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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대란’ 특단의 대책 급하다

중소병원 중견 간호사 ‘공동화’… 대형병원 쏠림현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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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호 박성훈⁄ 2008.07.22 14:26:25

“A병원에서 환자들의 이름을 혼동해 엉뚱한 환자에게 수혈하여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B병원에서는 한 간호사가 중환자실에서 긴급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조치를 하는 일과 일반 병실에서 환자들의 병세를 체크하는 일을 함께 하는 일이 발생했다.” 매일 발생하는 환자들과 응급 상황으로 간호사들은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바쁘다. 일선 병원에서 최근 크고 작은 의료 실수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병원 일에 미숙한 신참 간호사들을 병동 일선에서 관리·감독할 중견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견 간호사들이 수도권의 대형 병원으로 옮기는 현상과 함께 중소 병원에서는 경력 간호사 모집 공고를 내도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따라서, 중소 병원에서는 고급 간호인력의 부족으로 매일같이 의료사고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중소 병원이 경력 간호사 부족 현상을 빚고 있는 이유는 근래 서울과 수도권에 소재한 대형 병원들이 병상을 대폭 증설하면서 간호사를 대거 채용해, 상대적으로 대우가 열악한 지방과 중소 병원의 간호사들이 대형 병원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CNB저널 73호-‘동네병원’ 공동화, 환자들만 죽을 맛). 게다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양병원이 최근 급속히 늘어난 것도 간호사 부족 사태를 부채질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기관 종사자 수가 4.3명 정도이다. 이는 의료선진국인 독일(1000명당 15명)이나 프랑스(19.3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로, 그만큼 의료 서비스가 국민들의 피부에 닿아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 능사 아니다 일각에서는 전국적으로 간호사가 수요에 비해 배출되는 수가 적어 이 같은 ‘간호대란’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각종 대학교와 보건전문대 등 의료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간호인력은 오히려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대 입학정원은 1997년부터 1만 명을 넘어서, 지금은 전국 132개교에 설치된 학과에서 1만1775명의 학생들이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입학정원은 작년에 비해 500명이 증가한 수치이며, 내년에도 970명이 증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입학정원이 증가했으니, 해마다 배출되는 간호사의 수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연간 배출되는 간호사는 1998년 7174명에서 2008년 현재 1만1333명으로 10년 동안 4158명(58%)이 증가했다. 이렇게 되면 2011년까지는 매년 1만1500여 명, 2012년에는 1만2000여 명, 2013년 이후에는 매년 1만3000여 명의 간호사가 배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이 급속히 증가하는 속도라면, 2015년에는 간호사 면허소지자가 33만4000명, 2020년에는 40만4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결국, 일선 병원의 간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호대학의 입학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중소 병원들은 증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간호대학 입학생 증원이 최선책이 아니다”라며 “매년 입학생을 증원하더라도 앞서 말한 근무환경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간호사 부족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병원 측 입장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병원협회 이송 정책위원장도 “간호사 부족 문제는 간호대 정원 확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중소병원 간호사, 임금·만족도 가장 낮아 인하대 윤진호 교수는 전국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에서 주최한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병원인력 충원 방안 모색 토론회’ 발제에서 “고령화와 국민소득의 증가, 병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 악화 등으로 병원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운영되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다른 산업과 비교해 보면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꼬집어 말했다. 특히, 보건의료 종사자의 주당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장시간 근로가 빈번하고, 주당 56시간 이상 근무하는 병원과 의원도 각각 10%와 39% 이상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야간이나 공휴일에 근무를 시켜 놓고 수당을 미지급하는 병의원도 빈번하다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윤 교수는 보건의료노조 자료를 인용해 “야간근무를 했음에도 그 수당을 미지급한 병원과 의원은 각각 18.8%, 44%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병원의 31.8%와 의원의 64.1%는 공휴일 근무수당을 미지급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민간 중소 병원의 퇴사율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회에서 병원인력 충원방안 연구 설문결과를 발표한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임상혁 소장은 한양대의료원 등 29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퇴사율을 비교해 본 결과, 민간 중소 병원의 퇴사율이 18.31%로 가장 높았으며, 사립대 병원이 5.25%, 지방 의료원 3.94%, 국립대 병원 1.77%, 특수목적 공공병원 1.08% 순이었다. 근무에 대한 만족도도 민간 중소 병원은 39.44%로 가장 낮았으며, 대한적십자사 44.76%, 사립대 병원 49.96%, 국립대 병원 52.45% 등 대형 병원과 중소 병원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민간 중소 병원과 지방 의료원 등의 근무만족도가 낮은 이유로는 상당수가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량 등을 꼽았다. ■ 간호협 “간호사 복지문제 해결해야” 간호사 입장에서 중소 병원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저임금과 자녀보육을 할 수 없는 3교대 형식의 야간근무로 요약할 수 있다. 임금인상과 탁아제도 확충 등이 간호사들이 요구하는 가장 시급한 대책이다. 중소 병원 간호사의 임금은 대형 병원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난다. 한 병원에서는 간호사 연봉이 1700만 원일 때에는 이직률이 80%에 달했지만, 2800만 원으로 인상했더니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가 없어졌다고 한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병원의 저임금을 인력 수급의 근본 문제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병원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익이 남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임금을 올리지 않아 인력을 충원하기 힘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방 병원과 중소 병원의 간호사 부족이 유난히 심한 현상도 급여가 적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지적한다. 또한, 여성이 대부분인 간호계에서 결혼한 후에 발생하는 출산 및 육아 문제는 가장 큰 퇴직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퇴직한 간호사 7만5000여 명 가운데 60%인 4만5000여 명이 20~30대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신경림 회장은 “최소한 결혼 후 대리육아 부담을 지고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동기 부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현재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이 퇴직하지 않도록 처우와 보육시설 등 간호사 복지에 대한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고 전했다. ■ 병협 “단순한 처우문제 아니다” 병원계에서는 수요에 비해 인력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과 낮은 의료수가, 간호등급제 등 제도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대한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의료인력은 일반 노동자와 다르게 면허가 필요하기 때문에 월급을 올려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없는 인력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수가를 인상해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작년까지 수가 인상률이 2~3%인데, 그 동안 임금인상률은 7~8%”라며 “임금인상분만 보전하려 해도 3~4%의 수가 인상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성 총장은 또 “지난 10년 간 시민단체와 노조는 수가 억제 면에서 승리했다”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현재 병원 상황을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병원계는 “현재 병원계 형편이 어려워 근무요건을 크게 개선할 수 없지만, 간호인력을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간호계는 “지방 중소 병원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요건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송 정책위원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간호사 부족 문제를 지적해 왔는데, 실제로 어떤 노력도 한 것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특히 ‘중소 병원의 처우가 낮아 간호인력 수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간호계 주장에 대해 “단순히 처우 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 퇴직 간호사 돌아오도록 지원해야 결국,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지 않게 하고, 유휴 간호사를 간호 현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안이 간호사 부족 사태를 해결하는 최고의 처방이라는 의견이다. 실로, 임상 경험이 풍부한 퇴직 간호인력들이 현장으로 돌아오면 의료 서비스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된다. 따라서, 재취업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고, 탄력근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휴 간호사들을 현장에 재취업시켜 간호사 부족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임금 및 보육시설 문제를 비롯해 퇴직 간호사들이 돌아오도록 배려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재정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간호협회가 내놓은 대안이다. 특히, 탄력적 근무제도를 활성화해 1일 8시간이 아니라 4시간 혹은 6시간, 그리고 2일 또는 3일만 근무해도 정규직처럼 일정수준의 임금 보장이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년에 1만2000명에 달하는 신규 간호사가 배출되는 현실에서, 대학 입학정원을 확대하기보다는 정부가 정확한 수요추계 연구를 통해 간호대학 증원규모를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경림 회장은 “쉬고 있는 간호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파트타임 제도를 도입하고, 유휴 간호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재교육 시스템을 갖춰 재취업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간호협회 박광옥 부회장은 “유휴 간호사들은 전산화된 현장 등 바뀐 환경에 부담을 갖기 때문에 전문적 재교육 센터가 필요하다”며 “병원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에 지원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도 “의사의 경우 대도시보다 중소 도시로 갈수록 임금이 비싸지만, 간호인력의 임금이나 처우 개선은 그렇지 못하다”며 ?보건의료인력의 적정한 균등 임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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