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을 수식하는 말 앞에 ‘정파편향, 정치과잉, 비전문성, 일방주의’라는 말들이 붙은 지 오래다. 외부 비판에 설상가상으로 우리사회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재정적 어려움과 경영역량의 부족 등을 겪고 있다. ‘시민운동 위기론’이 퍼져있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시민운동이 과연 지속가능한 지에도 물음표를 던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정치중립 성향 시민단체들은 올해 초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진단하면서 위기에 처한 시민운동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서울 혜화동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이들 시민단체 운동가들은 현재 시민운동의 위기에 공감하면서 실추된 시민운동 회복을 위한 자성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20년 시민운동 위기론 과거 시민단체들은 우리사회의 변화에 한 축이라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참여연대가 출범 초기 ‘작은 권리 찾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시민단체들은 상근자·전문가·시민들의 집약된 힘으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개발하고 선점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시민단체의 자기희생적인 시민운동이 약화된 반면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거나 정부 관료로 진출하는 정치적 색채가 강해졌다. 무엇보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이 경제와 복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전히 거대 담론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쓴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최호윤 회계사(제일회계법인)는 “시민단체 참여자들은 창업자정신을 통해 굶을 각오를 하고 활동해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생계형 운동가들이 있는데 삶의 수단으로 시민운동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비영리단체인 시민단체가 자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원자인 시민들이 얼마나 공동주인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시민운동가의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이 같은 주장은 변화한 사회 환경에서 현실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 권해수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민단체의 비창의적이고 반복적 운동행태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책 어젠다(의제설정) 개발에 실패하고 있으며 애드보커시형 운동에 치중한 것도 일반 시민과의 괴리를 크게 한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시민단체, 정치 입문을 위한 디딤돌? 대부분의 시민단체에는 상근자를 포함해 비상근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한다. 비상근자 가운데 대부분은 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이들은 전문가인 동시에 사회적인 신뢰도 높아 시민단체로부터도 선호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략적으로 정치권 진입을 위한 디딤돌로 시민단체 활동하기도 한다.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시민단체에 활동을 했던 경력과 자신을 외부에 알리기도 쉬운 일거양득을 노리는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일부 시민단체 활동 전문가들은 시민단체 경력을 참여빈도에 비해 지나치게 활용하거나 참여는 거의 하지 않고 정부 또는 정치권에 제출하는 이력서에 활용하고 있기도 한다. 한편 시민단체들도 대외 지명도를 위해 명망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명망가 영입은 정부 요직 참여→퇴직→재영입이라는 순환과정을 만들어냈다. 권해수 교수는 “다양한 전문가집단이 활동하지만 이들의 참여 동기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는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상근 전문가들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시민단체 안에서도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내부 윤리규정이 있더라도 강제성이 없고,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들에게 시민단체의 이념과 방향을 일관성 있게 지켜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정치성향에 대해 막무가내식 일방적 비난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종원 서울YMCA 부장은 “몇몇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정치권에 있다고해서 시민운동이 정치편향이라고 하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시민운동의 본질은 정책이나 방향이 부합되는 정치세력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정치적 역할은 하지만 정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신뢰가 온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유의 아젠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정책 수용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시민단체 재정위기, 어떻게 해결할까 시민단체의 활동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기반이 더 악화되고 있다. 주요원인은 재정위기의 심화에서도 비롯된다.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지만 시민사회는 시민단체에 대한 중립성 유지를 위해 재정적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중립성을 위해 ‘정부지원금도 기업후원금도 받지 말라’는 요구를 하지만 시민들의 회원 가입은 없고 회비도 제대로 걷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궁극적으로 돈 문제도 있는데 상근자의 희생적인 봉사와 고행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부이고 기업은 기업이고 NGO는 NGO가 이분적인 사고는 곤란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기업의 펀딩소스를 확대해야 한다. 이것이 도덕적 독립성의 문제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시민사회 활성화가 60년대인데 그 원인 중 하나는 포드나 락펠러, 카네기같은 부자들이 번 돈들이 시민단체로 들어와 정화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한편, 권해수 교수는 “시민단체에게 후원금 또는 회비를 납부하는 경우 연간 10만원까지 세액 공제를 하는 법안을 제정하자”고 제안한다.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할 경우 10만원까지 세액을 공제하는 정치자금법 규정을 응용하자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런 법률안의 제정으로 시민단체의 활동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재정적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