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전문 케이블 방송 M-net을 보다 보면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라는 오락 프로그램이 나온다. 제목에서만도 연상되듯이 다섯 명의 곱상하게 생긴 청년들이 한 아기를 돌보는 육아 프로그램이다. 기저귀나 젖병이라고는 첫 걸음 떼던 어린 시절 이후로 근처에도 안 갔을 법한 청년들이 아기를 키우겠다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이 프로그램의 볼거리이다. 이런 컨셉트,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그렇다. ‘GOD의 육아일기’와 거의 똑같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도 사석에서 “MBC의 ‘GOD의 육아일기’를 대충 우라까이(베끼기)해서 만들었다”며 농담조로 얘기했다. 하지만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는 ‘GOD의 육아일기’와 큰 차별화를 이룬 점이 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 아기인 해찬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모르고 자란 천애 고아라는 사실이다. 대충 이쯤 되면 감이 올 것이다.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는 입양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밝게 전환시키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대한사회복지회와 연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브라운관 속의 주인공 해찬이는 대한사회복지회에서 방송사에 소개해 준 아기이다. 이 프로그램은 주인공인 아기 해찬이를 입양을 희망하는 양부모와 맺어 주는 결론으로 해피 앤딩을 장식할 계획이다. 실제로 많은 양부모들이 해찬이를 두고 입양의사를 밝혀 왔다는 후문이다. 입양을 희망하는 커플이 많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상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동방사회복지관 등 아동복지시설과 각종 시민단체에서는 입양의 날을 맞아 입양을 장려하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과거부터 혈통주의가 사람들의 인식을 강하게 지배해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다른 핏줄을 가족으로 들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매스컴과 정부 및 사회복지단체들의 노력으로 입양에 대한 인식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에도 입양 대상 아동 수는 줄어든 데 반해 국내 입양아 수는 13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08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입양아 수는 2006년 1332명에서 2007년 1338명으로 소폭 상승한 모습을 보였다. ■ ‘아동 수출국’ 오명 벗어 특기할 만한 사항은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 입양아 수가 해외 입양아 수를 앞질렀다는 점이다. 자료를 보면, 2007년도 아동입양의 국내입양률은 52.3%로 국외입양률(47.7%)을 앞질렀다. 해외입양률이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는데다 2007년 입양아 수가 전년에 비해 대폭 떨어지면서 이 같은 결과를 보였다. 우리나라는 해외로부터 ‘아동 수출국’ 혹은 ‘고아 수출국’이라는 지탄을 받아온 바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 보내진 한국 아동은 전부 1376명이었다. 이는 중국과 과테말라,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입양률이 국외입양률에 앞선다는 통계결과는 이 같은 오명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입양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은 국내의 유명인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여 주는 입양 자녀와의 행복한 생활모습에 힘입은 바 크다.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으로 주변의 찬사를 받고 있는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이들 부부가 낳은 첫째 아들 정민과 첫 입양아인 둘째 예은이를 키운 데 이어 셋째 예진이를 입양해 세인을 감동케 했다. 우리나라의 예는 아니지만, 할리우드 톱스타인 브래드 피트와 졸리 피트 부부가 한 명의 친자와 함께 매덕스와 팍스, 자하라까지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 변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입양을 장려하는 각종 정책들도 한몫을 했다. 보호시설에 맡겨진 지 5개월 미만의 아이들에 대해선 국내 입양을 우선 추진토록 한 것과 독신가정도 입양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국내입양을 촉진하는데 기여했다. 지난해부터는 국내 입양을 촉진하기 위해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완화됐다. 이전에는 독신에게는 입양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고, 부모와 입양아의 연령차도 50세 이하로 규정했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35세 이상의 독신 가정도 입양할 수 있게 됐다. 아동과의 연령차가 50세 이하이기만 하면 된다. 기혼 가정은 부모가 25세 이상이고 아동과의 연령차가 60세 미만이면 가능하다. 입양 부모에 대한 혜택도 있어 입양기관에 지불하는 비용 200만 원을 국가에서 부담하고, 입양아가 13세 될 때까지 매월 10만 원의 양육비도 보조해준다. 결혼한 지 5년 이내 신혼부부가 입양할 때는 신혼부부 주택 청약자격을 주는 혜택도 있다. 경제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아동에게는 월 55만1000원의 양육보조금과 연 252만 원의 의료비를 준다. 또 입양을 제2의 출산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공무원은 입양휴가를 준다. ■ 아이들에게 두 번 고통주는 ‘파양’ 하지만, 국내 입양의 증가와 함께 입양을 파기하는 소위 ‘파양’ 사례도 증가하는 현상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이는 입양아에게 두 번 버림받는 고통을 주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3자녀 무주택 가정에 주택을 우선 분양한다는 정부의 정책을 악용해 허위로 아동을 입양했다 파양하는 사건마저 발생하고 있다. 가족을 상실하여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들의 구제도 중요하지만, 반복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박탈당하는 ‘파양아동’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나 제도는 이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네덜란드 외교관 부부의 한인 어린이 ‘파양’사건은 국제미아로 전락한 아동의 인권 문제를 야기시켰다. 입양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변화로 국내 입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파양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현행 민법상 보통 입양의 경우 “부모의 기준에서 입양·파양에 관한 법률이 규정돼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오류”라며 파양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국내입양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아동에게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는 ‘파양’에 관한 제도적 보완이나 파양아동에 대한 지원 계획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민법상 입양이나 파양은 정부의 허가를 받는 허가사항이 아니라 구청 신고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만큼 절차가 간소하다는 뜻이다. 민법상 입양 및 파양의 경우 개인간의 합의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아동의 신분 이동이 쉽게 이뤄지고 인권 보장이 되지 않고 있다. 파양을 경험한 아이들은 심각한 사회 부적응자로 성장할 수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정부 차원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파양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도록 강제하고 있다. 우리도 외국처럼 파양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입양아는 ‘애완용·소유물’이 아니다 버림받은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학대에까지 이르는 깊은 자괴감 등이 파양아동에게 나타날 수 있는 정신적 후유증의 일부라고 아동 전문가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입양과 파양이 아동의 선택이 아닌 만큼 아동의 복지와 인권 보장이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홀트아동복지회 조선미 사회복지사는 “입양과 파양을 겪는 아동에 대한 장기간의 상담과 치료과정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면 파양 문제도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입양 후에 부모와 아동 양측으로 이뤄지는 상담이나 재정 지원의 확대가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입양에 대한 계속적인 인식의 개선도 상당히 중요하다. 조선미 사회복지사는 아이를 입양할 때 아이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식의 생각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방해할 뿐이라며, 입양아동을 ‘소유물’이나 ‘애완용’으로 여기지 말고 그 아이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인식으로 더 많이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입양이 느는 사실은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인식이 전환되는 속도는 빠르지 않다. 아직까지도 입양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가정이 적지 않고, 입양아라면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편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