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 뒤에 찾아오는 손님은 가마솥 더위다. 우리 조상은 무더위를 잊기 위해 삼복이라는 기간을 이용, 몸 보양을 해왔다. 복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진(秦)·한(漢) 이래 매우 숭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상고하면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로 미루어 삼복은 중국에서 유래된 속절로 추측된다. 복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다. 옛날 궁중에서는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과(氷菓)를 주고, 궁 안에 있는 장빙고에서 얼음을 나눠주었다 한다. 민간에서는 복날 더위를 막고 보신을 하기 위해 계삼탕(鷄蔘湯)과 구탕(狗湯:보신탕)을 먹는다. 또한, 금이 화에 굴하는 것을 흉하다 하여 복날을 흉일이라고 믿고, 씨앗 뿌리기, 여행, 혼인, 병의 치료 등을 삼갔다. 복날이면 보신탕문화가 찬반논쟁의 중심에 선다. 남쪽에서는 찬반논쟁이 벌어지지만, 북쪽에서는 이를 외화벌이에 이용하는 하나의 음식문화로 성장했다. 평양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 하여 각종 메뉴를 만들어 뷔페식으로 판매하고, 나아가 외국 손님들이 주로 찾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북쪽에서는 단고기 요리만 해도 4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개고기 도축에 대해 정부에서 정식 인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으며, 이를 요리하는 음식점도 일반음식점으로 상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개 식용을 찬성하는 쪽이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부 보신탕 찬성론자들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역사기록을 보면 선사시대에도 개고기를 먹었던 기록이 있다. 한국의 개 식용에 관한 최초의 외국의 소개는 1847년 프랑스 선교사 달렌이 쓴 ‘조선 교회사’ 첫머리에 “조선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다”라고 쓰여 있어 예로부터 조상들은 개고기를 즐겨왔던 것으로 보인다. 삼복더위에 영양가가 풍부한 개장을 먹고 더위를 이기려 했던 선인들의 슬기를 느껴볼 수 있다. 개고기는 중국 광동성에서도 즐겨 광동성 개고기 요리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황육’이라 하여 개의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요리가 있다. 중국인들에게 개는 단지 고단백질 음식을 뿐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예부터 즐겨왔다. 일본인은 쇠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앞줄에 놓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한국·중국·일본의 개 식용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개고기는 성(性)이 온(溫)하고 미(味)는 산(酸)하고 무독(無毒)하다. 오장(五臟)을 편안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여 기력을 증진시킨다. 또한, 양기를 도와서 양물(陽物)을 강하게 한다”고 적혀있다. 이처럼 보신탕은 예로부터 혈액순환을 돕고 양기를 높이는 식품이다. 지방질을 구성하는 지방구조의 크기도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에 비해 6분의 1정도여서 과식해도 탈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름에는 고단백식을 권장하고 있다. 땀을 많이 흘려 피로하고 지친 근육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면을 유도하며 피로물질을 배출하는데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신탕을 놓고 외국의 눈을 의식, 찬반양론을 벌이기보다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도 위생적인 보신탕문화의 정착을 위해 찬반논쟁을 종식시킬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