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합창단 이상현 이사장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생전에 쓴 글씨)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을 무대 위에서 공개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뮤지컬 영웅, 국립합창단과 만나다’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국내 대표 창작 뮤지컬인 ‘영웅’과 국립합창단의 만남이 이뤄진 무대였다. 이를 위해 지난달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국립합창단이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2009년 첫선을 보인 ‘영웅’은 대한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 무대에서 주인공 안중근 역할로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나섰고, 소프라노 김명희·김현지, 베이스 유지훈·함신규, 테너 박의준·문형근·김문섭·주호남, 알토 최윤정 등 국립합창단 단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뮤지컬 영웅의 주요 곡들을 합창 버전으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연출은 윤상호, 편곡은 김민아가 맡았고, 라퓨즈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대사가 많이 나오는 뮤지컬 공연과 달리 합창 공연의 특성상 노래 위주로 무대가 꾸려져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면 다소 극 전개를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의 힘이 이를 불식시켰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상세히 읊는 뮤지컬 대표곡 ‘누가 죄인인가’가 국립합창단의 합창과 어우러진 순간, 배우들의 목소리가 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또한 노래를 듣는 내내 무대 위쪽엔 안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사진, 안 의사 어머니의 편지 내용 등을 볼 수 있는 영상을 공연 흐름에 맞게 볼 수 있도록 연출해 귀뿐 아니라 눈까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특히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안 의사의 유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국립합창단 이상현 이사장이 안 의사의 미공개 유묵 녹죽을 직접 들고 나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것. 공연에 앞서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부장이 녹죽의 의미를 설명하는 프리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해당 연출은 이상현 이사장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잠시 만난 이상현 이사장은 “안중근 의사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며 녹죽 공개 의의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녹죽은 앞서 4월 진행된 서울옥션 경매에서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차녀인 구혜정 여사와 이상현 이사장 모자가 9억 4000만원에 낙찰 받은 작품이다. 군자의 변함없는 지조를 뜻하는 이 작품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안 의사의 독립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보여준다.
녹죽 낙찰 후 6월 진행된 문화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상현 이사장은 “8월 열리는 국립합창단의 안 의사 공연에서 녹죽을 선보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 말을 지킨 것이다.
이번 녹죽 낙찰뿐 아니라 이상현 이사장은 지속적으로 안 의사 유묵을 꾸준히 한국에 들여왔다. 2017년엔 구혜정 여사의 배우자인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이 안 의사의 유묵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항상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2억 9000만원에 낙찰 받아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했다. 올해 3월엔 일본이 발행했던 이상현 이사장이 안 의사 초상 엽서를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공개해 시민이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국립합창단 이사장뿐 아니라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 국립극장진흥재단 이사,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대한체육회 감사 등 문화·체육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은 이상현 이사장은 이 역할을 십분 활용해 우리 문화유산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장을 적극 만들고 있다.
이상현 이사장은 “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문화유산 수집을 계속 이어나가고, 이를 국민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