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제 일 원칙은 금융·산업 자본 간 분리이다. 정확히 말하면 산업자본 즉 삼성그룹·현대차그룹 등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원천 금지하는 것이다.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24조와 은행법 16조 4항등은 금융주력자와 비금융주력자를 정의한 뒤 비금융주력자들의 은행 대주주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와관련 재계 및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금·산 분리 원칙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원칙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뚝심있게 지켜오고 있는 금·산분리의 원칙이 엉뚱한 곳에서 세고 있어 대책이 요구된다. [본문] 최근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금지 원칙에 대해 말이 많다. 금산분리의 재고를 주장하는 측은 우리은행의 소유권 행방을 예로 든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시중은행인 국민·신한·하나 은행의 경우 이미 전체 지분의 50% 이상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이며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리은행도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공자금 회수를 위해 지분을 매각할 경우 국내 금융주력자들 중에서 이를 매입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때문에 국내 시중은행들이 모두 외국인들에게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관련 정부, 정치권, 노동계, 시민단체들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 등은 “차라리 국민연금이 우리은행 지분을 매입해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한다. 이로인해 발생되는 법적 문제를 정비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도 표시했다. ■ 저축은행은 산업자본의 맛있는 먹잇감 이미 계좌이체 등 은행의 모든 기능을 허용받은 저축은행에서 이같은 금·산분리를 통해 지켜져야 할 금융산업의 안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예금보험공사가 지난 2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105개 저축은행들 중 대주주 지분율이 80%이상인 저축은행은 58개사로 전체 50.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 소유한도인 지분율 50% 이상인 저축은행을 포함할 경우 83개사에 이르렀다. 한편 대주주 지분 50% 이상인 83개사들 중 개인이 대주주인 저축은행은 65개사로 전년 대비 11개사가 감소한 반면 법인이 대주주인 저축은행은 전년 대비 5개 사 증가한 40개 사를 기록했다. 특히 전체 105개 저축은행들 중 최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곳이 36개사,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38개사로 총 74개 회사가 대주주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소유·경영이 분리된 저축은행은 31개사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이 일부 부유층 혹은 특정 기업의 사금고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 작년 홍익상호저축은행의 실 소유주였던 오세웅 씨는 처남을 통해 유령회사를 만든 뒤 이를 통해 900억원의 불법대출을 받는 방법으로 고객 예탁금을 횡령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에서는 이를 막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주주 오 씨는 구속됐고 홍익상호저축은행은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상공인연합회 등 목포 시민들은 홍익상호저축은행의 파산으로 타격이 크다며 적극적인 회생운동을 벌이는 등 애처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수신 금융회사가 대주주의 사금고화 됐을 때 생길 수 있는 극단적인 폐해 중 하나. 그런데 이같은 폐해가 홍익상호저축은행 한 곳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25일 경북상호저축은행에, 3월 16일은 홍익, 1월 19일은 대운이 각각 영업정지 명령을 당했다. 또 작년에는 좋은 상호저축은행이,지난2005년에는 플러스·인베스트·한중 등 3개 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 저축은행에 금융통화기능 부여 이같은 저축은행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융당국에서 상호저축은행에 자기앞수표 발행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표되면서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현재 당좌수표가 아닌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은행이 전부.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추진중인 증권업계 소액지급결제 허용도 엄밀히 말하면 온라인 계좌이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체국·새마을 금고·저축은행 등 이미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비 은행권들도 계좌이체만 이용할 뿐 자기앞 수표는 금지된 상태. 자기앞 수표가 허용되면 저축은행은 본격적인 금융 통화 조절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은행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또 현행법상 존재하는 영업 지역 제한도 타지역 저축은행들 간 M&A를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 실제로 서울을 연고로 하는 솔로몬저축은행의 경우 부산·강원 등으로 영업망을 확대한 상태다. ■ 재벌, 은행업 진출 포기 저축은행으로 선회 이렇게 되면 삼성·현대차·LG 등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한 뒤 자기 마음대로 금융을 조작하는 행위를 막아보자는 취지의 금·산분리 원칙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재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굳이 은행이 아니더라도 상호저축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얼마든지 금융의 사금고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 특히 상호저축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 증권사에 비해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기 때문에 이같은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재벌의 저축은행 소유를 통한 우회적 금융지배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출자총액을 제한받는 대기업군들 중 태광그룹은 예가람·고려 등 2개 저축은행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STX는 홍익상호저축은행을 최근 인수했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현대차그룹·SK그룹 등 재벌기업들이 저축은행의 인수 후 M&A를 통해 전국 영업망을 구축한 뒤 저축은행 전국망의 지급결제기능을 요긴하게 활용하려 든다면 이를 막을 법적 장치는 전혀 없다. ■ 금·산분리 지키려면 저축은행부터 다스려야 이에 따라 금·산분리의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정부·정치권·시민단체 등이 이 원칙을 절대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배경에는 금융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이 원칙을 포기한 뒤 재벌들이 시중은행을 인수하게 된다면 그 은행은 결국 모 기업군의 사금고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이와관련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금·산분리는 저축은행에서부터 무너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솔로몬 등과 같은 우량 저축은행들은 이미 시중은행과 동일한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같은 저축은행들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 때가 되면 금·산분리는 오히려 은행 역차별론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면서 “이 원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비은행권에 이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