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상상마당 전시장 4~5층 공간을 두 전시가 채웠다. ‘플라스틱 오염’을 주제로 한 ‘플라스틱 러브’전 그리고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올해의 최종 작가인 김승구의 ‘밤섬’전이다. 언뜻 봤을 땐 독립돼 보이는 두 전시를 자세히 살펴보다보니 발견되는 연결고리가 흥미로웠다.
② 제11회 KT&G 스코프 올해의 최종 작가인 김승구의 ‘밤섬’전
KT&G 상상마당 홍대 전시장 4층을 지나 5층으로 올라가면 김승구 작가의 ‘밤섬’전을 만날 수 있다. 김승구 작가는 지난해 6월 제11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KT&G Sangsangmadang Korean Photographer’s Fellowship, 이하 KT&G 스코프)에서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이후 약 7개월 동안 멘토링과 지원을 받고, 지난 12월 진행된 3차 심사위원 심사를 통해 올해의 작가 3인 중 최종 작가로 선발됐다.
이번 전시는 KT&G 스코프 최종 작가로 선발된 김승구의 신작 25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본래 작가는 화려한 도시와 이 도시를 둘러싼 고요한 주변부가 아이러니하게 뒤엉킨 모습에 주목해 왔다. ‘다리’ 시리즈에서는 침수된 풍경 뒤 멀리 오롯이 서 있는 고층빌딩들의 향연을 포착해 보여줬다. 이때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침수된 풍경과 고층빌딩 사이에 위치한 밤섬. 이번 작가의 신작에서 중심을 이루는 존재이기도 하다.
문정원 KT&G 상상마당 시각예술팀 큐레이터는 “김승구 작가는 ‘도시 한가운데에 왜 초록섬이 둥둥 떠 있지?’ 하는 호기심에 밤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2011년부터 밤섬 주변을 맴돌며 ‘밤섬’ 시리즈를 시작했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서울시로부터 2014년부터 촬영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강 하류에 있는 밤섬에는 본래 60여 가구의 사람들이 살았었지만, 1968년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이 풍경은 사라지게 됐다. 밤섬을 폭파해 나온 석재로 여의도 둘레에 제방을 쌓기로 한 것. 1986년부터는 일반인의 출입도 통제됐고, 폭파로 해체된 밤섬은 본래의 1/300 크기로 작아졌다.
자연을 ‘그대로 두다’
그렇게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밤섬은 문명사회에서 잊히는 듯 했으나 여기서 생기는 반전. 작가는 처음엔 밤섬의 크기가 작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조금씩 밤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그리고 작가는 이 밤섬을 ‘인간이 파괴하고 자연이 복원한 섬’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문정원 큐레이터는 “작가는 오랜 시간 밤섬의 풍경을 다양한 시간대로 관찰했다. 특히 인위적으로 풍경을 연출해서 사진을 찍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촬영했다”며 “이때 작가가 느낀 건 인간의 손길이 사라진 뒤 자연이 스스로 계속 증식해가는 생명력이었다. 문명사회는 인간의 기준에서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개입이 사라졌을 때 살아나는 자연을 통해 자연을 그대로 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점은 4층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러브’전과도 연결된다. 환경오염을 주제로 한 ‘플라스틱 러브’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성질이 인간의 삶에 흔하게 녹아든 역설을 논하며, 재활용 문제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김승구 작가는 자연을 그대로 두는 태도에서 진정한 자연과 인간의 올바른 공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바람을 밤섬에서 발견했고, 이를 작업에 담았다.
5층 전시장에 설치된 거대한 크기의 사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밤섬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밤섬의 무성한 풀과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원시적인 풍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문정원 큐레이터는 “김승구 작가는 무질서한 자연과 저 멀리 작은 도시를 보며 우리가 평소 떠올리지 않았던 ‘문명 이전 혹은 인류 이후’를 상상했다고 한다”며 “작가는 도시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역사적 사건에 의해 문명의 바깥으로 밀려난 밤섬에서 우리 현대사의 단면과 동시에 인류의 과거에 대한 증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읽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