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2022.02.15 12:16:53
‘피겨 퀸’ 김연아의 한마디가 가진 영향력이 세계로 빠르게 뻗어나가고 있다.
14일 밤 김연아는 자신의 SNS에 소신을 담은 짧은 영문 메시지를 남겼다.
“Athlete who violates doping cannot compete in the game. This principle must be observed without exception. All players’ efforts and dreams are equally precious.”
번역하면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만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라는 뜻이다.
김연아의 메시지는 금방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먼저 국내 피겨 스케이팅 후배들과 빙상 관계자들이 메시지를 퍼뜨렸다. 상하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최다빈,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인 곽민정, 김해진, 이호정,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 싱글에 출전한 이시형, 평창동계올림픽 페어에 출전한 김규은, 국가대표 이해인 등은 자신들의 SNS를 통해 김연아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지지했다.
나아가 캐나다 피겨 선수인 남 응우옌, 해외 안무가인 벤와 리쇼 등도 김연아의 메시지를 공유했고, 글로벌 팬들의 SNS를 타고 퍼져 나갔다. 로이터 통신, 미국 CNN, 러시아 모스코브스키 콤소몰레츠 등 주요 언론들도 김연아의 발언을 보도했다.
SNS 글에서 김연아는 대상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최근 도핑 위반 사실이 드러난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16,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베이징올림픽 개인전 출전 허용과 관련한 지적임이 명백해 보인다.
이번 올림픽 최고 스타로 꼽힌 발리예바는 지난 7일 열린 단체전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시상식이 열리기 전 도핑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 성분이 검출된 사실이 이달 8일 통보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발리예바에게 내렸던 잠정 출전 정지 징계를 철회했다. 도핑 금지 규정 위반 당시 발리예바의 나이가 만16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관련 규약에 따라 (정보공개에 관한) 보호대상자가 된다는 발리예바 측의 항소를 받아준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등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를 제기했고, CAS가 14일 발리예바의 도핑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징계 철회와 관련해서는 RUSADA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15일 열리는 개인전에 발리예바가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도핑 위반 선수의 올림픽 정상 출전은 모순된 상황으로 보이지만, 스포츠계 관계자들은 이번 CAS의 결정에 대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현역에서 은퇴한 지 8년 된 김연아가 소신을 밝혔고, 그의 메시지가 많은 스포츠 팬들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김연아의 메시지가 더욱 힘있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김연아 본인이 불공정의 피해자로 여겨져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는 2014년 소치 대회에서 올림픽 2연패가 유력해 보였으나 ‘판정 논란’ 끝에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밀린 은메달에 그친 바 있다. 게다가 소트니코바는 러시아가 올림픽 당시 조직적으로 자국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복용하게 한 도핑 스캔들에도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김연아는 당시 심판 판정이 석연찮았음에도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수용하며 은메달에 만족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처럼 담담하고 초연했던 '대인배' 김연아였기에, 이번 ‘도핑 논란’에 대해 그가 던진 한마디의 무게감은 더욱 커진다.
한 해외 네티즌은 트위터를 통해 “여왕(김연아)은 자신의 올림픽금메달 강탈 사건에 대해서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김연아를 그들(발리예바 등)이 건드린 것이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네티즌도 “피겨 스케이트 전설의 보기 드문 공개 질책”이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많은 글로벌 네티즌들이 “김연아가 발언하도록 도발했을 정도라니, 얼마나 속상했다는 얘기야?”, “김연아가 스포츠계에 개입하게 만들 정도로 화나게 한 거라면, 너희들은 망한 거라는 것 알겠지?”, “김연아가 나에 대해 그런 글을 썼다면 난 당장 은퇴하고 대기중으로 증발해 버렸을 것”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