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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병원’ 공동화, 환자들만 죽을 맛

대형병원 몸집 불리기 열풍…지방 의료인력 ‘離村向都’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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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호 박성훈⁄ 2008.06.30 14:33:19

중소 병원들의 인력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위로 치닫고 있다. 현재 대형 병원들의 신축·증설 계획에 따라 대형 병원들이 의료 인력들을 다 흡수해 지방에는 의료 인력 공동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대형 병원들의 신축·증설 계획을 정리한 결과, 조만간 약 1만3700명의 병상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밝혀진 계획은 경기도에서 약 4900병상, 인천에서 3000병상, 서울에서 2500병상, 부산에서 2400병상 등을 증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3000여 개의 병상을 확보한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하여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의료원, 구로고대병원 등 대형 병원은 저마다 많은 환자를 확보하기 위한 병상 확충에 열심인 모습이다. 특히, 중환자실의 증축 및 신설은 더 많은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6월 초 병원 리모델링을 통해 중환자실 10병상을 늘려 2064병상의 7.9%인 165병상을 중환자실로 운영하고 있으며, 암병원이 생기면 중환자실을 15병상 더 확보하게 된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월 암센터 건립으로 40병상을 늘려 108병상의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고, 향후 30병상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병상을 늘리면서 담당 간호인력을 78명 늘리고, 심전도 모니터, 뇌파탐지기 등 필요한 첨단장비를 갖추었다. 가톨릭의료원도 2009년 개원 예정인 서울성모병원의 중환자실을 110병상 규모로 운영해 전체 1200병상의 9.1% 정도를 중환자실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대형 병원이 좋은 의료시설을 배치하고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병상 확대는 간호사가 1인당 담당해야 할 병상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의료 서비스 저하 및 간호사들의 격무로 이어질 수 있다. 인력의 부족현상을 채우기 위해 간호사나 의사를 더 채용하겠지만, 이는 지방 의료인력의 대형 병원 집중현상을 부추겨 결국 지방 병원 공동화 현상을 일으킨다.

■중소 병원 존립 위기 사실, 중소 병원들의 인력난과 경영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하는 중소 병원의 공공성 역할 제고를 기대하는 모습이지만, 중소 병원들은 현실타개를 위한 정부 지원과 영리법인화 등 상반된 주장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중소병원협의회에 ‘지방 중소 병원의 의료공공성 역할 제고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다. 정부는 그 동안 중소 병원들이 호소하는 경영난의 실체를 면밀히 파악함과 동시에, 대도시·지방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모범적 역할 사례를 분석하여, 중소 병원들의 의료공공성 역할 제고를 위한 정책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과 달리, 연구를 수주한 대한중소병원협의회(회장 정인화)는 우선 지방 중소 병원들의 열악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정부에 보일 기회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중소병협 관계자는 “정부가 이제라도 중소 병원의 고충을 알기 위해 나선 것 같다”며 “그 동안 지방 중소 병원은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그 동안 지방 중소 병원은 병원의 실질적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의료급여 환자와 지역 응급의료 환자의 절대다수를 맡아 왔으나, 최근 환자들의 대도시 집중현상이 가속화돼 존립근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중소병협 관계자는 “지방 중소 병원들이 붕괴하는 것은 지방(의료체계)이 붕괴하는 것과 같다”며 “지역 의료 공공성 역할을 분석해 이들의 절대적 존립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대형화…간호인력 ‘블랙홀’ 몇 년째 이어진 병원 저수가 정책과 3차병원 등 대형 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성향으로 인해 응급실조차 비어 있는 병원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같은 문제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간호사들의 인력 채용 정도에 따라 수가를 차등지급하는 정책 때문이다. 이 제도가 적용됨에 따라, 간호사 인력 수가 병상수 대비 가장 부족한 7등급이 적용되면 5%의 입원료가 감산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최하등급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7년 중순 보건복지부가 밝힌 결과에 따르면, 간호관리료 차등제 시행 병원 1613개 중 가장 낮은 7등급이 1144개인 80%를 차지해 적지 않은 문제로 부각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1병상 간호 인력은 0.21명이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의 1/5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에 더하여, 최근 대형 병원들의 몸집불리기 열풍으로 많은 간호 인력이 대형 병원으로 빠져나가면서 중소 병원의 인력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울러, 조만간 진행될 종합전문요양기관 평가를 앞두고 대형 종합병원에서 인력 확충에 나서 중소 병원의 인력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처음에는 간호사 인력 확보를 위한 간호학과 증설, 간호조무사 인력 인정 등의 대안이 제시됐다. 최근에는 해외 인력도 간호 인력으로 인정해 달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중이다. ■외국 간호 인력 대안되나 일본은 대형 병원 중 절반이 외국계 간호사를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밝혔다. 현재 일본에서는 인도네시아·필리핀과 함께 외국계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를 받아들이는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외국계 간호사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6개월의 일본어 수강 후 일본 내 병원에서 실무 연수를 받으며 3년 이내에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하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돼 있다. 외국인 간호사를 채용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인데, 만약 우리나라가 외국계 간호사를 받아들일 경우, 조선족 간호사를 채용해 언어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병협 관계자는 “조선족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혀 언어 장벽이 낮을 수 있음도 예고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및 외국인 대상 의료기관의 간호사 처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테면, 제주도 내 외국 의료기관에도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장 변화에 간호사들은 당황하는 분위기이다. 병협의 한 관계자는 “당장 간호학과 인원 몇몇을 더 충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방 중소 병원에 갈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인력은 적절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 간호계와 시각차를 드러냈다. 대한간호협회의 한 관계자는 “의료 서비스에서 서비스가 통해야 하는 부분이 결코 적지 않다”며 “매끄러운 대화가 되지 않으면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중소병원 공공의료 첨병 돼야” 그러나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의 첨병 역할을 통해 중소 병원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중소 병원이 공공성을 더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가 제 역할을 하고 경영난도 타개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건강연대의 관계자는 “지방 중소 병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수익성 진료에 집중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응급의료와 재활 서비스가 부족하고,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소아과나 산부인과 진찰을 위해 자동차로 2시간을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소 병원의 대다수는 비용대비 효과적인 진료 경쟁이 아닌, 서비스의 양이나 고가의 비급여 진료로 서로 불필요한 경쟁만 하면서 정작 공공의료기관 기능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도 “병원 경영자들이 영리법인 허용, 규제완화 등을 주장하며 돈벌이를 추구하다가도 어떤 경우에는 중소 병원 경영난을 들먹이며 정부의 육성과 보호를 요구하는데 이는 모순”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정부의 육성과 보호를 바라고 싶으면 우선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 공공 의료기관으로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김용익 교수도 “가격보다 높은 의료의 질을 선호하는 중환자는 대형병원을 찾고, 낮은 본인부담금을 선호하는 경증 환자는 의원급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중소 병원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300병상 이상의 중소 병원은 공공 병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병상수급 조절기금을 신설해 자본비용을 조달하는 등 지원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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