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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강요배] 4.3 아픔 품은 작가가 열어내 보인 마음속 '상(象)'

학고재서 작가의 인생 담은 ‘상(象)을 찾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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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2호 김금영⁄ 2018.06.15 12:27:32

강요배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어떤 그림이 그림다운가?” 강요배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작가는 학고재에서 1부 ‘상(象)을 찾아서’, 2부 ‘메멘토, 동백’으로 나눠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 지금까지 쌓아 온 자신의 작업 세계를 펼친다.

 

사람들에게는 2부 전시의 작업들이 보다 익숙할 수 있다.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강요배의 주요 작업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작가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을 색출했고, 색출 당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등 당시 흔히 쓰인 이름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 간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는 절대 남들이 지을 것 같지 않은 이름 글자를 찾아 요나라 요(尧), 북돋을 배(培)로 작가의 이름을 지었다.
 

강요배, '수직 · 수평면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 × 161.7cm. 2018.(사진=학고재)

이토록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살았던 작가는 성장해 제주의 역사를 공부하다 제주 4.3 항쟁에 다시금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작품 50여 점을 완성해 1992년 학고재에서 전시 ‘강요배 역사 그림 - 제주민중항쟁사’를 통해 4.3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되는 그의 작업은 ‘동백꽃 지다’로 널리 알려졌다. 2부 전시는 이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이에 앞서 열리고 있는 1부 전시에서는 ‘동백 이후’의 시기 작가의 근작들을 볼 수 있다.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의 역사화를 그릴 때 작가의 심신은 지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서울을 떠나 그의 고향 제주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롯이 그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요배, '오지 않는 길양이'. 캔버스에 아크릴릭, 먹, 90.5 × 72.5cm. 2018.(사진=학고재)

작가는 “그간 치열한 삶 속 그림을 그려 왔다면 이번엔 그림에 대해 찬찬히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사진이 일상화된 현재의 시대에서 사진과 그림 사이의 차별성은 무엇인지, 과연 어떤 것이 그림다운 것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가 전시명 ‘상(象)을 찾아서’에 드러난다.

 

사진과 그림의 다른 점

 

강요배, '치솟음'.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 × 194cm. 2017.(사진=학고재)

‘상(象)을 찾아서’에서 상은 ‘코끼리 상’으로, 옛날 보기 드문 동물이었던 코끼리를 묘사하기 위해 말 대신 그림을 그려 설명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한다.

 

작가는 “상(象)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는데, 가장 그 근본으로 돌아가면 핵심적인 이미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본질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진과 다른 그림 본연의 역할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즉 표피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인상적인 상(象)을 찍어내는 것을 그림의 본질이라고 느꼈다는 것.

강요배, '우레비(雷雨)'.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5 × 364cm. 2017.(사진=학고재)

그리고 작가는 거창한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이 보고 느끼는 주변의 환경들의 상(象)을 화면에 옮겼다. ‘오지 않는 길양이’의 경우 한동안 작가를 따라다닌 길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찾아오지 않아 작가를 아쉽게도 만든 주인공이다. ‘수직·수평면 풍경’은 제주에 전에 없던 폭설이 내렸던 날 작가의 작업실 앞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눈이 쌓인 수돗가와 그곳에 심은 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가 정겹고 사랑스럽다. 두 작품은 화면을 보면 바로 그 형태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보는 순간 궁금증을 자극하는 작품들도 있다. ‘치솟음’ ‘물부서짐’ ‘우레비(雷雨)’의 경우 작품명을 보지 않고 화면만 보고선 바로 그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긴 힘들다. 추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까만 배경을 바탕으로 하얀 붓질이 마구 덧칠된 ‘치솟음’과 ‘물부서짐’은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비슷하게 거친 느낌이 드는 ‘우레비(雷雨)’는 천둥번개가 치던 날 하늘을 본 뒤 그린 그림이다.

 

강요배, '물부서짐(碎水)'.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 × 130cm. 2016.(사진=학고재)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건 눈이 아닌 마음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을 보고 바로 그리지 않고 그 상(象)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간직한다. 그리고 나중에 작업실에서 이 강렬했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그림을 그린다”며 “본 것을 내 마음을 통해 여과해 추상적인 이미지로 그린다. 상상적인 요소들 또한 표현한다는 점에서 표현주의적 측면도 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거친 화면에서 풍겨 나오는 강한 느낌은 그가 사용한 붓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일반적인 붓과 함께 빗자루, 말린 칡뿌리,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사용해 그린다. 작가는 “제품화된 붓은 얌전한 느낌이다. 거친 느낌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빗자루가 내 손에 더 익숙하다. 가슴이 답답할 때 분출하듯 터져 나오는 느낌을 그리는 데 적격”이라고 말했다.

 

강요배, '1월 한라산'. 캔버스에 아크릴릭, 65.2 x 100cm. 2007.(사진=학고재)

최근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는 1부 전시에는 그간 작가가 그려왔던 큰 역사가 아닌, 작가 개인의 소소한 역사가 담겼다. 학고재 측은 “작가는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미술 지식 외에도 역사와 자연의 형질까지 통찰한 작가는 이번엔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고 밝혔다.

 

이어 “내면에 들어온 심상을 추상으로 펼쳐놓은 작가의 그림은 그가 매일 집에서 작업실을 오가며 보고 느낀 제주의 풍경, 즉 그의 삶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소소한 풍경 속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며 “강요배가 ‘삶의 정수를 찾아서’ 가는 여정을 이번 전시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부 전시 ‘상(象)을 찾아서’는 학고재 전관에서 6월 17일까지 열린다. 2부 전시 ‘메멘토, 동백’은 뒤를 이어 6월 22일~7월 15일 열릴 예정이다.

 

강요배 작가의 개인전 '상(象)을 찾아서'가 열리는 학고재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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