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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추상미술전] "꽁꽁 언 한·중 관계, 예술로 넘는다"

더페이지 갤러리, '절대성'전 기획 2년만에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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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7호 김금영⁄ 2017.03.17 10:44:09

▲더페이지갤러리가 중국의 추상미술 작가 7명의 작업 세계를 살펴보는 '절대성(Absoluteness)' 전시를 선보인다. 샤오 이농의 작품(앞)과 츠췬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일부.(사진=더페이지 갤러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한국과 중국 사이의 공기가 차갑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도 여기서 피해가지 못했다. 최근 배우 하정우의 중국 영화 출연이 무산됐고,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2년 동안 준비한 중국 투어가 취소됐다. 이 가운데 더페이지 갤러리가 중국의 추상미술 작가 7명의 작업 세계를 살펴보는 ‘절대성(Absoluteness)’ 전시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중국에 만연한 한한령(限韓令)을 넘어 진정한 문화 예술 교류의 힘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전시를 기획한 펑펑(Feng Peng) 중국 북경대 교수는 “전시는 2년 전부터 준비했다.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함과 동시에 한국 정서에도 맞을 수 있는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한국과 중국 사이가 요즘 좋지 않다. 하지만 예술은 정치적인 문제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작은 전시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리가 더욱 많이 마련돼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딩이, '어피어런스 오브 크로스(Appearance of Crosses) 2016-3'. 피나무 판에 혼합 매체, 240 x 240cm. 2016.(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중국 내에만 한국에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 또한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이번 전시는 중국의 문화를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친근하게 접근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신경 썼다"고 더페이지 갤러리 측은 밝혔다. 중국 추상미술을 통해 중국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서양 추상미술의 발전은 그 맥락이 분명하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발전에서 시작해 칸딘스키, 말레비치, 몬드리안 등 예술가로부터 창시됐다. 반면 중국 추상미술은 전통적 관념을 바탕으로 한 토착 양식과 새로운 관념을 끌고 들어온 외래 양식 사이 갈등이 있었다. 펑펑 교수는 “추상미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서양 추상미술을 받아들일 때 처음엔 형식, 즉 시각적인 면을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중국의 전통과 배경을 담은 방식과의 대치 상황이 있었다. 작가들은 여기서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중국 작가들만의 새로운 추상미술 개념을 정립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마슈칭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앞에서 봤을 땐 하나의 색이 보이지만 옆면을 보면 무수한 색의 쌓임이 발견된다.(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추상미술 개념은 내면화다. 펑펑 교수는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은 1985년부터 추상미술을 해 왔다. 단계별로 변화가 있었는데, 외형적으로는 서양 추상미술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 내면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인으로서 겪은 경험과 중국에서의 사회적 경험이 녹아 들어갔다. 작품들을 통해 중국 사회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인 딩이의 작품은 일관된 십자형 패턴을 보여준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마치 중국 서예의 선이 지닌 질서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딩이 작가는 “이 작업은 1985년부터 꾸준히 이어 온 스타일”이라며 “당시 전시 때 중국인들은 추상미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적 배경도 그랬고, 구상적인 부분에서도 중국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80년대 후반부터는 유행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내가 느낀 중국을 작업에 옮기는 데 집중했다. 중국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레 작품에 담겼는데, 내게도 새로운 시도였다”며 “30년 동안 추상미술을 했는데, 이제 중국 내에서도 서서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치적으로 치우치거나, 구상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느끼고 경험한 것을 담는 데 집중한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단순한 구조 속 치열한 참선과 수행의 과정


▲천단양, '바흐 디 이퀄 템페러먼츠(Bach the Equal Temperaments) 131#'.(사진=더페이지 갤러리)

마슈칭 작가의 작품을 볼 때는 앞뿐 아니라 옆도 봐야 한다. 앞에서 봤을 땐 하나의 색이다. 그런데 옆면을 보면 다양한 색깔이 보인다. 마슈칭 작가는 “회화의 의미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회화의 세 가지 요소는 시간, 공간, 색감이다. 이 중 시간과 공간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로 중국에서는 정의 내린다. 그런데 이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결과물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도 굳이 화면의 뒤나 옆을 찾아보는, 즉 과정에 주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슈칭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속에서 시공간이 가시화되는 과정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은 무한대인 것 같지만 제한적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저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다른 공간을 바라보고,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제한적인 시각을 깨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과정을 살펴보는 것,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아오 지엔화, 'LJH160428'.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 x 300cm(2 pieces). 2016.(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이밖에 다른 작가들도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내놓았다. 천단양의 화면은 불규칙적인 가운데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경험한 바람과 비 소리, 따스한 햇볕 등을 어떤 형태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담았다. 츠췬의 작품은 선들의 집결이 특징이다. 세밀한 선들이 서로 교차하고 배열되면서 화면을 풍부하게 만든다. 선을 이어가는 과정 속 작가의 수양이 느껴진다.


리아오 지엔화는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경험, 그리고 여기서 느낀 깨달음을 작업에 담았다. 필획에는 생명의 맥동을 담는다. 이 필획이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들에는 생명의 아름다움이 남는다. 지극히 간단하고 평범해 보이는 형식이지만, 화면에 담긴 생명 에너지는 힘이 넘친다. 샤오 이농은 동양 문화가 지닌 비움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서양에서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개념의 ‘실(實)’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는 중국 문화에서 ‘허(虛)’의 개념을 들며, 실질적인 것들로만 해결할 수 없는, 비움의 미학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삶의 관점을 제시한다.


▲장 쉬에루이, '270 블루(Blue)'. 캔버스에 아크릴릭, 60 x 90cm. 2009.(사진=더페이지 갤러리)

마지막으로 장 쉬에루이가 보여주는 화면은 조용하고 단순하다. 여기에서는 반복적이고 느린 과정이 느껴진다. 작가는 매순간의 자아 존재와 마음의 변화를 포착해 화면에 옮겨 왔다. 화면엔 수천, 수만 개의 작은 네모들이 자리를 채웠고, 이 네모들이 모여 전체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통일된 세계 속 혼돈을 겪는 수많은 네모들은 작가의 내면과도 같다.


펑펑 교수는 “현재 중국 추상미술의 중심엔 참선(參禪), 즉 내면과 이야기하는 수행 과정이 있다. 중국은 매우 큰 나라다. 그러다보니 공존하는 사회적 현상이 굉장히 많다. 따라서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 가운데 작가들은 반복의 수행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특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읽고, 더 나아가서는 중국의 추상미술을 가깝게 느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페이지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의 여느 중국 전시와는 다르다. 중국의 예술세계에서 추상미술을 태동시키고 이를 지난 몇 십 년 동안 동안 굳건히 자리 잡게 한 작가들의 노력을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적인 맥락에서 해석한 추상주의를 볼 수 있다”며 “순수한 내면의 상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중국 추상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읽고, 또한 국제 미술시장에서 우뚝 선 중국 현대미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5월 14일까지.


▲샤오 이농, '리그니어스 하트(Ligneous Heart)'. 나무, 페인트, 가변 설치.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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