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4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12.30 10:22:25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에서는 온수공간의 ‘아트-리피케이션(Art–rification)’을 시작으로 ‘모두의 집 - 3개의 실험작’ 중 ‘#1 빈집 예술가유령’, ‘화인페이퍼갤러리 기획전 - 애무와 스침’, 그리고 에이벙커(A BUNKER)의 ‘오후 4시 어느 날의 수수께끼’에 이르기까지 올해 총 4개의 전시를 진행한 작가 손정은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 작가이자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하는 데에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미술계는 각자도생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국가기금을 비롯해 작가를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되어있고, 그마저도 소수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더 좋은 활동을 보일 수 있는 작가들이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작품이 좋은데도 소외되는 작가들이 너무 많다. 이는 미술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전시를 열어도 관객들이 보러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시장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전시장을 찾는 관객은 얼마나 될까? 일부의 공간을 제외하면 전시장 밖에 사람이 많아도 대부분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 역시 비어있는 전시장을 혼자 지키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들도 전시 설명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은 텍스트를 한참 본 뒤 작품 앞에서는 인증사진을 찍기 바쁘다. 관객들이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물론 이러한 상황을 버텨내야 하는 것도 작가의 일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나아가 젊은 작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에 재직 중인 것도 영향을 주었다. 나의 제자들이 졸업 후에 미술계에서 어떻게 활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미술계의 척박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작가로 활동하려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아무리 그것이 정답이라 해도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답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관련된 활동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고 전시 주제도 작가의 창작 공간이나 전시 공간으로 이어졌다.
- ‘아트-리피케이션’은 그와 관련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로 보인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예술과 부동산은 실제 작가들의 작업 활동이나 전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주제이다. 기금을 받아 진행되는 미술 프로젝트나 전시, 사람들이 인기 있다고 말하는 전시 장소들이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메커니즘이 있다. 또 상업적인 공간이든 비상업적인 공간이든 예술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업무량이 상당하다.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수많은 미술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공간의 흥망성쇠에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자본력이 영향을 끼친다. 얼마나 좋은 전시를 했는가보다 임대료와 같은 부동산 문제가 공간의 유지 기간과 더 긴밀하다. 이는 작가들의 창작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미술계 지인들과 나누다 시작된 기획이 ‘아트-리피케이션’이다. 사실 ‘아트-리피케이션’은 패널 토크를 중심에 놓고 그와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엮은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예술과 부동산: 공유재로서의 예술 공간, 도시 공간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패널 토크를 진행했다. 예술가와 전시기획자의 이야기는 각각 박혜수 작가, 성원선 성북문화재단 문화정책팀 차장과 이경미 독립 기획자가 해주었다. 한편 조숙현 아트북프레스 대표는 ‘서울 인디예술공간: 외로운 복합 문화 공간 46곳의 절절한 스토리’(2016)의 저자이다. 이 책은 예술 공간의 운명이 결국 자본에 의한 것이란 현실을 담고 있다. 겉에서 보면 매우 멋있고 세련된 공간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운영자들이 얼마나 자금,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문제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생생한 취재를 바탕으로 적고 있다. 실제로 미술 공간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이 예술애호가의 마음으로 견딘다. 나조차도 학생들에게 말하기 조심스러운 처절한 현실을 말하는 책이다. 패널 토크를 통해 우리가 속한 미술계의 현장에 관한 예민한 이야기를 냉철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 ‘아트-리피케이션’에 참여한 작가와 기획자, 이론가들은 어떻게 선정했는가?
전시에는 주제와 연결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준, 아티스트 피(Artist Fee) 없이도 함께해준 고마운 작가들이 참여했다. 아티스트 피는 당연히 지급해야 하지만 이처럼 기획금이 없고 공간도 지원받는 상황일 경우엔 보수를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북문화재단의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작가와 패널들이 보수 없이 행사에 참여해주었다. 이런 참여 역시 미술계 현장에 몸담은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공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기획자로서 전시에 참여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 전시 ‘#1 빈집 예술가 유령’도 주택을 예술 장소로 변신시켰다는 점에서 연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빈집 예술가 유령’은 성원선 기획자가 진행한 ‘모두의 집 - 3개의 실험작’에 작가로서 참여한 것이다. 빈집과 관련해 세 팀의 작가들이 각자의 작업을 선보였다. 나는 부동산이라는 연속성을 갖고 진행했는데, 물리적인 작품으로만 채우지 않고 예술가가 처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보여주는 포스트 드라마 형식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특히 빈집을 메타포로 청년예술가의 입장, 예술이 처한 현실을 다루고 싶어서 조한상 작가를 참여시켰다. 작품이 좋은데도 전시의 기회가 많지 않은 청년 작가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준비했던 퍼포먼스는 집주인, 부동산 중개업자, 예술가 캐릭터가 등장하는 블랙코미디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원래 계획을 각색해서 진행했다.
- 전시 ‘애무와 스침’이나 ‘오후 4시 어느 날의 수수께끼’는 조금 결이 달라 보인다. 에이 벙커의 경우 공간 자체가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었다.
화인페이퍼갤러리는 올해 문을 연 신생 공간인데 기획을 부탁받아서 진행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무와 스침’의 첫인상을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전시라 말할 것 같다. 그러나 한국화, 서양화, 조각, 설치라는 보수적인 장르 나눔이나 30대의 신진작가부터 평생을 창작에 헌신했으나 상대적으로 미술계에 노출되지 않은 50대 후반의 작가까지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구성이다. 한때 한국 동시대 미술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활동했던 작가가 담론이나 매체의 유행이 변해 더 이상 전시에 발탁되지 못하는 일은 허다하다. 그런 경우 창작하고 있음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잊힌 작가가 된 것 같은 고립을 경험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특징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특정 장르와 특정 연령대의 작가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
한편 에이 벙커는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상업 공간이다. 디렉터가 전시를 기획하고 컬렉터들에게만 전시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관련해 많은 관객이 찾아오거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많이 업로드되는 핫플레이스가 되는 것이 작가나 해당 공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작품 판매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최근 아트페어가 호황이고 미술시장에 자본이 많이 유입되었다는데 투자와 투기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또 많이 팔리는 작품의 형식이나 가격대가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상황이 작가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른다. 계속 고민해야 한다.
- 작가들의 활동과 관련해 조금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실험적 미술로 주류 미술계에 들어선 뒤 상업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팔 수 있게 된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 대부분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인이다. 여성 작가의 경우 여전히 출산과 육아를 통한 경력단절도 문제이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SNS조차도 쏠림 현상이 있다. 그에 편승해 실제 전시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을 더 신경 쓰는 작가나 큐레이터가 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작품 자체보다 이미지를 통한 홍보에 집중하기도 한다. 전시 지원에 맞게 정형화된 전시가 반복되는 것도 문제이다.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주제와 형식이 반복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가들이 지원 기금을 받으면 전시장을 빌리고, 디자이너와 평론가, 경우에 따라 큐레이터까지 섭외하고 구성을 맞춰 전시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작업하고 전시하면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이러한 콘셉트를 얼마나 지속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주류에서 활동하고 누구나 다 이야기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작가와 주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작가들이 활동하고 버텨주지 않으면 주류 미술계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