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남해안 여수 앞바다를 초토화시킨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그 두 배 규모를 넘는 초대형 사고가 다시 터졌다. 지난 7일 오전 7시 충남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에서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크레인 바지선과 충돌하여 원유 1만500㎘를 바다로 쏟는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 똑같은 재앙이 12년 만에 재연된 것이다. 게다가 사고를 처리하는 당국의 대응 역시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나온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의 틀을 짜는 세밑에서도 줄을 잇는 사건·사고는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언제 무슨 일이 어디서 터질지 모를 위기감마저 느껴지는 수상한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위기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도정(道程)의 곳곳에 도사린 피하기 어려운 위험일 터이지만, 우리는 그 위험을 도외시하거나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픈 자기부정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어제 겪은 위난이 오늘 또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튼튼한 조직도 언제 위기가 닥칠지 매일매일 위기라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준비된 조직과 준비되지 않은 조직의 위기관리 대처능력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인터넷 첨단산업 강국인 우리로서는 정보 및 기술 보호의 차원에서 조직의 위기관리가 더욱 더 절실할 때이다. 위기 때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사람 셋만 만나도 사람의 목숨까지 살릴 수 있는 방법의 힘이 이것이다. 여기서 한 번 크게 외쳐 보자. 당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사고와 열정이 얼마나 중효한가를 우리 서로가 느껴야 할 것이다. 위기는 언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잠재된 실체이므로, 매일 위기의 연속이라 여겨 철저히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대응 자세가 필요하며, 이는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결코 다를 수 없다. 거꾸로 무비유환(無備有患)의 결과가 가져온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우리는 지금 서해안에서 뼈저리게 겪고 있는 중이다. 다사다난했던 정해년(丁亥年)도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면, 고성과 험담으로 입과 귀를 더럽힌 한 해였다. 분열과 갈등과 시비로 고비마다 위기를 자초한 회한의 세월이기도 하였다. 누구의 잘못이라 탓할 것 없이, 모두가 ‘나’와 ‘우리’의 잘못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똑같은 잘못을 되풀해서는 안 된다. 위기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닥치는 법이니,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찌해야 할지 그 대답은 자명하다 하겠다. 단 열두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선을 격파할 계책을 미리 세웠던 이순신 장군의 선견지명, 그 철저한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발행인 최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