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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한국 이슈에 귀기울이다

탄핵부터 환경까지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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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5-546호 김금영⁄ 2017.07.20 17:51:28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현장. 이불 작가의 ‘천지’가 설치돼 있다. 사진 © 토마스 살바 세드릭 코로이 - 루멘토.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하이라이트(highlight). 주요 부분을 뜻한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하이라이트’격 소장품이 대규모로 모였다. 전시명도 ‘하이라이트’다.


파리 소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1984년 설립됐다.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인 모델로 인정받은 까르띠에 재단은 설립 이래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열어 왔다. 소장품은 현재 1500여 점에 달하고, 50여 개국, 350명 이상의 아티스트를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다. 그런데 그 까르띠에 재단이 한국에 관심을 보였다.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출구(Exit)’. 몰입형 6채널 비디오 및 사운드 설치,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추라’ 전시 커미션 작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08.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12년). ©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마크 한센, 로라 커건, 벤 루빈. 로버트 제라드 피에트루스코 및 스튜어트 스미스 협업. 사진 © 뤽 보글리.

이번 전시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까르띠에 재단 30주년 기념전이 끝났을 때였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홍이지 큐레이터는 “당시 에르베 샹데스 현대미술재단 관장은 재단이 쌓아 온 방대한 아카이브와 업적을 돌아보는 동시에 ‘혹여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어 했다”며 “그리고 방대한 규모의 소장품 전시로 이를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 까르띠에 재단의 일부 작품이 다른 그룹전 등에 속하거나 일본에서도 소장품 전시를 연 적이 있었지만 작품 수가 많지는 않았다”고 짚었다.


그리고 대규모 소장품 전시를 선보일 곳으로 특히 한국에 관심을 보였다고. 홍 큐레이터는 “샹데스 관장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에 관심이 있었다. 아시아 순회 전시를 계획했고, 특히 그 첫 시작을 한국에서 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당시 퐁피두센터 한국 분관에 대한 이슈로 전 세계 미술인의 관심이 한국에 쏠렸을 때였다. 또한 부산·광주 비엔날레 등 대규모 비엔날레를 꾸준히 선보여 온 한국에 샹데스 관장은 흥미를 느꼈다. 전시를 위해 내한했을 때도 그는 “한국의 서울은 창의적인 도시다. 새 모험을 온 것 같은 기분”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뫼비우스, ‘다시 지구’. 필름, 8분, ‘뫼비우스-변형-형상’ 전시 커미션 작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2010~2011. © 뫼비우스 프로덕션. 사진 © 올리비에 우아다.

특히 까르띠에 재단은 한국의 이불 작가와도 인연이 있었다. 2007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까르띠에 재단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이불 작가의 작품이 재단의 소장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한국 작가와의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관련해 샹데스 관장은 “이불 작가와 협업을 하면서 한국, 그리고 서울을 알게 됐다. 그땐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이번 전시까지 인연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이 여기에 있다. 까르띠에 재단의 소장품과 더불어 한국 작가 3인(파킹 찬스, 이불, 선우훈)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단순 소장품 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과 까르띠에 재단의 전시팀이 머리를 맞댄 결과다.


현 시대의 ‘하이라이트’라는 공통 분모


▲데이비드 린치, ‘바인더 작업 #1, #2’. 드로잉 259점, 종이에 혼합매체, 가변크기, 1970~2006.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11년). © 데이비드 린치.

홍 큐레이터는 “까르띠에 재단으로부터 첫 전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서울시립미술관은 공공기관으로서의 고민이 있었다. 전시가 단순 소장품을 보여주는 식, 또는 상업적으로 연계되는 지점을 지양하고자 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며 “그런데 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싶은 재단의 열의가 대단했다. 매번 제의가 올 때마다 내용이 하나씩 추가됐다. 그래서 재단과 한국 전시팀이 함께 기획을 하고 전시를 꾸려간다는 전제 아래 전시 결정이 이뤄졌다. 한국 작가 3인이 이번 전시에 포함된 것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재단의 소장품, 한국 작가 선정 과정. 자칫 잘못하면 서로 다른 동떨어진 이야기가 한 공간에 물과 기름처럼 전개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전시를 뚜렷하게 하나로 이어준 주제가 ‘드림 프로젝트’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업으로 마음껏 펼치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재단이 작가들의 작업을 후원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시대의 이슈에 주목한 작품들이 선택됐다. 즉 이 시대의 ‘하이라이트’에 주목하는 것. 전시를 준비하던 시기의 영향도 있었다.


홍 큐레이터는 “전시 준비가 한창 이뤄지던 지난해 한국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또한 선거 시기를 맞아 사회, 정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때였다”며 “전시 준비 기간 동안 재단 측 사람들이 한국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업을 살폈다. 그런데 방한할 때마다 한국의 사태를 보고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로 체감된다는 듯 공감을 보였다. 이 공감을 전시로 잘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버니 크라우스,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비디오 및 사운드 설치, 84분, 필름: 레이몽 드파르동.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전시 커미션 작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16.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17년). © 버니 크라우스 © UVA. 사진 © 뤽 보글리.

1500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물리적으로 투어 전시가 가능한 작품들을 1차적으로 선별하고, 이중 재단이 아시아에서 보여주고 싶은 작품,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에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을 최종적으로 선별했다. 전시는 크게는 세계인이 관심을 가진 동시대 이슈에 대해 다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 홍 큐레이터는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의 ‘출구(Exit)’와 레이몽 드파르동의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Hear them speak)’, 그리고 버니 크라우스의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를 추천했다.


‘출구’는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추라’ 전시 커미션 작품으로 협업과 소통을 화두로 던진다.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지구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 방대한 화면이 펼쳐진다. 홍 큐레이터는 “미국의 미술가와 건축가 그룹인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가 미술가-건축가인 로라 커건, 통계학자-예술가인 마크 한센, 그리고 여러 분야의 주요 과학자와 협업한 작품”이라며 “계속해서 돌아가는 지구의 모습을 중심으로 인구의 변화, 정치 난민과 강제 이주, 해수면의 상승과 침몰하는 도시 등 여러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과 더불어 현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원주민, 사라진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 등의 모습을 통해 생존의 이야기를 담는다. 홍 큐레이터는 “작가가 아마존, 남극 등 여러 지역에 가서 현 시대에 사라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포착했다”며 “한 예로 한 부족의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는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는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인데 영영 사라지는 건가요’ 하고 묻는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또한 사라지는 소리들을 담았다. 상업 음악을 했던 작가가 자연의 소리에 관심을 돌렸다.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지기 전 아름다운 숲의 소리, 지금은 멸종한 동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몇 년에 걸쳐 긴 시간 동안 수집했다. 전시장에서 이 소리들을 한 자리에서 들어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 자성과 성찰의 시간도 갖는다.


이불·파킹찬스·선우훈이 풀어낸 탄핵·남북관계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정체성, 와카타 우’ 연작.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점, 가변크기. 1976.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04년). ©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주목된다. 이들은 좀 더 한국 사회에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불이 선보이는 작업은 ‘천지’다. 2007년 재단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당시 선보인 작품이다. 큰 욕조가 바로 눈에 띈다. 홍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 맥락과 맞닿아 선정된 작품이다. 작품엔 군사정권 시절 억압과 물 고문을 상징하는 욕조가 보이는데, 여기에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대입됐다. 오늘날 정권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까르띠에 재단에서도 특히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파킹찬스의 전시 참여 소식도 화제가 됐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으로 이뤄진 파킹찬스는 신작 ‘격세지감’을 선보인다. 2000년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히트를 쳤다. 당시 남북 공동선언 발표가 이뤄지는 등 남북 사이 평화의 물결이 이는 듯 했지만 2016년 남북의 관계는 냉각됐다.


▲론 뮤익, ‘침대에서’. 혼합매체, 162 x 650 x 395cm. ‘론 뮤익' 전시 장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0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06년). ©론 뮤익. 사진 © 패트릭 그리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격세지감’은 ‘어떻게 과거보다 후퇴할 수가 있느냐’는 한탄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홍 큐레이터는 “남양주에 설치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튜디오가 올해 철거된다. 철거되는 스튜디오처럼 과거 평화의 분위기가 활짝 피었던 것은 마치 없었던 일인 듯 마치 망령처럼 우리를 떠돌고 있다. ‘격세지감’은 이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남양주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영화에서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오묘한 지점이 전시장에 형성된다.


선우훈의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도 화제의 작품이다. 재단 측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 작품 중 하나다. 1989년생인 작가는 이불, 파킹 찬스 등 선배 작가와 달리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 요즘 20대 젊은 작가이자 웹 창작자로서 시대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웹툰이다. 디지털 시대에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발언 기회가 있는 곳이 인터넷 공간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지난해 탄핵 사태를 웹툰으로 보듯 스크롤로 내리며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또 탄핵 사태를 마주한 사람들이 SNS를 통해 끊임없이 화두를 만드는 과정들도 눈에 띈다.


▲파킹찬스, ‘격세지감’. 3D비디오 및 몰입형 3D 사운드 단편 영상, ‘하이라이트’ 전시 커미션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2017. © 박찬욱과 ‘공동경비구역 JSA’ 판문점 세트, 흑백 필름사진, 2017. 사진 © 박찬경.

홍 큐레이터는 “한국에는 웹툰이 활성화됐지만, 프랑스에는 웹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선우훈 작가의 작업을 매우 흥미로워 했다. 처음에 이 웹툰의 개념을 재단 측 관계자들이 이해하는 것부터가 먼저였다”며 “디지털 시대에 작업 방식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웹 아카이빙 작업 또한 중요한 이야기라고 판단했고, 선우훈의 작업을 보여주게 됐다. 작가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젊은 웹툰 작가로서 느낀 사회 이슈를 만화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론 뮤익, 데이빗 린치, 사라 지, 레이몽 드파르동, 쉐리 삼바,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장-미셸 오토니엘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 전관에서 8월 15일까지 펼쳐진다. 각 작품이 만들어내는 이 시대의 ‘하이라이트’ 지점이 매우 흥미롭다.


홍 큐레이터는 “내년 서울시립미술관도 30주년을 맞는 시기에 동 시대의 이슈를 돌아보는 교집합과도 같은 전시가 마련됐다”며 “이 이슈들을 작품으로 어렵지 않게 마주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또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대중과 함께 공감하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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