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고된지 생이 버거운지, 문득 1980년대가 떠올랐다. 오십 중반인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오르면 어림잡아 40년 전이다.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다. 아주 개인적인 것들이다. 82년 프로야구가 태동했고, 83년엔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Billie Jean)’을 부르며 문워크를 선보였다. 83년과 84년엔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87년엔 영화 ‘백 투 더 퓨처’ 1편을 보고 “이게 바로 헐리우드구나”를 실감했다. 88년엔 전 세계 축제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89년엔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했다.
한때 드라마의 배경으로 1980년대가 소비됐다. ‘응답하라 1988’이 그랬고 영국 BBC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라이프 온 마스’도 그 시절 감성이 그득했다.
그때의 1000원으로는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당시 택시 기본요금은 800원이었다. 소주 한 병 값은 200원이었고, 500원이면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오락실 게임 한 판은 50원이면 됐고, 라면 한 봉지는 대략 100원대였다.
지금이야 껌 한 통 값밖에 되지 않지만 그 시대에는 참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물가를 단순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래도 짜장면값 500원을 떠올리면 1000원을 내고 친구와 둘이서 배부르게 먹던 집 근처 중국집이 생각나고, 오락값 50원을 떠올리면 친구와 번갈아 가며 ‘갤러그’를 즐기던 중국집 근처 오락실이 기억난다.
1980년대의 ‘추억 보정’은 유난히 심한 듯싶다. 그 당시 생활 속 모든 것이 최근 들어 복고(復古)의 주제로 쓰인다. 소주병이 그렇고 맥주캔이 그렇다. 덜덜거리는 선풍기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드라마 속 스트라이프 패션은 다시금 주목받는다.
한 장에 5~6만원하는 LP는 날개 돋힌듯 팔리고, 1만원 넘는 카세트테이프도 소장용으로 팔려나간다. 더 디지털다운 것을 찾는 요즘, 필름 감성 충만한 디지털카메라는 없어서 못 판다. 간식거리가 부족하지도 않은데 굳이 그 시절 인기였던 라면이나 스낵을 찾아 먹는다.
‘오래된 사람’이면 예전의 그 맛, 그 감성을 느끼고 싶어 찾는다고 하겠다. 헌데, 젊은 세대는 왜 환호할까.
지난해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재밌는 조사를 했다. ‘복고(레트로) 문화 및 힙 트래디션 관련 인식 조사’(중복응답)인데,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복고문화를 향유(享有)하는 주 소비층은 ‘2030세대’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의 복고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세대를 묻자 20대(68.6%)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58.7%), 40대(26.0%), 10대(19.7%), 50대(8.9%), 60대(2.5%) 순이었다. ‘복고문화를 주로 즐기는 세대’ 역시 20대(71.4%)가 가장 많았다. 30대(57.2%), 10대(22.0%), 40대(21.8%), 50대(9.1%), 60대(3.0%)가 뒤를 이었다.
트렌드모니터는 “젊은 세대가 복고문화를 선도하는 ‘영트로(Young+retro)’ 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과거의 문화 요소들이 2030세대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 복고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다양한 분야에서 복고 콘셉트가 등장하는 게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72.9%나 됐다. 복고문화의 유행 배경에는 행복했던 과거 시절이 주는 안정감과 따뜻함을 찾고자 하는 니즈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팍팍하고 불안한 지금에 비해 과거 행복했던 시절을 보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이 복고문화 중 가장 호감을 느끼는 분야는 ‘복고풍 옛날 노래’(40.4%)였다. 이어 △복고풍 식품(33.4%) △복고풍 시대 콘텐츠(28.8%) △복고풍 패션(26.1%) △복고풍 식당·카페(24.4%) 순이었다.
내 나이는 내 것이지만 과거는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모두의 것이다. 그게 레트로로 활용되든 뉴트로로 사용되든 말이다.
달콤한 내일을 위해 어제는 오늘의 보약쯤으로 생각했다. 지나고서 보니 어제는 내일보다 더 달콤했고 아름다웠다. 다시 맛볼 수 없을 그 달콤함이 아주 소중해졌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