동자의 슬픔과 세월호 가족의 슬픔이 맞닿아 있음을 느꼈죠. 두 슬픔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연극의 배경을 안산 소재 공장으로 하고, 세월호 추모의 의미까지 담았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연극 '노란봉투' 속 사람들은 아프다. 손배가압류로 수십 억 빚을 떠안게 된 해고 노동자들은 똘똘 뭉치려던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갈등을 겪게 된다.(사진=극단 돌파구)

극 속에서 성민은 아들 민호를 위해 동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가 살아가는 이유였던 민호가 세월호를 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성민은 정신을 놓아버리고 아들을 따라가는 선택을 한다. 그러자 성민이 동료를 배신했다며 분노를 드러내던 병로의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제 분노가 아니라 이해다. 생전의 민호가 아버지 성민을 위해 샀다는 넥타이를 대신 매는 장면에서, 계속 성민을 탓하고 미워했던 병로가 다시 일어선다. 극에 많이 등장하는 대사 ‘네 잘못이 아니야’는 분노의 대상이 처음부터 달랐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대상은 바로 이 잘못된 세상이라고.


“극중 인물들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에요.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 때문에 갈라서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자신을 탓하거나 분노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이 왜 자신을 탓해야 합니까? 이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잘못이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 잘못된 구조를 힘을 모아 이겨나가야 합니다.”


전 연출은 또한 이 과정에 있어서 노동시장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IMF로 위기를 맞으며 완전 자유경제로 오픈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이야기한 게 회사의 세계화예요. 이 과정에서 효율적인 발전을 위한답시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들을 편입시키고, 언제든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을 코너로 몰았죠. 진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노동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주는 게 중요한데도 말이죠. 북유럽에도 비정규직이 많지만, 복지 제도가 잘 돼 있어요. 계약이 완료되더라도 바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죠. 노동자가 불안정해지면 나라 자체가 결국 불안정해져요.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란 걸 알아야 해요.”


▲연극 '노란봉투'에서 흩어졌던 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은 갈등을 거쳐 다시 모이게 된다.(사진=극단 돌파구)

이 공연에는 매회 현실의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이번 블랙텐트에서도 408일 굴뚝 농성을 벌인 차광호 씨가 공연을 본 뒤 “함께 힘을 합치자”고 외쳤다. 무대에 덕지덕지 붙은 종이엔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죽어 간 노동자들의 사진이 붙여졌다. 공연 마지막에는 실제 고공농성을 한 노동자들의 영상이 등장한다. 의지를 다지며 전광판으로 올라가는 병로의 모습 뒤에 등장하는 이 영상은 극이 현실로 이어짐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극중 대사가 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돈으로 뭉치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뭉칠 수 있을까요?” 전 연출은 처음에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자본주의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힘을 갖는 제도죠. 그래서 금수저처럼 시작부터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죠. 바로 투표예요. 돈이 많든, 적든 동등하게 한 표씩을 행사해요. 어쩌면 지금의 이 어지러운 세상은 우리가 투표를 잘못한 데서 비롯됐어요. 나라에 관심이 없고, 때로는 정치가 싫다는 이유로 투표의 권리를 버리기도 했죠. 이젠 이 소중한 권리를 지켜야 해요. 다가올 투표에서 우리가 보여줘야죠. 세상을 바꾸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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