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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송지연] 사람 한 명 없는, 사람 사는 이야기

선화랑서 건물 가득한 도시 풍경 ‘원스 홈(One’s home)’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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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1호 김금영⁄ 2018.10.22 09:48:30

송지연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독특한 화면이다. 가까이에서 봤을 땐 물감이 겹겹이 쌓인 화면이 추상화 같다. 그러다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건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도시 풍경이 나타난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

 

선화랑이 송지연(37) 작가 초대전 ‘원스 홈(One’s home)’을 11월 3일까지 연다. 송지연은 선화랑 41년 역대 초대작가 중 가장 젊은 작가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국내외 여러 아트페어에서 원로, 중견 작가들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작가로, 선화랑이 자랑하는 영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원 대표는 이어 “송지연 작가는 첨단 테크닉이 난무하는 미술계 속에서도 회화의 가장 기본인 ’그리기‘에 집중하며 내면의 세계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송지연 작가 초대전이 열리는 선화랑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화면 위 남겨진 수많은 붓 자국은 겹겹이 쌓여 미묘한 색들의 조합을 이뤄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한 번 그림을 그린 뒤 그 그림의 흔적을 아주 조금씩 남겨둔 채 물감으로 지우듯 확 덮는다. 그리고 똑같은 형태이지만 조금씩 다른 색감으로 다시 칠하고 또 덮는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작가는 “노동 같은 이 작업 과정을 보고 주변에서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런데 물감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미묘한 흔적이 만들어진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꼬질꼬질하고, 좋게 이야기하면 손의 흔적이 남는다. 이 흔적에서 매력을 느껴 놓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섬세한 과정을 통해 작가가 그리는 건 도시 풍경이다. 작가는 작업 초창기 때부터 도시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작가는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바라본 것들에 관심을 가진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도시에 내 삶이 있었다”고 말했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인물들의 실루엣이나 자전거와 차가 모여 있는 주차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거리 등 도시에서 마주한 여러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송지연, ‘물 위를 걷는 사람들’. 리넨에 아크릴릭, 19 x 33.4cm. 2018.(사진=선화랑)

그런데 작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화면에서 점차 인물을 배제하고 건물 위주로 도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나 어제 여기 긁혔어’ ‘나 오늘 아침은 이거 먹었어’ 식으로 한 명, 한 명의 사소한 개인사까지 다루기보다는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을 포괄적으로 담고 싶었다. 사회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지는데, 일반적으로 그 최소 단위가 가족이라는 구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가족이 모이는 최소 단위가 집이라는 공간이다. 그래서 건물에 관심을 가졌고, 이 건물이 모인 도시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멀리 바라봤던 시점의 풍경에서 좀 더 자신이 실질적으로 접촉하고 가까이 들여다봤던 공간, ‘아파트’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인다. 작가는 “이전엔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내가 그쪽에 살았기에 더 익숙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파트가 익숙하다. 도시에 살다보니 높은 건물에서 여러 건물이 보였고,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꼈다”고 말했다.

 

송지연, ‘더 하우스(The house) 2’. 리넨에 아크릴릭, 162.2 x 130.7cm. 2018.(사진=선화랑)

 

반복적·획일적인 도시에 익숙해진 현대인
그게 꼭 나쁘기만 할까?

 

송지연, ‘바라보다 – 아파트’. 리넨에 아크릴릭, 162.2 x 112.2cm. 2018.(사진=선화랑)

단독주택이 그려진 화면은 건물들 자체가 비슷한 구조이긴 하지만 붉은 벽돌 등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보였다. 인물이 존재하진 않지만 뭔가 사람 사는 느낌에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파트 시리즈는 보다 획일적으로 화면이 바뀐 느낌이다. 작가가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을 직접 보면서 그린 건 아니지만 극사실적인 느낌까지 든다.

 

이건 지금 당장 고개만 살짝 돌려도 작가의 그림 속 풍경을 현실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도시를 빼곡하게 채운 모습. 그 와중에도 또 부서지고 지어지는 아파트들. 이처럼 작가는 겉으로는 높고 화려해 보이지만 개성 없이 똑같이 생긴 이 아파트 건물이 마치 복사해서 붙인 것처럼 배치된 풍경에서 현대인의 일상을 읽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송지연, ‘원스 홈(One’s home) - 아파트‘. 리넨에 아크릴릭, 194 x 73cm. 2018.(사진=선화랑)

작가는 “일상이라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일상이 반복돼서 지루하고 힘든 점도 있다”며 “나 또한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빵을 먹고 라디오 켜고 그림을 그리다가 또 점심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저녁 시간이 오고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한 뒤 다시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 밤 12시, 새벽 1시 정도에 잠이 든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치고는 규칙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의 시작은 이런 작가의 일상부터였다. 작가는 “작업 초창기 때 이런 내 일상을 주로 돌아봤다면, 점차 주변 환경까지 돌아보면서 보다 넓은 시각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나도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래서 작업할 때 특정 건물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앞부터 뒤까지 일정하게 그린다”고 말했다.

 

송지연, ‘바라보다 – 아파트’. 리넨에 아크릴릭, 130.3 x 162.1cm. 2018.(사진=선화랑)

여백 하나 없는 그림은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건 빽빽하게 채워진 사람들의 삶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람들의 삶은 한정돼 있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삶을 정말 빼곡하게 채워서 살아간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밥 먹고, 화장실을 가고, 사람도 만나고, 관계도 쌓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한정된 삶 안에서의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사람들은 갑갑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가 이런 현대인의 일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건 아니다. 작가는 “아름다운 산과 들, 깊고 넓은 바다와 강, 호수를 간직한 풍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 빼곡하게 모여 있는 건물들을 통해 자연 친화적 삶이라기보다 생활의 편리함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인공적 자연에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송지연, ‘바라보다 – 한남’. 리넨에 아크릴릭, 116.7 x 91cm. 2018.(사진=선화랑)

그는 이어 “사람은 익숙한 것에 점차 편안함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 도로엔 매연이 가득하고 쓰레기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도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넘어 삶 전체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통해 운명을 적극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건 일상의 가치다. 삶은 반복적, 획일적으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보다는 가까이에서 봤다가 멀어져서 보면 못 봤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그림처럼 몰랐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것.

 

송지연, ‘더 하우스(The house) 1’. 리넨에 아크릴릭, 194 x 73cm. 2018.(사진=선화랑)

작가는 “유한한 삶 속에 무한한 일상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의미를 담아 일상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지에 대한 고민들이 요즘의 관심사”라며 “내 개인의 삶에서는 올해가 특별했다. 개인전 10회째를 맞아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려 했다. 이후엔 멀리서 바라봤던 도시의 내부에 좀 더 가까이 들어가 특정 어느 한 집의 테이블 위 흔적을 그려보고도 싶다. 그 안의 흔적들로도 다양한 삶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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