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9호 안용호⁄ 2021.10.01 14:00:08
이런 죽음이 있다. 이런 이별이 있다.
전화 한 통이 마지막... 한 줌 재로 만난 어머니, 누나만 찾다 하늘로... ‘광주 891번’ 숫자로 남은 동생, 마지막 항해였는데... 아들 품에 안겨 돌아온 남편, 코로나 검사만 14번... 막내아들과의 이른 작별, “외할머니 얼굴도 못 보고” 코로나에 빼앗긴 작별 인사.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은 지난 2년. 정부가 매일 발표하는 확진자·사망자 숫자에 그토록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홀로 맞이했을 망자들과 임종을 지키지도 장례도 치를 수 없었던 유가족들의 아픔을 왜 외면해왔던 걸까?
지난 9월 30일 부산일보가 마련한 온라인 추모관 ‘늦은 배웅’(http://bye.busan.com) 은 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온라인 추모관 성격의 인터랙티브 페이지이다.
인터랙티브 페이지에는 코로나 사망자를 위한 추모를 넘어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공간이 담겨 나만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릴 수 있다.
늦었지만 그래서 더 필요한, ‘늦은 배웅’은 올봄 부산일보가 박혜수 작가, 부산시립미술관과 함께 진행한 ‘늦은 배웅-코로나19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자,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픔을 위로하며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늦은 배웅’에는 코로나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도,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한 코로나19 유가족 최재호(가명) 씨. 어머니의 사망 통보를 듣고 첫째 형과 달려갔지만,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도, 어머니의 시신을 볼 수도 없었다. 조카는 “휘날리는 벚꽃이 마치 할머니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며 유골함을 전했다.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지 한 달 만이었다. 선산에 어머니를 안장하고 삼우제 때 다시 산소를 찾은 최 씨는 어머니가 손수 뜨개질해 즐겨 입으시던 분홍 스웨터를 태웠다. 분홍빛이 잿빛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늦은 배웅’ 우리 이야기 - <분홍색 스웨터를 좋아하신 어머니> 중에서)
“제가 (남편) 꿈을 꾸면 항상 나 살아있다고 저도 믿기지 않지만 아마 본인도 그렇게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세상을 떠난 것 같아요.” 조은희(가명·61) 씨의 남편은 선박 기관사였다. 부부는 한 평생 이별의 삶을 반복해왔다. 그런데 이번 이별은 달랐다.
‘나도 확진이 됐어.’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던 남편은 선박 안에서 7명이 확진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얼마 전 아들 부부는 카네이션 사진과 함께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건강한 몸으로 귀국할게’라는 말과 함께 방긋 웃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아버지는 아들 부부에게 건넨 마지막 말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 사망자 시신을 운구할 비행기도 구할 수도 없는 상황. 고국으로의 시신 운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유골이라도 모시고 돌아가는 게 최선이었다. 아들 수혁(가명) 씨는 염도 제대로 못한 아버지를 위해 평소 즐겨 입으시던 외투를 덮어드렸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제대로 된 유골함조차 없었다. 수혁 씨는 철제함을 손수 구입한 천으로 정성스레 감쌌다. 아들은 부산의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버지 유골함을 꼭 껴안고 품에서 놓지 않았다. (‘늦은 배웅’ 우리 이야기 - <마지막 항해에서 돌아오지 못한 남편> 중에서)
감염병에 가로막힌 이별의 시간. 외롭게 떠난 고인과 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작가들도 나섰다. 박혜수 작가는 코로나19 시대 예술의 역할을 고민했고, 그 결과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이 나왔다. 성유진 작가는 유가족 사연이 담긴 부고의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 고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 거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유가족을 비롯한 확진자들에게는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숙제를 주고 싶었어요.”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작업을 주로 해온 박혜수 작가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난 상황 속에서 사회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늦은 배웅’ 기억합니다-추모의 벽에는 망자들을 그리워하는 사연들이 짧은 편지 형태로 올라와 있다. 누구든, 누구에게나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