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도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더벅머리 사내아이 둘이 함께 자라는 집이 거의 다 그러하듯이, 허구헌날 흙투성이에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던 터라, 누나 있는 집 아이들의 상대적으로 말끔한 차림새와 그 녀석들이 제 누이들에게 받던 다소간의 보살핌 따위가 한없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누나, 혹은 누이라는 말은 코밑에 수염이 돋은 뒤에까지도 나에게는 부러움을 상징하는 말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 ‘여동생이나 누나 하나만 낳아달라’고 떼를 쓰다가 혼쭐이 났겠는가. ■ 바람에 지는 꽃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 故 민족시인 김남주는 오월광주를 일러 저렇게 말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은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바람에 지는 꽃잎과 같은 서정적인 이미지로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말 할 것도 없이 ‘5월 광주’가 기억 저 편에 존재하는 까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은 왔다가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는다. 그저 5월 18일 하루 정도만 경건한 척 할 뿐,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다. 몇 해 전, 5·18 유혈진압의 주인공들이 “5·18 진압은 ‘정상적인’ 진압이었다”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MBC에 보냈었다. 웃어야 하나, 아니면 울어야 하나. 하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속칭 ‘알바’들 중에도 그날의 일을 일러 ‘(시민의 국가에 대한) 반역사건’이라고 칭하는 자들도 목격할 수 있다. 한 술 더 떠 경남 합천군은 5·18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일해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해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자랑할 인물이 그리도 없는가. 하기는, 대표적인 친일 문인인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문학제도 있는 판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공원 정도가 대수겠는가. ■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벌 윤정모. 한국 문단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뛰어난 여성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이의 작품들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온갖 상처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순투성이의 상처를 보듬고 있는 윤정모의 시선은 따스하다. 그것은 그이의 영혼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윤정모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장편소설 ‘고삐’를 통해서였다. 우리가 흔히 ‘양공주’ 혹은 ‘양갈보’라 부르는 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민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에 위치하고 있는 ‘분단 시스템’이 낳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는 매우 짧지만, 그 어떤 시민운동에 못지않게 치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방 이후, 이 땅을 지배해온 외세의 강압과 그것에 저항하는 몸짓을 지닌 ‘기지촌 활동’은 그 헌신성과 진정성에서 전 세계 여성운동가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해 온 우리의 어머니들과 누이들의 삶은,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또 다른 얼굴이다. ‘고삐’는 윤정모 자신의 진솔한 과거사인 동시에 억압받는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이다. 남성을 모조리 적으로 규정하고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몇몇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열린 사회의 적들’일 뿐이다. 그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인가 눈물을 흘렸다.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성으로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짝사랑을 여전히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하늘을 떠받치는 절반은 여성이다” 함께 살아가고 같이 고민하며 더불어 실천하는 양성평등 운동의 올곧은 길을 희망한다. ■ 해지는 들녘 윤정모를 다시 만난 것은 장편소설 ‘들’을 통해서였다. 1994년 무렵이었다. 당시는 ‘우루과이 라운드(UR)’로 인한 쌀 개방 문제와 북핵 위기가 고조되었던 시기이다. ‘들’에는 당대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농민들의 이야기가 참 쫄깃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충청도 어디이건, 전라도 어디이건, 경상도 어디이건, 우리 농민들의 살은 고달프다 못해 애처롭다. 그러나 윤정모는 그 ‘애처로움’을 단순히 측은한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이는 오히려 그들의 삶 역시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다. 농민들이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삶 역시, 도시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를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일한만큼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흔히 무시당하며, 종종 스스로의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세상을 하직하는 일이 벌어지기는 농민이나 도시 노동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들’은 우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윤정모는 그 고단한 일상 속에 스며있는 우리네 농민들의 웃음과 건강한 투쟁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치 소설가 한창훈이 그의 첫 장편 ‘홍합’에서 여수인근의 홍합공장의 중년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애정 가득한 필체로 묘사했던 것처럼. ■ 바람 속의 얼굴들 그 윤정모의 책 ‘누나의 오월’을 다시 읽는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중학교 국어교사이면서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 홍보부장을 맡았던 박효선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본 얼개로 하는 회고조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박효선 씨는 1983년 ‘극단 토박이’를 만들어 ‘금희의 오월’ 등의 연극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혼신의 힘을 쏟다가, 1998년 9월 간암으로 세상을 뜨게 된 영원한 ‘오월 광대’였다. 아울러 이 책은 윤정모가 처음으로 펴낸 청소년소설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9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가 배경으로 다뤄진다. 벌써 사반세기 전의 일이건만, 작가는 내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모양이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그 상처는 아물어야 한다. 하지만 기억은 늘 새로워야 한다. 이것이 윤정모가 내내 가슴속에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더 힘껏 달려갔다. 어서 가서 그 품에 얼싸안기고 싶었다. 한순간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 따뜻하고 부드러운 뺨이었다. 그러나 머리를 보니 선생님이 아니라 누나였다. 선생님 옷을 입고 달려온 우리 누나였다.” - ‘누나의 오월’ 마지막 부분 중에서 주인공 ‘기열이’의 누나 ‘기순이’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이 땅의 누이들이 그러했듯이, 남동생으로 인해 그 꿈은 무뎌져갔고, 결국 동생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는 ‘개발독재시대’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영상실록’ 류의 지난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날 우리의 누이들이 지나와야 했던 침묵과 노동의 시간대와 마주할 수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 중에 그러한 시간대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러한 누이들은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수출역군’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성적(性的) 유희의 도구로 간주되기도 했다. 버스안내양과 가리봉동 혹은 구로동의 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시절 우리의 누이들은 ‘충분히’ 고달팠다. 광주항쟁 당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압군의 총탄에 희생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들을 살리기 위한 피(血)는 부족하기만 했다. 그때 수혈을 자원한 사람들 중에는 황금동의 직업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 역시 한 명의 민주시민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누나 역시, 다방에서 차 배달을 하는 ‘아가씨’였다. 주인공을 고향까지 바래다주던 누나의 팔뚝에 난 무수한 바늘자국을 ‘이상한 병’으로만 알고 있던 주인공. 그것이 바로 ‘오월 광주’에서 민주의 꽃잎으로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역사의 전면에 부활하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진압군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운 이들만이 ‘민주투사’는 아닐 것이다. 그들을 위해 김밥을 싸고, 물을 건네주고, 기꺼이 자신의 피를 나누어준 이들 모두가 ‘오월의 제단’에 온 몸을 바친 ‘민주화 유공자’다. 윤정모 소설 ‘누나의 오월’은 슬픔의 가장 밑바닥으로 우리를 침잠시킨다. 그러나 그 ‘침잠’은 무작정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인간다움을 유지하게 해주는 진정한 ‘슬픔의 힘’이다. 슬픔도 힘이 된다.’ 이 말은 단순이 윤정모의 단편소설 제목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으려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마주하게 될 하나의 ‘진실’이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휘청거릴 때, 그리고 자신의 길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저 말을 기억해야 한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 김남주 詩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중 제 1연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