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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시리즈] 대한민국은 ‘재해 공화국’인가?

①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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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호 ⁄ 2008.01.21 17:58:08

? 총론 - 무자(戊子)년 새해 분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터진 경기도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폭발사고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현장 근로자 57명 가운데 17명만 살아남은 끔찍한 사고였다. 이 사고를 보면서 ‘대한민국은 재해(災害) 공화국인가’ 이 말이 다시 떠오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고,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등 잊혀질 만하면 다시 터지는 대형 사고들. 이런 사고들은 소위 ‘후진국형 인재(人災)’임이 증명됐다. 인재는 법령과 제도의 미비, 안전의식 부재, 관련기관의 관리부족, 민관유착 등 여러 가지 부실이 복합돼 발생한다. 충분한 예방과 신속한 구호조치만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이천 화재사고를 계기로 이런 충격적인 사고들이 왜 발생하는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점들을 화재사고, 교통사고, 산업재해, 환경재해 등으로 세분화해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지난 7일 터진 경기도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폭발사고의 사고경위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창고회사와 시공업체, 소방당국의 3중 부실이 빚은 대형 참사임이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현장 책임자와 냉동창고 관리자 등 현장 작업자 10여명에 대해 관계자들의 과실 여부, 업체 방화관리, 소방검사필증 교부 과정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청은 이에 더해 소방안전 실태를 관리하는 관할 소방서 관계자의 뇌물수수혐의까지 최근 포착했다. 이런 대형 참사의 원조라면 30년 전에 일어난 ‘이리역 열차 폭발사고’가 생각난다. 지난 1977년에 발생했던 이 사고는 민수용 화약을 싣고 광주로 가기 위해 하행선에 대기 중이던 화물열차에 실린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 24톤이 폭발해 일어났으며, 사망 49명, 실종 7명, 중상 293명, 경상 717명, 가옥 전파 675채, 반파 1,289채, 재산피해 80억원, 이재민 9,000여 명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화약 수송원이 소주를 마신 후 열차 내에 촛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가 촛불이 다이너마이트를 포장한 마분지 상자에 옮겨 붙으면서 발생했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대표적 참사라 할 수 있겠다. 이 사고에는 ‘에피소드’ 한 가지가 있다. 가수 하춘화 씨도 이 사고의 피해자라는 것. 역에서 500m 떨어진 삼남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폭발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 기절한 그녀를 등에 업고 내달려 살려낸 사람이 바로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 씨였다.

이 외에 성수대교 붕괴사고(94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95년), 씨랜드 화재사고(99년), 인천 호프집 화재사고(99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2003년) 등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대형화재 참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 지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대형 참사들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리기관과 업체 사이의 비리와 탈법, 위험불감증 등이 더해지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된 결과라는 것. 운이 좋아서 사고가 터지지 않았을 뿐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항상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학교 교수(사회학)는 “이천 화재사건 뿐만 아니라 최근의 대형 사고들은 지난 80년대까지 고속성장 후유증으로 재난공화국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썼던 한국의 위험사회에 대한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며 “정부도 소방방재청을 신설하고 각종 제도와 법률을 만들었지만 정작 안전에 관한 의식과 관행은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천화재 사건에서도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는 안전불감증과 함께, 경비 절감을 위한 각종 편법인 ▲공기 단축을 위해 건축허가 전에 착공하는 관행 ▲허가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편법적인 토지 활용 ▲불법 하도급 ▲부실한 안전설비 ▲허술한 준공검사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 투입 등 하청 건설업의 구조적 문제점도 사고의 원인으로 언급했다. 이 교수의 지적처럼 이번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도 공사업체가 기본적인 법규만 지켰으면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사업체는 며칠 남지 않은 영업 예정일을 앞두고 냉동설비와 파이프 보온, 전기설비 공사 등을 한꺼번에 진행시켰다. 당국의 소방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넓이가 축구장의 세 배나 되는 냉동창고인데도 출입문은 앞 뒤 한 군데씩 밖에 없었고, 창문이나 환기구도 변변치 않았다. 특히 건물 내부는 칸막이로 몇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불이 나면 대피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더구나 불이 났는데도 화재 경보도 없었고 폭발이 일어나자 스프링클러는 곧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이런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소방필증이 교부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재열 교수는 “이천 화재참사로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다시 지불한 셈이지만, 문제는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는 것”이라며 “실무 담당자에 대한 처벌과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위자료 지급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던 삼풍백화점 사고에서의 대처 방식으로는 곤란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이런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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