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의 문제다. BASF, DuPont, Bayer, GE.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수십 조 원을 넘는 매출 규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두 자릿수의 성장률과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 그들의 사업포트폴리오. 그러나 이것은 반 쪽짜리 정답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업포트폴리오는 지금도 변화 중이기 때문이다. 변화 중인 사업포트폴리오가 그들의 빠른 성장세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기업이 성장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의 유동성(Portfolio Mobility)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의 유동성과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경영시스템(Management System)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경영시스템은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유동성(Mobility)을 소화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의사결정 시스템의 비효율성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포트폴리오 문제도 사실 의사결정 시스템에 의해서 좌우된다. ■ 국내 기업 경영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사업의 범위가 확대되고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보통 기업들은 다단계의 위계 구조(Hierarchy)를 가지게 된다. 이는 관리의 범위를 줄이고,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기 위해서다. CEO를 정점으로 기업본부(Corporate Headquarter)를 두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사업본부(Business Group)를, 사업본부 아래에 복수의 사업부(Business Unit)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업본부가 사업본부를, 사업본부가 사업부를 관장하는 구조다. 사업부는 기본적으로 전략적 자율권과 독립성을 가지고, 사업의 성과를 책임지는 최소 조직 단위가 된다. 그래서 언제든지 하나의 독립 회사(법인)로 분리할 수 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 중요한 전략 문제를 놓친다 이러한 질문에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런가? 각 단계의 조직 구조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각 조직 단계의 역할과 책임을 문서상으로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문서상의 역할과 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위조직이 하위조직과 같은 수준(Level)의 전략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능간 문제(Cross-functional Issue)라든가, 사업간(Cross-business) 시너지 문제,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서는 신사업 발굴 및 육성, M&A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반면, 개별 사업 단위에서 고민해도 충분할 문제를 사업부도, 사업본부도, 기업본부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업부는 사업본부의 눈치를, 사업본부는 기업본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의 분권화를 통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본래 취지와는 상관없이,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업부의 전략과 성과를 책임져야 할 사업부장이 사업본부장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사업본부장은 CEO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만큼 사업부가 전략적 독립성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전략적 오류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CEO가 고민해야 하는 범위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범위가 커진 만큼, 고민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 얕은 정보와 지식으로 사업부의 전략을 고민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CEO에게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부는 이제 사업본부장의 처분을, 그리고 CEO의 처분만을 기다린다. 이것이 우리 의사결정시스템의 현주소다. 우리 기업들의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한된 정보, 얕은 고민, 의사 결정 지연 등의 문제가 바로 사업전략의 오류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별 사업부 전략을 고민하는 CEO는, 이제 사업포트폴리오 문제를 고민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기존 사업을 잘하는 문제에만 더욱 매달리게 된다. CEO 개인에게는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전략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포트폴리오 전략만큼 선택의 리스크가 큰 것은 없다. 더구나 내부에서 선발된 CEO가 이미 사업부장, 사업본부장 시절에 경험한 문제를 다시 CEO가 되어서도 풀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이에 반해, 기업의 성장과 사업포트폴리오 문제는 CEO가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문제인 것이다. 많은 CEO들이 사업포트폴리오보다 기존 사업의 문제에 더 천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런 CEO가, ‘억 단위의 기업’을 ‘조 단위의 기업’으로 만들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