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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이원희] “초상화 마음껏 그릴 수 있는 각축전 만들고 싶다”

‘2018 아트바캉스: 스타 작가와 함께’전에 제자들과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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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3호 김금영⁄ 2018.08.30 10:08:19

이원희 작가는 30여 년 간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려 왔다.(사진=CNB미디어)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6년 노화랑에서 열렸던 이원희 작가의 전시엔 하얀 설경이 가득했다. 이번엔 배우 고두심과 하정우,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 등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2018 아트바캉스: 스타 작가와 함께’전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휴가는 짧고 예술은 길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일반 예술 장르부터 서브컬처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가 9인을 초대하는 자리다. 임옥상(회화), 김중만(사진), 허영만(만화), 최병훈(디자인), 윤광조와 제자들(도자기), 오윤(판화), 길상화사(민화), 전이수(동화) 그리고 엘로퀀스(아트샵)가 참여한다. 이원희는 초상화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로서 전시에 함께 한다.

 

‘2018 아트바캉스: 스타 작가와 함께’전이 열리는 인사아트센터 전시장. 이원희 작가의 아뜰리에를 전시장에 들여온 콘셉트를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30여 년 긴 세월 동안 풍경화, 초상화를 꾸준히 그려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풍경화와 초상화의 대가’로 부르지만 작가는 “나는 단지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상화가 또는 풍경화가라는 식으로 카테고리에 묶인 채 작업하고 싶지 않다. 나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싶을 걸 그릴 뿐”이라며 “다만 오랜 세월 초상화를 그리다 보니 ‘이원희식 초상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원희식 초상화는 무엇일까? 작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2016년엔 뉴욕 유엔 본부에 제8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를 거는 등 유명 인사를 그려 화제가 됐다. 하지만 단지 유명 인사를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초상화가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마치 그림 안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생동감 때문. 지금까지 오기 위해 작가는 초상화에 대해 참 많이 공부하고 그렸다고 한다.

 

이원희, ‘고두심’. 캔버스에 오일, 40 x 40cm. 2004.(사진=이원희)

주로 풍경을 그리던 작가가 초상화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된 시기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대기업 부회장의 의뢰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초상화도 한 점 그릴 기회가 있었는데, 초상화를 받아들고 매우 기뻐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초상화 의뢰도 들어오는 등 초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인간”이라며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는 인간을 그려 왔다. 초상화에 관심을 갖고 그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 작가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파리의 여러 화랑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혔고, 1996년엔 모교인 계명대학교에 전임 교수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이때 또 다른 전환기를 맞았다. 작가는 “학생들에게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었다. 마침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전시가 열려서 학생들과 갈 기회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반응을 보고 학생들과 러시아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원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캔버스에 오일, 135 x 100cm. 2017.(사진=이원희)

1997년부터 매년 여름 작가는 학생들과 러시아에 있는 미술학교 레핀 스쿨에 가서 실기 연수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떠난 러시아였지만 자신 또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매일 모델 그리는 수업을 5시간씩 받았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면 러시아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이 시간들이 탄탄하게 쌓여 지금의 이원희식 초상화를 구축하는 자양분이 됐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500여 점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의 작업 방식 중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그림 그릴 대상의 사진을 직접 찍거나 수많은 스케치를 하고, 교류의 시간을 갖는 것. 적어도 1~2시간은 대화를 나누고, 더 시간이 있을 경우 몇 번 만나서 밥도 먹고, 골프도 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낸다. 번거로워 보이는 이 과정은 그림에 감정을 담기 위한 중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작가는 과거 풍경화 전시에서 만났을 때도 “그림 속 설경은 모두 실존하는 것으로, 직접 그 풍경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담기 위해 매년 설경을 보러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초상화 또한 그렇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뿐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이미지가 들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눈을 감아도 상대방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떠올릴 만큼 몰입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알아야 하고, 상대방 또한 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경직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우러나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아뜰리에를 구성한 이유

 

이원희, ‘권옥연 작가’. 캔버스에 오일, 45.5 x 65.1cm. 2014.(사진=이원희)

그러다보니 그림을 그리며 특별한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30여 년의 작업 기간 동안 초상화를 10점 정도 그려준 사람이 있다. 작가와 젊은 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아 온 지인의 세월의 흔적이 초상화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즉 작가의 초상화는 상대방의 ‘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역사’까지 담는다. 일분일초가 급격하게 흘러가는 유독 바쁜 요즘 세상, 그 중에서도 시간을 내기 힘든 유명 인사의 의뢰가 들어왔을 때 교류의 시간은 많이 갖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조금 대화를 나누거나 직접 사진을 찍는 건 초상화를 그릴 때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작업 방식이다.

 

작가가 초상화를 그리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 문화가 활발했고, 뛰어난 어진이 남아 있는 등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긴 역사를 지녔다. 특히 작가는 김홍도와 이명기의 합작 ‘서직수 초상’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높은 작품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과거엔 이토록 좋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할까?’라는 충격도 받았다는 것.

 

이원희, ‘재현이’. 캔버스에 오일, 53 x 72.7cm. 2002.(사진=이원희)

작가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 역사 속 여러 초상화 자료를 찾아봤는데 놀라웠다. 한국 근대의 서양화 전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유럽과 비교해 수준 격차가 컸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그 원인을 파헤치다가 유화 재료의 물성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 힌트를 얻은 작품이 ‘서직수 초상’이었다. 조선 시대에 뛰어난 기법의 초상화가 발달했었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 깨달았다. 초상화에 정신까지 담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작가는 유화의 전통 기법을 배우고 습득하며 담백한 화면을 그려내기 위해 독학하는 노력의 시간을 거쳤다.

 

초상화로 개인전을 열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온 작가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 도중 전시장에 마련된 한 공간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그린 소묘, 크로기도 함께 전시한다. 또한 작가와 그의 동료 작가들에게 초상화 제작을 의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즉 사진을 찍고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에 작가뿐 아니라 제자들이 함께 한다.

 

이원희, ‘계명대학교 신일희 총장’. 캔버스에 오일, 100 x 100cm. 2014.(사진=이원희)

작가는 “초상화는 근대 시기까지만 해도 화가들에게 중요한 일거리였다. 하지만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초상 문화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고, 초상화의 가치 또한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초상화가 필요 없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초상화는 미술계의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존재하며 자리를 지켜 왔다. 사람들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요소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제대로 초상화 판을 깔아보겠다는 의도를 지녔다. 작가는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에게 초상화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또한 사람들도 초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 전시장 내부에 작은 아뜰리에를 구성했다. 그동안 초상화로 많은 전시를 열어 왔지만 이런 구성은 처음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엔 이원희 작가의 제자들이 그린 소묘, 크로키도 함께 전시된다.(사진=김금영 기자)

인터뷰 말미에 작가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를 꺼냈다. 피렌체에 가면 미켈란젤로부터 시작해 300여 년 동안 천재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천재들의 각축전이 펼쳐졌다는 것. 작가는 “어떤 분야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한 예로 과거 사람들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한국 선수들이 발도 못 붙일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박세리, 박인비, 박성현 등 한국의 여자 골퍼들이 세계 골프계를 점령하고 있다. 그 시작은 박세리부터였다. 국내에서부터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각축전을 벌였고, 그러다보니 실력이 높아져 세계를 휩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재능을 드러내며 각축전을 벌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최고의 성취욕을 누릴 수 있도록, 초상화를 마음껏 그려볼 수 있는 그런 장을 젊은 친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인사아트센터에서 9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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