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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파출소 부활하나

지구대 수사권 없어 ‘사건 접수처’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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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호 박성훈⁄ 2008.04.14 18:01:22

서울 강남경찰서 압구정지구대에서 4월 5일 다 잡은 현행범을 눈앞에서 놓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지구대는 신고를 접수하고 마약을 흡입하던 30대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경찰서 앞까지 데려오는데 성공했으나,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범인이 달아났다. 지구대원들은 지구대장에게 “증거를 찾지 못해 훈방했다”고 허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전날 성남시 분당경찰서 금곡지구대에는 30대로 추정되는 흑인 남자가 편의점에서 위조 수표 10만 원권을 사용하고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신고 접수 후 출동을 40분 가량 지연하는 바람에 용의자를 놓치고 말았다. 한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에서는 피해 어린이의 부모가 당일 신고를 했지만, 출동한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취해야 할 초동조치를 소홀히 하고 단순폭력 사건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전직 프로 야구 선수 이호성의 살인사건도 네 모녀가 실종된 지 8일이 지나 가족들이 지구대에 처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실종자의 집을 살펴보는 수박 겉 핥기식 조사만 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지구대 개편 이후 현장출동·검거율 저하 치안의 일선에서 가동되는 ‘경찰의 촉수(觸手)’인 지구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위에 열거한 사건들은 모두 관할 지구대의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범인 검거에 차질을 빚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지구대가 오히려 치안의 사각을 드러내면서 예전의 파출소 체제로 복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파출소와 지구대는 어떻게 다른가? 지구대의 전신인 파출소는 경찰의 말초혈관으로서 ‘동네 경찰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소장은 경위이고, 3~5명의 경찰관이 근무하며 주민들에게 치안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다가 신고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한다는 명분으로 파출소 3~5개를 통합하여 만든 것이 지구대이다. 그러나 인원 부족, 예산 부족, 과중한 근무강도 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찰 입장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구대장인 경감 아래 경위 순찰팀장 2~3명을 두고, 10~20명으로 구성된 3개 순찰팀을 두어 3교대로 근무하게 하였다. 경감 자리가 그만큼 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찰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지구대 체제로 전환한 애초의 취지는 파출소 3∼5곳에 분산돼 있는 경찰력을 지구대로 집중시켜 날로 횡포화·광역화하는 범죄에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출소에서 지구대로 개편한 2003년 이후로 현장 출동 및 검거율이 파출소 시절보다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의 석사논문 ‘순찰지구대 도입의 정책효과성 연구’에 의하면, 112 신고 후 5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하는 비율은 2002년의 94.1%에서 2003년에는 85%로 현저히 떨어졌고, 2004년에는 80.1%로 더 떨어져 초동수사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주요 범죄의 현장 검거율도 2002년 87.9%에서 2003년 79.7%, 2004년 76.5%, 2005년 80%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논문에서는 범죄사건 발생 횟수가 지구대 업무 평가에 직접 반영된다는 점에서 지구대 업무효율성 저하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 낮은 평가점수를 받기 때문에 큰 사건이 발생해도 애써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구대에서는 사건 발생 자체를 싫어한다”며 “발생건수가 많아지면 상부 기관인 경찰서에서 지구대장에게 책임을 묻는 체계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특히, 종전의 파출소에 비해 지구대의 치안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2003년 이전에는 4개의 파출소가 관리하던 지역이 1개의 지구대로 통합되면서 관할구역이 대폭 확대된 반면, 치안관리는 상대적으로 허술해졌다는 뜻이다. 승진·포상 소외된 지구대 112 범죄신고는 전국 각지의 지구대로 퍼진다. 따라서 국민은 지구대를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사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대와 수사팀의 역할은 각각 구분돼 있다. 지구대에서는 주민들의 초동 신고접수를 담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업무는 경찰서가 담당하는 식이다. 주민들은 수사관이나 지구대 경찰이나 모두 신고하면 즉시 출동하여 범인을 잡는 수사 경찰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상 지구대와 경찰서는 역할이 달라 오히려 유기적인 관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2005년 수사 형사는 수사 부서에서만 일하면서 그에 걸맞은 수당과 승진을 보장하는 수사경과제를 도입했다. 기피 부서로 전락한 수사 부서를 ‘경찰의 꽃’으로 다시 일으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수사 일선에서 멀어진 경찰들만 지구대로 가게 되는 부작용이 나왔다. 강력범죄 실적 평가에서도 지구대 경찰은 빠졌다. 따라서, 아무리 초동수사에 성과를 내도 지구대원에게 포상이나 고과에 도움이 될 일이 없다 보니, 대충 사실관계만을 파악해 경찰서에 보고하여 형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라고 한다. 사건 발생을 두려워하는 관행과 상관에 대한 보고를 부담스러워하는 태도도 문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최근 법무부 장관이 ‘범인 검거율이 떨어져 치안이 문제’라고 말했는데, 실적·통계 위주로 치안을 평가하는 정부의 경직된 인식이 일선 경찰에게 범죄 발생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지구대 경찰이 출동·구호·보고·감식 등 현장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도록 수뇌부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경찰 수뇌부는 조직 추스르기는 뒷전이고 ‘체포전담반’을 운영하는 등 정치권에 잘 보이기 위한 집회 대책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4조 2교대’ 도입도 실효성 의문 경찰에서도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경찰은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라 현행 3조 2교대인 지구대 근무를 각 조의 인원을 줄이고 한 개 조를 늘려 4조 2교대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근무조를 1개 더 늘려 업무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대안이다. 현재 경찰 지구대에서는 50~60명의 근무 인원이 3개 조로 나뉘어 ‘주간·야간·비번’으로 순서를 정해 근무(3조 2교대)하고 있지만,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한 개조를 늘려 ‘주간·야간·비번·휴무’ 순서(4조 2교대)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인원을 증원하지 않고 순찰팀을 하나 늘리는 방안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이다. 오히려 조당 근무 인원이 줄어 순찰 등 범죄예방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 자치경찰제 도입 시급 전문가들은 시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치경찰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치경찰제란 경찰 당국이 아닌 지자체에서 별도로 경찰을 운영하는 제도로, 중앙정부가 운용하는 경찰기능의 일부를 지방으로 이양한 형태이다. 자치경찰은 중앙당국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현지사정에도 밝기 때문에 지역의 치안 유지와 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에서 중앙정부의 수뇌인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한 직후 범인을 검거한 행태는 경찰이 시민보다 중앙정부를 더 의식해 활동하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직 고위 경찰관은 “경찰은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기보다 인사권자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경찰이 자칫 주민을 도외시한 채 운영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005년에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자치경찰 관련 법안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시·군·구 단위의 기초단체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 경찰 감시장치 활성화 중요 경찰이 제 역할을 하는지 시민이 직접 감시하도록 하는 법령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행으로는 경찰 운용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경찰위원회와 같은 시민자치 감시기관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원회 자체에는 시민의 의견을 경찰지휘체계에 반영하거나 개혁을 강제할 만한 실질적 권한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시민과 지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지역경찰위원회’를 구성해서, 위원회가 직접 경찰의 인사에 관여하거나 예산을 심의할 수 있게 된다면 위원회의 활동에 힘이 실릴 것이며, 경찰도 중앙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체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민원·치안 서비스를 향상시킬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사회 각계의 의견을 대변할 만한 인사들로 구성된 옴부즈맨 제도를 강화해 경찰활동을 감시할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경찰 감시의 권한도 일부 행사하고 있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접근 루트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 위원회의 조사 인원이 부족한 것도 실질적 기능행사에 장애요인이다. 경찰 직위를 민간인에게 개방해 경찰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1월 박종환 당시 충북경찰청장은 대통령직 인수위 게시판에 “민간인에게 경찰 고위직을 개방해 순혈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경찰 혁신을 추진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잇단 뒷북수사로 민생치안 확보에도 실패한 경찰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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