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7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09.14 13:27:42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공간타이프(TYPE)에서 작가 권오상이 참여한 전시 ‘조각의 시퀀스’가 열렸다. ‘조각의 시퀀스’는 ㈜메이디자인, 원오디너리맨션과의 협력 전시로, 실재하는 가구와 그것을 사진조각으로 만든 작품, 사진조각을 바탕으로 제작된 ‘Cube Chair(큐브 체어)’ 등이 소개되었다. 또한 권오상의 ‘Masspatterns(매스패턴스)’, ‘Head(헤드)’, ‘Mobile(모빌)’, ‘Reclining Figure(비스듬히 기댄 형태)’ 시리즈도 함께 볼 수 있다.
권오상 작가와의 대화
- 가구와 관련된 작품이 전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9년도의 전시 ‘가구’와 비슷한 무언가일 거라 예상했는데 기대를 벗어났다. 물론 2019년의 작품들도 이전 작업과 개념적, 물리적으로 연결되었었지만, 사진조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진조각의 형식을 가진 작품이 나왔다. 협업을 결정하고 진행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에는 상업적인 가구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는데 예상 밖으로 나의 이전 작품과의 연결고리를 더 강하게 부각하는 결과물이 나왔다.
사진조각이라는 나의 고유한 형식이 강해서 누구와 협업을 하든 권오상의 작업이라는 범주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작업한다. 또한 나의 개인전에 놓아도 상관없을 정도의 결과물을 만드는 편이다. 사실 그동안 발표한 내 작업의 다수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협업을 하게 되면 내 작업의 범주 안에서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협업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작가와 협업할 때는 ‘나 혼자는 이루지 못하는 부분을 충족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업과 할 때는 지명도나 의미를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한데, 2008년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Manchester Art Gallery)에서의 개인전 때 헨리 무어(Henry Moore) 재단에서 기금을 받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고, 그게 계기가 되어 헨리 무어의 구조를 차용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지하 1층에 전시된 ‘Reclining Figure’ 시리즈(2020~2021)와 2층에 전시된 ‘Head(LP)’(2020), ‘Head(MM)’(2021)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Head(LP)’는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Head(MM)’은 매튜 맥커너히 (Matthew McConaughey)의 두상이다. 이전에 내가 작업했던 두상들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회화 혹은 조각처럼 추상화되거나 면이 분할되는 수준이었는데, 헨리 무어의 두상에 근거하다 보니 마치 형태의 일부가 아래로 꺼진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Reclining Figure’는 무어의 ‘Maquette Reclining Mother and Child’와 ‘Reclining Figure’ 등을 바탕으로 하는데 인체 구조상 나올 수 없는 형태가 있었다. 예를 들어 ‘Reclining Figure 2(비스듬히 기댄 형태 2)’(2020)의 강아지 이미지가 담긴 배나 팔 부분이 그렇다. 일반적인 인체구조가 아니어서 실험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작품에 동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업 초기부터 동물이 등장했다. 처음 사진조각을 발표했을 때는 인체상 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완성된 작품의 형상이 비슷해져 지루해 보였다. 그래서 사물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또 사물만 있으니 분위기가 건조해 동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 내 주변의 사물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내 주변의 동물들, 도감의 동물들도 계속 등장하게 되었다. 나는 형태, 덩어리, 크기 등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동물의 의미를 특별히 생각하며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 전시의 구성이 독특하다. 지하 1층은 좌석의 역할을 하는 전시장의 계단에 앉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듯이 ‘Reclining Figure’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고, 2층은 패션쇼의 런웨이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설치와 관련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품 설치의 많은 부분은 ㈜메이디자인/타이프의 박지수 대표에게 일임했다. 내 의견을 잘 반영해주었고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주었다.
1층에 전시된 ‘Ceramic Mobile(세라믹 모빌)’이나 연도가 앞선 작품들을 포함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전시된 적이 없던 것들이다. 지하 1층의 ‘Reclining Figure’는 모두 코로나 이후의 작품으로 사진조각의 실험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2층은 동선이 특이하다. ‘Masspatterns’가 진짜 사물과 섞여서 주목도가 높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2011년 삼성미술관 플라토(Plateau)에서 열렸던 보그(Vogue) 코리아 창간 15주년 기념전 ‘Fashion into Art’에서 발표했던 작업과 구성과 분위기가 비슷해 재미있었다. 당시 한상혁 디자이너의 의상에 내가 지점토로 만든 헬멧과 다리보호대를 착용한 패션모델들이 서킷 같은 런웨이를 걷거나 기고, 구름다리를 건너기도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했다. 4층은 원오디너리맨션이 소장한 가구와 내 작품들이 함께 놓여 콜렉터의 공간 같은 느낌이다.
- 원오디너리맨션의 소장 가구를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조각이 발표되었다. 가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가? 사진조각이 가구와 나란히 놓여있고, ‘Cube Chair’에는 권오상의 사진조각을 찍은 이미지가 등장해 본다는 것과 실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원오디너리맨션 측에서 추천을 해줬는데 장 프루베(Jean Prouve)의 가구와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스툴이 눈에 띄었다. 스툴의 경우 흔해 보이지만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복제품도 많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Cube Chair’는 실제로 일상 공간에 놓을 수 있는 가구를 만들려는 목표를 갖고 제작되었다.
- ‘Reclining Figure’는 그동안 발표된 작품과 달리 무광이다. 유광 작품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사진 자체가 더욱 강조되는 것 같다.
유광 작업이 에폭시 처리를 하고 마무리한다면, 무광 작업은 그 위에 한 번 더 무광 코팅을 한 것이다. 사진이 인화된 종이 같은 느낌이 강한데, 이전 작품보다 내구성이 강해졌다.
-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겠다. 최근 NFT 작품인 ‘3D Earth Wind & Fire’(2021)를 발표했다. 실재하는 공간에 놓이는 덩어리를 다루는 조각가로서 NFT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할 것 같다.
NFT 작품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제안해 시작하게 되었다. 미술계의 주요 이슈인 만큼 나 역시 관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내 작품은 웹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조소를 전공하고 3D 관련 회사에 들어간 선배들이 1998년 ‘Deodorant Type(데오도란트 타입)’을 본 뒤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사진을 붙여나가는 방식이 컴퓨터에서 진행되는 매핑(mapping) 작업과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Deodorant Type’뿐 아니라 ‘The Flat(더 플랫)’이나 ‘Relief(릴리프)’, ‘New Structure(뉴 스트럭쳐)’를 비롯한 나의 작업은 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또한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3D 작업이 꽤 있다. ‘3D Earth Wind & Fire’는 애초에 기획한 작품의 하단에 불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360도 회전하게 하고 불이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내 작업과의 연관성, NFT의 속성을 다방면에서 고민한 뒤 작업했다.
이전에는 현실 공간과 가상 세계를 분리했다. 그런데 요즘은 가상 세계도 현실이란 주장을 한다. 현실의 공간뿐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가상이든, 가시화된 가상이든 그것도 하나의 공간이고, 그 안에 3D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각가들에게는 어느 쪽이든 익숙한 제작 방식이라 생각한다. 아직 낯설고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