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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사각지대, 청소년 알바생들

최저임금 보장은커녕 산재보험 혜택도 못 받는 청소년 노동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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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호 박성훈⁄ 2008.06.16 15:52:45

거리에 나서면 흔히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여자 종업원에서부터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햄버거를 만들고 프렌치프라이를 튀기는 남자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미성년자 일색이다. 훌쩍 성숙해 보이는 외모의 종업원을 붙잡고 대학생이냐고 물으니 “아직 고등학생”이라며 새침하게 쳐다본다. “고등학교 몇 학년인가”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또래 친구들이 많은가” 등등 이것저것 물으니, 갑작스런 신상 질문에 당황한 듯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잘 모르겠다”며 금세 등을 돌린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홀과 대조적으로 주방기구들이 내뿜는 열기가 후끈한 그들의 일터에서, 풋풋한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주유소에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주유하는 종업원들과 세차를 담당한 직원들 중에도 앳된 얼굴이 발견된다. 차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기름 묻은 장갑을 낀 채 일하는 그들 중에도 고등학생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미만인 자를,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세 이상 24세 미만인 자를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 관련 통계에서는 청소년 노동자를 15세~24세로. 근로기준법에서는 청소년 근로자를 ‘연소근로자’라 해서 13세 이상 18세 미만인 자를 청소년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각 법령마다 혹은 통계마다 청소년을 규정하는 기준은 다르지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를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유소·편의점·패스트푸드점·할인마트 등 청소년의 일터 청소년으로 규정된 이들은 주유소나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할인마트 등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꾸려 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2,910명 중 34.1%가 중2~고2 기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업종은 중학생은 ‘전단지 돌리기’, 고등학생은 음식점 카운터 보기·서빙·배달 등을 맡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택배와 같은 유통업종에 종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용돈을 벌기 위해 혹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한창 놓고 공부할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택하는 이들에게 “공부할 나이에는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도 일리는 있겠다. 하지만, 청소년 노동 인구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서 그들의 노동권 문제에 대해 조명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88만원세대’? 청소년은 그도 아쉽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은 우리나라 20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88만원에 불과하다는 데서 나온 신조어이다. 현재 563만 8000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알려진 가운데, 교육대와 산업대를 제외한 4년제 대졸자의 취업률은 전체의 64%에 불과하다. 이 중 일부(17.9%)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20대의 청년들은 더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거나 ‘샐러던트(Saladent, 샐러리맨과 학생(student)의 합성 신조어)’로 용돈을 근근히 모아 생활하기도 한다. ‘88만원세대’와 ‘1318 청소년’은 보다 낮은 임금과 보다 유연한 노동력으로 고용주의 선호를 받고 있다. 참여연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헤드헌팅 사이트에서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업소가 적잖이 발견됐다. 이들 중에는 PC방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편의점, 호프나 주점, 음식점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들 업종들은 청소년들이 흔히 고용되고 있는 아르바이트 업종이다. 그나마 취학 청소년들은 학교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미취학 청소년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만 되고 있지, 그 규모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노동법, 청소년에겐 딴 나라 얘기 노동부가 지난 2005년과 2006년 여름방학 대비 노동법 준수 여부를 점검한 결과에 의하면, 2005년에 6.4%였던 노동법 위반 비율은 2006년에 15.1%로 2배 이상 급증하였다. 조사대상 업체 535곳 중 81곳이 노동법을 위반했다.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곳이 54건, 임금 체불이나 최저임금 위반이 53건, 연소자증명서 미비가 30건, 휴일·야간노동 규정 위반이 24건이었다. 2007년 7월 점검 결과에서도 600개 업체 점검 사업장 중 68.3%인 410개 사업장에서 715건의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었다. 위반 내용도 전년처럼 근로조건 명시 위반이 259건(36.2%)으로 가장 많았다. 업종별로 보면, 음식점이 100개 업체 중에서 86개소(86.0%)로 가장 위반율이 높았고, 다음으로 주유소가 131개 업체 중 81개소(73.0%), 제조업 20개 업체 중 13개소(65.0%), 패스트푸드 334개 업체 중 204개소(61.1%) 등의 순이었다. 노동부는 방학기간에 청소년 유해업소와 청소년 고용사업장을 중심으로 점검을 실시하고 홍보와 상담을 통해 노동법 위반으로부터 청소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 피고용인이 고용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노동법에 위배되는 처우를 당했을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거의 없다. 대처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의 한 피자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백모 군(남. 18. 고등학교 중퇴)은 노동법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임금이 적은 것은 알지만 노동법에 어떻게 돼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느냐. 그냥 모르는 대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법적인 대응을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이들은 일을 하다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주변인들에게 불평하거나 하소연하는데 그칠 뿐 법적인 대응을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전YMCA가 2007년 6월에서 7월까지 500명의 청소년을 표본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청소년(84.5%)이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한다”고 답해 법적·제도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다 다쳐도 자비 털어 치료 청소년 노동자는 노동재해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부의 청소년 고용 업소에 대한 점검이 대부분 근로기준법의 연소자 보호조항을 준수하는지에 치중돼 있다 보니, 노동재해 실태는 거의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2007년에 실시한 청소년에 대한 노동안전보건 실태 조사에서 “지금까지 일한 일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16.7%가 “한 번 이상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오토바이를 타는 배달업무가 가장 산재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화상, 찔림 및 베임 등 다양한 부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고 이후 치료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고 경험자의 30.3%가 특별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치료를 해도 자비를 털어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고용인이 부담한 경우는 29.0%에 불과했다. 산재보상보험으로 치료한 경우는 8.1%에 불과해 청소년 노동이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희롱·인격모독도 감수해야 청소년 노동자는 각종 노동법적 권리 침해와 노동재해 외에도 언어폭력과 성폭력 등 위계 관계에 의한 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이들은 사업주와 고객, 동료 등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어폭력을 듣는 경우가 많다. 식당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한 10대 소녀는 “밥도 제때 못 먹고, 조금만 실수해도 뒤에 가서 미친년 등 엄청 욕을 먹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분 나쁘지만 참아야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는 주문받을 때 잘 못 들으면 ‘니가 개야? 사람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성인여성과 마찬가지로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과 직장 내 성차별로 노동인권 침해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상 고객에 의한 성희롱은 직장 내 성희롱이 아니므로, 서비스 업종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은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도 속수무책이다. 한 10대 소녀는 “손님이 오면 ‘어서 오십시오’ 하고 뛰어나가야 하는데 처음이니까 잘 몰라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들이 다음 번에 네가 안 나가면 가둬놓고 가슴 만진다고 했다”고 전했다. ■청소년에 대한 노동권 교육 필요 이 같은 청소년 노동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YMCA와 참여연대 등 많은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은 청소년 노동권 실태조사와 법과 제도 개선 등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해왔다. YMCA는 2001년부터 ‘일하는 아이들의 센터’를 설립해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교육과 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규 교과 과정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인 노동인권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현재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서는 노동 관련 내용을 교육하기 힘든 실정이라 대규모의 일회성 단기 교육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노동법 지식 전달이 피상적으로 이루어져 본래 취지인 노동인권 의식을 함양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도 독일, 프랑스와 같이 정규 과정에 노동인권 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교육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노무사는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학교 현장에서 체계적인 노동인권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노동교육 과정의 개편과 아울러 다양한 주체가 네트워크를 이루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 주체에 대한 연수 계획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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