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여섯 번 열리는 공연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내년 1월 20일까지 기획전 ‘하루 한 번’을 연다.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국내 작가 김세은, 박민희, 정지현의 신작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그룹전이다. ‘하루 한 번’이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이 전시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한 번만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의 형식을 빌어 진행된다.
평면 회화 작업을 통해 한 화면 안에서 장면의 구조를 만드는 김세은과 버려진 산업 자재를 가지고 새로운 조각을 만드는 정지현의 작업이 교차하는 공간에 전통 가곡의 창법과 구조를 소재로 공연을 만드는 박민희의 소리가 더해진다. 전시는 한 회 70분 길이로 진행되는 박민희의 작품 ‘가곡실격:한바탕’의 소리 구조에 맞춰 전개되며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 6번 실행된다.
2층 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김세은의 대형 평면 회화 ‘무제’(2018)는 이번 아트선재센터 공간에서의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이다. ‘무제’는 대상의 계속적인 운동성을 포착하고자 한 작품으로,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람객들이 관망하게하기보다는 면의 펼침에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김세은은 “도시에 기본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고 남겨진 자투리 공간들, 아무런 의미 없이 채워져 있었던 공간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이 공간들을 보면서 동사나 형용사 또는 특정 추상화된 움직임이 많이 떠올랐다”며 “외부에서 찾은 정보들과 내가 이미 갖고 있었던 이미지들이 만나는 순간을 화면에 옮기려 했다. 추상화된 형태와 남기고 싶은 정보 간의 간극 거리 조절을 하면서 내가 특정 이미지를 어떻게 보고 다가갈 수 있는지 지금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정지현은 용도 폐기된 산업자재와 출처가 모호한 부산물들을 수집해 새로운 조각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물질이 가진 성격을 변형해 조각의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낸다. 정지현의 ‘입구’(2018)는 김세은의 드로잉에서 면을 구분하는 선과 유사한 두께의 철파이프로 만든 구조물이다.
이와 함께 7미터의 대형 간판 폐기물을 반으로 잘라 만든 ‘더블 데커’(2018), 버려진 다양한 자재들을 분리, 재조합해 만든 ‘공공조각파일’(2018), 각기 다른 사물을 겹겹이 쌓은 ‘바위책’(2018) 등 새로운 작업들을 선보인다. 정지현의 작업은 하나의 조각으로 기능하면서도 마치 김세은의 드로잉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게 하듯 전시장 안의 다양한 위치에서 작품을 응시하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배치됐다.
정지현은 “‘외부에서 발견한 날것의 재료를 내 작업에 끌어와 어떤 미적 언어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 자체가 내게는 여행과도 같았다. 간판을 거리에서 가져와 반으로 잘라 새로운 조형 장치로 만들었고, 거리에 있는 이질적인 동상들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장난 같은 캐스팅 작업도 진행했다”며 “보는 것 자체 안에서 해석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는 것이 이미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이는 작업 그대로를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루 여섯 번 전시장에 울리는 박민희의 ‘가곡실격:한바탕’은 다섯 가지 다른 소리를 모아 만든 70분 길이의 곡이다. 전통 가곡인 한바탕의 구조 안에 특정 상황을 재현한 소리나 알 수 없는 물체의 울림 등 서로 관련이 없는 소리의 음가를 배치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15개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면 전시장이 10분 동안 암전된다.
아트선재센터 측은 “세 명의 작가는 서로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 영감을 각자의 작업에 반영하면서 세 가지의 매체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러운 서사의 흐름처럼 서로 어울리고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세 작가의 작업을 통해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감각하는 경험이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한 경험으로 전환된다”고 밝혔다. 한편 박민희 사운드 작품 ‘가곡실격:한바탕’은 12월 8일·15일·22일, 2019년 1월 12일·16일 오후 3시 40분부터 70분 동안 5회에 걸쳐 퍼포먼스로 확장해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