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 갤러리는 3월 20일~4월 30일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토비 지글러의 작품전 ‘이성(理性)의 속살’을 연다. 본 전시는 2015년 PKM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그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이다.
토비 지글러의 작업은 로마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거 예술품에서 출발한다. 원본 이미지를 컴퓨터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변환해 금속, 합성 소재 등의 현대식 재료에 입힌 뒤 이를 사포질, 페인트칠과 같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체한다. 이런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미와 층위가 한 화면에 압착되는 특유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 미술품의 한 부분, 특히 손, 발 등의 신체 형상에 기인한 회화와 조각, 영상 신작 10점이 새롭게 공개된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회화인 ‘이성의 속살’은 토비 지글러를 대표하는 알루미늄 페인팅 시리즈 중 하나로, 화면 위 언뜻 보이는 첫 번째 레이어에는 구상적 신체 형상들이 자리한다. 작가는 인터넷 구글링을 통해 찾은 르네상스, 바로크 예술품 속 손발 도상의 저해상도 이미지를 디지털 렌더링으로 조작해, 이를 캔버스 면이 아닌 알루미늄 판 위에 오일 페인팅으로 얇게 도포했다.
물감이 마르고 나면 표면은 전기 사포로 빠르게 갈리고, 기하학적 패턴의 붓 터치로 완전히 생략되기 직전까지 지워지는 과정을 거친다. 즉 금속 판 위의 얇은 막 사이로 창조와 파괴,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자동과 수동, 원본과 차용 등 수많은 대립항과 그 경계가 압축돼 혼재하게 되는 셈. 이런 복잡한 의미들은 빛과 보는 각도에 따라 우아하게 반짝이는 회화 겉면의 물질성으로 인해 순간 무상해지고 만다.
한편, 조각 ‘이성의 속살’은 원본 이미지를 3D 모델링한 뒤 여기서 파생된 픽셀 면을 내·외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아크릴수지 다면체로 균질하게 조합한 작업이다. 고대 ‘콘스탄티누스 거상’의 검지를 든 손이 작업의 모티브로 작용했다.
수집된 이미지의 끝없는 차용과 변환은 2채널 비디오 ‘곧 끝날 것이다’에서 보다 다각화된다. 이 작업의 부제인 ‘우아한 시체’가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한 공동 놀이를 의미하듯, 토비 지글러는 만 레이의 인물 사진 속 목 부분, 분신하는 불교도의 팔과 귀도 레니의 회화 속 성 세바스찬의 몸 도상, 조르주 바타유의 에세이 삽화, 현미경으로 본 세포 형상 등을 채택해, 그 이미지들을 5~6년 동안 검색엔진으로 돌렸을 때 나온 무작위한 2차 이미지들을 영상의 장면으로 접합했다. 마치 그가 또 다른 조각에서 전용한 ‘클라인의 항아리’의 단측 곡면처럼, 이 영상은 시작도 끝도 없이 현재의 시공간을 가득 메운다.
PKM갤러리 측은 “고전 모티브와 기계·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토비 지글러의 독창적 언어는 정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확장되고 수평적으로 접근가능해지는 디지털 시대에 예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