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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53) 작가 권기수] 동구리에 얽힌 세 가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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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4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09.28 10:22:12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동구리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늘 있었던 것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존재였다. 항상 웃고 있었기에 막연히 행복하고 즐거운 그림이라 생각했었다. 작가와 대화를 나눈 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 동구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존재라는 사실이다. 동구리에는 인간과 인간의 삶에 관한 작가의 숙고가 담겨 있었다. 둘째, 동구리의 표현법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진행한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셋째, 권기수의 작품에는 한국, 나아가 동양의 정신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어디 세 가지뿐이겠는가. 작품을 볼수록,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후소(後素 - Reflected Bronze forest)’, 162 x 130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6 ⓒ권기수

“지우는 것도 붓 … 컴퓨터 그림 지우고 붓으로 다시 그리기”
권기수 작가와의 대화


- 동구리라는 이름의 시작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작가에게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다.

이름 그대로 동그란 녀석이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주변에서 자꾸 이름을 물어봐서 즉흥적으로 “동그라니 동구리라고 하자”라고 정한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유로운 드로잉의 과정에서 나온 형태였기 때문에 이름도 붙이지 않았었다. 나는 사실 동구리라는 이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동구리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들은 이름 짓고 정의 내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작품에도 제목이 있고, 작가의 설명이 있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듯이 말이다. 이후 다른 이름도 많았을 텐데 왜 동구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까를 복기해보니 내가 살면서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세상을 둥글게, 모나지 않게 살아라,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순환적인 철학에 익숙해 있고 그에 영향받는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동구리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이 동구리에 주목하고 그 의미를 궁금해하는데, 사실 동구리는 그냥 사람(에 대한 기호)일 뿐이다. 동구리 대신 사람 인(人) 혹은 다른 이미지를 쓸 수도 있었다. 내가 몇 년간 드로잉을 통해 얻은 형상이 정리된 모양이 동구리이다.
 

‘세한(歲寒, Winter Scene)’, 227 x 130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09 ⓒ권기수

- 동구리 머리카락을 세어보니 열 가닥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역시 특별한 뜻이 없다. 앞서 말했든 계획적으로 만든 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코가 아예 안 그려지거나 일직선인 경우도 있었다. 눈의 크기도 다르고 웃을 때 이가 보이게 그리기도 했다. 동구리라는 형상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이후 지속적으로 내 작품에 등장시키려면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몇 달 사이에 현재의 동구리와 같은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이 몇 달 동안 동구리가 회화뿐 아니라 조각(입체), 설치, 프린팅, 벌룬, 모빌,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트 상품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심을 잡기에는 홀수가 더 나을 수도 있었는데 열 개가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았는데, 십진법에 익숙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눈이나 입의 모양이나 위치도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조정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상당히 우연적인 결과물이다.
 

‘별 헤는 밤(Counting the Stars at Night)’, 162.1 x 130.3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4 ⓒ권기수

- 동구리와 관련해 현재 정확히 수치화된 비율이 있는가?

숫자로 수치화된 것은 아니고 마지막 머리카락의 위치와 눈, 입의 위치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미 사람 얼굴의 비례에 익숙하고, 오랫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비례가 자동으로 맞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정리된 규칙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숙달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것은 동구리만의 특징이라기보다 인간의 특징이다. 동구리는 인간의 모습을 조금 과장시켜 그린 것에 가깝다.
 

‘Beauty in Thorns’, 162.1 x 130.3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20 ⓒ권기수

- 말 그대로 작품의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회화 작업의 경우 매우 깔끔하게, 표면도 평평하게 칠해져 있다.

회화 작업만 간단히 설명하면, 컴퓨터로 디자인을 한 후 대형 프린터(플로터)로 출력하여 동양화의 초본 작업을 하듯이 밑그림을 그린다. 바탕칠은 보통 스프레이로 작업한다. 금속 성질의 물감도 붓보다는 스프레이로 칠하는 것이 낫다. 그 밖의 부분, 작품의 약 90% 정도는 모두 붓으로 매우 여러 번 덧칠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보존을 위해 분리 코팅 스프레이 후 바니시(varnish)를 바르는데 이 역시 여러 번 해야 해서 지난한 과정이다.

- 작품에 등장하는 색채가 매우 다양하다. 색채를 선택하고 배합하는 기준이나 나름의 방법이 있는가?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선택한다. 기성 제품에 원하는 색이 있으면 쓰지만 많은 경우 혼색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색 라인업이 있다. 색에 이름도 붙였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500여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튜브에 물감을 넣는 봉합 장치를 이용해 마치 시판되는 튜브 물감처럼 일일이 나만의 색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그냥 통에 담아 두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조금씩 쓸 때도 있지만 흰색이 많이 섞인 파스텔 조의 색과 원색은 피하는 편이다. 한국의 전통색을 보면 요즘 기준의 원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오방색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원색의 빨강, 파랑, 노랑이 아니다. 그보다는 살짝 어둡고 텁텁한 색이다. 붉은색은 자줏빛이 살짝 돌고 노랑은 황토에, 파랑은 쪽빛에 가깝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매번 의식하거나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고 살면서 흡수한 문화의 영향으로 그와 같은 감성에 맞춰 색을 사용하고 있다.
 

‘Untitled(Morning Glory)’, about 210 x 150cm, give or take 1~2cm, Traditional Asian Black ink and Traditional Red ink and acylic on Hanji, 2019 ⓒ권기수

- 2019년의 개인전에서 한지에 흘러내리는 먹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동구리 작업이 소개되었다. 이전에도 그와 같은 작품이 전시되었던 기억이 있다.

2002년, 월전미술관 별관에서의 개인전 ‘아! 꽃이다(Wow, This is a Flower!)’와 갤러리 피쉬에서 열렸던 동명의 개인전에서 그와 같은 동구리 그림이 소개되었었다. 이후 몇 개의 전시에 동구리의 기원이 되는 초기 드로잉을 출품하기도 했다. 부연 설명하면, 2001년에 열린 ‘한국정신’전에서 사람을 단순화한 드로잉을 컷팅(cutting)해 설치한 ‘웃는 사람’을 처음 발표했다. 동구리라 명명하기 전이었다.

- ‘후소’(2014), ‘별 헤는 밤’(2014) 같은 작품에 선이 많이 보인다. 자연 풍경과 연결되어 넝쿨 같아 보이기도 하다. 매우 감각적인 선이다.

사실 선이 아니라 지운 것이다. ‘후소’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를 의미한다. 회사후소는 그림을 그리기 전 회칠을 하여 하얗게 깨끗이 해야 한다, 즉 학문을 하기 전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작업을 위해 기존의 작업을 지워나가는 마음의 과정이 담긴 작품이다. 컴퓨터상에서 내 그림 중 몇 개를 지우다 보니 지우는 것도 하나의 필(筆)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붓에 먹물을 묻혀 그리는 것뿐 아니라 지우는 것도 똑같이 필처럼 느낄 수 있었다. ‘후소’는 내 기존의 그림을 컴퓨터상에서 지운 다음, 그것을 붓으로 그려 완성한 것이고, ‘별 헤는 밤’은 그것을 더 발전시킨 것이다. 지워나간 흔적이 새로운 선이 되고, 그것이 모여 새로운 화면이 된 작업이다. 이처럼 지워나간 그림은 사실 소개가 많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구리가 지워져 있어 그런 것 같다.
 

‘Road’, 194 x 130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2 ⓒ권기수

- 답변을 듣다가 생각난 건데, 동구리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구리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어느 정도 있는가? 작가가 동구리를 반드시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익숙해져서인지 동구리가 없는 작품을 볼 때면 색다르다.

꾸준히 동구리 없는 회화,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동구리는 그저 사람을 그린 것일 뿐이다. 동구리는 작가인 내가 이야기를 끌고 나갈 때 그리는 하나의 기호이기 때문에 필요 없을 때는 혹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등장할 필요가 없다. 나는 평생 하나의 이야기만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많은 분이 동구리를 좋아하시다 보니 동구리가 등장하는 작품 위주로 소개되고 이야기된다. 감사하지만 작가로서 현실적인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한계를 벗어나 편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드로잉 작업을 하는 편이다.

-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나는 특별히 말할 게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1998년 개인전을 할 때에는 작가로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림을 컷팅하고 액자를 없앤 이유도 나의 그림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 공간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작가가 과연 그런 존재여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작가들의 사회적 역할은 중요하고 나 역시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작업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완성해가는 게 우선이라 여겨졌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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