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빈껍데기도 남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맨 주먹으로 신화를 일궈온 현대그룹. 故 정주영 씨가 지금의 현대·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그룹을 일궈 온 행보는 여러 공과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우리의 귀감이 되는 바 있다. 그러나 정 씨 사망 직전부터 온갖 경영권 내홍에 시달리던 부동의 재계 1위 현대그룹이 현대·현대차·현대중공업 등 3개 그룹으로 쪼개졌다. 그 중 몽헌 씨의 사망으로 부인 현정은 씨에게 맞겨진 현대그룹이 범 현대가의 중심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본문]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을 향한 범 현대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경제와 산업을 일궈 온 현대가 정주영 창업주. 하지만 정 씨 사후 현대그룹은 몽헌 일가의 현대그룹, 몽구 일가의 현대차 그룹, 몽준 일가의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몽헌 씨 사후 현대그룹은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부인 현정은 현 회장에 의해 소유 경영되어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故 정주영 가문의 사람들은 세 개의 그룹이 하나라는 인식아래 가능하다면 서로를 합병해 정 창업주의 적통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정몽준, “현대그룹, 반드시 먹고 말꺼야”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의 최대 위기는 현대중공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중공업그룹의 소유주이자 국회의원, FIFA 부회장 등 공인의 길을 걷고 있는 정몽준 씨는 삼촌 정상영 현 KCC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 합병에 힘을 다하고 있다. 이에 대한 명분은 잘 알려진 대로 “정 씨의 현대그룹을 현 씨 가문에 넘겨줄 수 없다”는 족벌론.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자 지배구조의 중심에 위치한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이다. 지금까지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증권업계 등 기관투자자들을 백기사로 확보했기 때문. 하지만 증권·자산운용사들의 경우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 투자목적으로 보유한 지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식을 매각하거나 현대중공업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 현대중공업, 오일뱅크 경영권 회수 전망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첨예한 갈등을 통해 삼촌인 정상영 KCC 회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현대중공업그룹은 아랍에미리트의 국제석유회사(IPIC)로부터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인수받으라는 제안을 통해 범 현대가 결집에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일 IPIC로 부터 “오일뱅크 보유 지분 중 절반을 팔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은 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9.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측이 IPIC가 제시한 35%의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총 54.8%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계열분리 당시 몽준 씨의 사촌인 몽혁의 경영실패로 IPIC에 빼앗기고 말았다. 이처럼 현대중공업 그룹은 현대그룹 통일의 행보를 거침없이 걷고 있다. ■ 정몽준, 오일뱅크 인수로 현대상선 압박 몽준 씨의 오일뱅크 접수는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자 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에 간접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상선의 원유수송사업의 주요 고객은 에스오일과 오일뱅크. 이 중 에스오일은 현대상선의 경쟁사인 한진해운이 유조선 수송사업본격화를 결정한 이후 주요 주주로 부상했다. 여기에 오일뱅크는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을 적대시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것이 신경에 거슬리는 상황. 이와관련 현대상선의 한 직원은 “사실 오일뱅크를 인수한 현대중공업이 우리까지 인수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현정은 회장 입장으로는 현대엘리베이터만 남게 되어 사실상 현대그룹이 해체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불가한 상황. 이와관련 현대그룹은 “상선이 양 사로부터 장기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라 물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이와관련 현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에스오일과 오일뱅크에 지분을 참여한다던가 할 여력이 없는 이상 현대그룹에 남아있는 한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며 “계약기간 내에 또 다른 물량을 알아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건설 향방 따라 현대그룹의 운명 결정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현대그룹 인수에 대한 직접적인 행보는 올해 초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된 것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자제하고 있다. 다만 지난 3월 2일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상선의 신주인수권부사채와 전환사채 발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현대그룹 인수가 끝나지 않았음을 대외에 공표한 상태. 사실상 현대그룹의 운명은 현대건설 인수에서 결판이 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현 회장측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소유한 후 엘리베이터가 상선을 소유하면서 상선의 타 계열사 지배를 보조하고 있다. 그리고 상선은 증권, 택배, 유엔아이, 아산, 경제연구원 등을 소유하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지배구조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주역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현황을 살펴보면 현 회장측 인사들과 현대그룹, 그리고 금융계 백기사 지분이 모두 43.9%인 반면 현대중공업그룹과 KCC측이 직접 소유한 지분은 모두 31.5%이다. 금융권 지분이 계속 현대그룹의 백기사로 남는다는 전제 아래 현 회장이 조금 우세한 상황. 그런데 현재 M&A 매물로 나와있는 현대건설이 상선 지분을 8.3%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의 지분이 현 회장에게로 갈 경우 52.2%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다. 반면 8.3%가 중공업으로 넘어갈 경우. 39.8%의 지분을 확보하게 돼 현 회장측 지분에 4.1%p로 바짝 추격하게 된다. 이와함께 KCC 등 우호세력의 지분 추가 매입과 오일뱅크를 통한 상선 흔들기에 나설 경우 금융권 백기사 세력들도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 이에 따라 현재 매물로 나와있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그룹의 물밑작업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이다. ■ 정몽구, 현대건설 인수해 현대가 평정 노려 현대그룹 경영권 향배의 중요한 방향타가 될 현대건설 인수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특별팀에서 이미 검토한 바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관련 현대가 소식통에 밝은 한 인사는 “아마 몽구 씨도 현대그룹의 흡수에 전혀 관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아버지 생전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막판까지 경영권 진검승부를 펼쳤던 동생의 미망인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는 것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오늘날 현대기업군들의 모 기업을 소유함과 동시에 상선 8.5% 지분을 통해 현대와 현대중공업의 대결구도에 캐스팅보트를 쥐면서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정통성의 계승을 대외에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현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