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문화현장] 리움미술관, 이 전시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한 이유

티노 세갈 25년 작업 세계 집약한 국내 첫 개인전

  •  

cnbnews 김금영⁄ 2026.03.09 16:06:23

사진, 영상 촬영이 모두 금지됐다. 그간 많은 간담회에 참석해 봤고, 전시장이 너무 어둡거나 큰 소리가 공간에 울려 촬영 환경이 불편한 경우는 있었지만, 아예 전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술관이 배포한 사진 자료 또한 전시 공식 포스터, 작가의 프로필 이미지, 전시장 입구가 전부로, 전시 전경 등은 전무했다. 그래서 기사에 어떤 사진을 사용해야 하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대신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에 집중할 것을 권유받았다.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

'티노 세갈'전이 열리고 있는 리움미술관. 사진=김금영 기자

이 독특한 현장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197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그는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현대무용’을 동시에 탐구했다. 언뜻 상반돼 보이는 두 영역을 다루며 작가는 예술을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서 분리해 ‘비물질적’인 가치로 치환하려는 색다른 시도를 이어왔다.

회화, 조각 등은 대표적인 예술 장르로, 물감, 석고 등 ‘물질적 자원’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는 이로부터도 벗어나 사람의 신체, 몸짓, 언어 등 비물질에서 비롯된 이른바 ‘살아있는 예술’을 선보인다. 해석자(인터프리터)라고 이름 붙여진 연기자들이 작가가 ‘구성된 상황’이라 이름 붙인 정해진 몸짓, 대사를 반복하는 형태다. 또한 작가는 이 공연의 사진, 영상 등 물리적 기록을 남기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에 기대어 전파되는 예술의 힘에 집중한다. 즉, 예술의 탄생부터 전파까지 모두 비물질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것.

이러한 태도는 전시를 비롯해 작품 판매 등 상업적인 영역에도 유지된다. 작가는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는데, 이 시기 이미 사진 기록이나 서면 계약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엄격한 원칙을 확립했다. 작가와 큐레이터, 공증인이 둘러앉아 계약서 없이 구두로 매매 계약이 이뤄지는 식이다.

해석자들의 몸짓·노래로 채운 전시장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이 펼쳐지는 전시장 입구. 사진=김상태, 이미지 제공=리움미술관

그리고 이를 이번엔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에 풀어놓았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해석자들이 작가의 구성된 상황을 계속해서 선보인다. 이는 본격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다. 미술관 입구에 몇몇 인원들이 서 있는데 처음엔 전시장 위치를 소개하는 미술관 직원으로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해석자들로,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라고 반복해 외치며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들의 춤은 관객이 건물에 입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어지는 로비에도 몇몇 사람들이 서 있는데, 마치 관객인줄 알았던 이들 또한 해석자들로, 작가의 신작 ‘무제’(2026)을 선보인다. 관객 사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가 서서히 관객에게 다가가 자신의 사적이며 내밀한 이야기를 건네고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로비와 전시장, 그리고 작품들 사이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비즈 커튼이 자리한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열어두지도 않는 이 비즈 사이를 지나 관객이 ‘구성된 상황’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매개체다.

 

본격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과 바이올린, 사이클을 지닌 해석자들을 마주한다. ‘이 입장’(2003)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후안 마타와의 협업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무용수,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클 선수 등 해석자 4인이 바이올린, 축구공, 자전거를 신체의 연장처럼 다루며 서로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한다.

티노 세갈이 큐레이팅한 리움미술관 소장품. 사진=김상태, 이미지 제공=리움미술관

전시장의 또 다른 공간에선 두 해석자가 서로를 껴안은 채 바닥에 뒹굴다가 일어섰다가 입을 맞추는 ‘키스’(2002)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오귀스트 로댕의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다. 리움미술관의 물질적인 소장품들과 티노 세갈의 비물질적인 예술이 조화를 이룬 현장이다. 전시에 선보일 소장품들은 작가가 하나하나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간에선 고전적인 청동상과 살아 있는 조각인 인간 실재의 생명력이 이루는 대비가 극대화된다.

1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인 ‘무언가 당신 코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을 마주한다. 해석자는 전시장 바닥에서 느리게 몸을 비틀며 조각가이자 퍼포먼스 예술가인 브루스 나우만, 미국의 시각 예술가인 댄 그레이엄의 신체와 몸짓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간헐적으로 수행한다.

 

여기서도 작가가 선별한 리움미술관 조각 소장품을 함께 전시한다. 권오상의 사실적인 작품 옆에 놓인 조각 같은 인체는 전시장 전반에 전개되는 조각군의 시작점이 된다. 이어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안토니 곰리의 조각, 강서경의 의인화된 작품, 솔 르윗의 미니멀한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엄선한 조각작품 26점을 통해 구상에서 추상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흐름을 구성했다.

미술관 바깥 정원에서도 작품 ‘이 당신’을 만날 수 있다. 정원에 서 있는 중년의 여성 해석자의 근처에 다가가 눈이 마주치면 그가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이는 만남의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을 관객을 향한 세레나데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이 밖에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포함한 여섯 곡의 선율을 두 해석자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는 ‘이 환희’(4월 7일~5월 17일), 엘 그레코의 작품 ‘목자들의 경배’ 속 아기 예수와 경배자들의 관계에서 출발해 보호자와 아이 간의 돌봄과 유대의 감각을 탐구하는 ‘이 당신나나당신’(5월 19일~6월 28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구전문화’를 21세기에 소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왼쪽), 티노 세갈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디지털 기록을 추구하는 시대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디지털 기록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먹고, 입고, 보는 것들을 실시간으로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한다. 어찌 보면 중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가운데 리움미술관은 디지털 기록을 내려놓는 전시를 택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작가는 25년의 작업 세월 동안 어떤 자원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몸짓, 소리만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그는 ‘물질적 대상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개념미술의 계보에서 단순히 이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왔다”며 “이번엔 이런 작가의 행보를 리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주 오래 전을 돌아보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현재까지 전해져온 ‘구전문화’가 있다. 지금 기록을 통한 전파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이 잊고 있었지만 분명 존재해온 생산, 유통 방식의 문화”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 구전문화를 21세기로 소환해 ‘다르게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순간 핸드폰,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기를 권한다. 매번 달라지는 몸짓은 지금 눈앞의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또 볼 수 없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티노 세갈'전 포스터. 사진=리움미술관

티노 세갈은 “작품을 만들 때 오브제 없이도 시각 예술이 성립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 이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중요시하고 싶었다”며 “예컨대 우리가 5살 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쳐줄 때 책을 주고 텍스트 하나하나를 읽어보라 하며 가르치진 않는다. 무용 또한 첫 움직임을 알려줄 때 직접 몸짓으로 알려주지, 서류를 보내지 않는다. 예술은 기록이 중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작품 사이에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금 눈앞의 현상에 집중하며 여러 상상의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물질을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이 주가 된 현대미술계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이기도 할까. 전시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 입구에서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라고 외치는 해석자들의 모습이 더 눈길을 끈다. 관련해 작가는 웃어 보이며 “비판적 또는 내 예술세계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데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며”며 “이뿐 아니라 더 많은 해석도 가능하다. 해석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게 현대미술”이라고 답했다.

비물질적인 생산,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고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작가의 철학에 맞춰 이번 전시는 전시장 내부에서 인증샷을 남길 수도 없고, 전시 굿즈도 판매하지 않는다.

리움미술관 측은 “끊임없는 디지털 기록을 추구하는 현대적 충동에 저항하며 티노 세갈은 관람객이 핸드폰,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기를 권한다. 그의 예술적 실천은 복제 가능한 기록보다 직접 경험하는 기억을 우선시하는 ‘탈생산’을 지향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리움미술관은 전통적인 보존의 장소를 넘어, 다양한 연결과 살아있는 만남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며, 관객과 작품, 미술관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티노 세갈 프로필 이미지. 사진=김제원, 이미지 제공=리움미술관

이런 전시 방식에 대해서는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요즘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경험’을 중요시한다. 이는 현장의 경험에 오롯이 집중하기를 바라는 이번 전시의 취지와 확실히 맞닿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원한다. 그리고 이 공유의 방식으로 사진, 영상 등의 기록이 가장 활발하다. 예컨대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을 때도 영화관 내부에서 사진, 영상을 찍을 순 없지만 관객들은 영화 티켓이라도 사진을 남기거나, 공식 배포된 영화 스틸컷 등을 활용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쏠리는 관심과 관객의 반응이 더 흥미로울 듯하다. 그간 히트 전시를 많이 선보여온 리움미술관이 이례적으로 기록을 최대한 자제한 전시 현장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 전파될지, 어떤 전시로 기억될지 여타 다른 전시들과 비교해서도 궁금해진다.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관련태그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티노 세갈  전시  예술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