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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 100년, ‘아리수’로 거듭나다

정치권 논란 속에 ‘민간위탁’ 없던 일로…국민불신·경영난맥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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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2호 박성훈⁄ 2008.09.02 17:04:47

정부와 한나라당이 상수도 관리를 민간에 위탁하는 내용의 수도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다가 반대에 부딪쳐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8월 24일 “환경부가 오는 9월 중 상수도 구조조정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하고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좀더 좋은 상수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민간에 위탁 경영하는 아이디어가 제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상수도 민간위탁의 구상은, 수도산업의 소유는 현행대로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가 하되, 운영은 민간에 맡겨 현재 기초단체 단위에서 하는 수돗물 관리를 광역화하는 계획이었다. 당시 당정은 이 같은 내용을 논의하고, 향후 가칭 ‘상하수도 서비스 개선과 경쟁력 강화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상수도 민간위탁안이 야당의 반발과 함께 국민적 반대에 부딪치면서, 한나라당도 정부의 ‘수돗물 선진화’ 방안을 지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8월 26일 상수도 민간위탁 내용을 담은 ‘물산업 경쟁력 강화 법안’을 가지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를 방문했음에도 문전박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장관은 법의 취지가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위탁’임을 설명했으나,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기·가스·수도 등의 민영화는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민간위탁도 다시 조정, 재검토해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이 장관이 30분을 기다려 만난 홍 원내대표는 “말도 꺼내지 말라”며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환경부가 지난 5월 이후 수차례 입법예고를 연기하며 법안내용을 수정해 온 ‘상수도사업 구조개편’은 이로써 일단 물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수도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치적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우리나라에 수도 시설이 처음 들어온 지 100년이 되는 시점을 맞았다. 올해 9월 1일은 수돗물 통수(通水)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 곳곳에서 상수도 100주년 기념행사 서울시에서는 수돗물 통수 100주년 기념식과 공연, 시민들이 참여하는 체험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쳤다. 9월 1일과 3일 사이에는 서울시와 SBS의 공동 주최로 ‘국제 물 정책 및 상수도 기술 심포지엄’이 열려 각 나라의 수도 운영방식과 기술을 서로 비교하기도 했다. 또한, 환경부에서는 11월에 수돗물 기념회 및 사진 전시회를 계획하고 ‘한국 수도 100년사’를 발간해 정부 주요기관·도서관 및 지자체에 무상으로 보급하기로 하는 등 기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지역 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동구 송현동 송현배수지가 준공된 지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03년에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된 일종의 수돗물 공급 관리실인 제수변실(制水弁室)이 있는 송현배수지 주변에 인천의 상수도 역사를 상징하는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10월까지 설치된다. 1908∼2008년 상수도 설치 과정과 변천사를 보여주는 ‘인천 상수도 100년사’를 책과 CD로 발간하고 각종 역사적 자료를 타임 캡슐에 묻을 계획이다. 현재 전국의 수도 보급률은 전체인구의 91.3%로, 전국에서 4,527만 명이 수돗물 공급혜택을 받고 있어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선진 고도정수시설 도입 등 수돗물의 질적인 성장도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여 년 전에 비해 무려 45년이나 늘어난 배경도, 의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상수도 보급에 따른 위생환경의 비약적 개선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인간의 수명은 20세기에 들어와 약 35년이 증가되었으며, 이 중 30년 정도가 깨끗한 물 공급 등 개인위생의 발전 덕분으로 해석되고 있다. ■ 일제 위해 존재했던 수도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 흔적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토기 상수도관이다. 이로 볼 때 상수도 설치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근대식 수도는 1903년 12월 9일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받고 이를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1908년, 현재의 서울 성수동에 하루 급수능력 1만2,500톤(현재기준 약 3만5000명 공급능력)의 뚝도정수장을 완공하여 당시 주민 12만5000여명에게 급수를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상수도 역사의 첫 출발점이 됐다. 첫 통수 이래 편리함과 위생 등 상수도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수돗물의 수요는 나날이 증가했다. 그러나 수도 도입 초창기에는 독자적인 기술이 없어 외국에서 자재와 기술을 도입해 정수시설을 설립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서울 지역의 수돗물은 일제 당시에 노량진·구의정수장 등이 신설돼 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편의를 도모하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90%가 상수도 혜택을 받은 반면, 한국인은 전체의 29%만이 상수도를 사용했다는 1927년의 사료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양’에서 ‘질’로 광복 이후 6·25전쟁 등으로 타격을 입은 수돗물 생산시설이 발전의 전기를 맞은 시기는 1960, 70년대. 경제발전과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급수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증가한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국내 여기저기서 상수도 시설 확장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1980년대 초 서울의 상수도 시설용량은 일일 307만 톤에 달했고 급수보급률은 90%를 넘어 빠르게 안정됐다. 환경오염 문제가 떠오르면서 국민의 관심이 수돗물의 양이 아닌 질로 돌아선 것도 이즈음이다. 둔화된 인구증가와 꾸준한 생산설비 확장으로 급수수요는 안정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당시 급수보급률은 90%를 넘어선 상태였다. 상수원의 수질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점차 높아져, 상수도 역시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89년에 서울시는 상수도사업본부를 설치해 양적·질적 성장을 통한 수돗물의 고품질화와 함께 경영효율화를 시도한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유수율 향상과 조직 슬림화 등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여 지난 2001년부터 7년 간 수도요금을 동결시키는 등 경영합리화와 수질관리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4년에는 서울의 수돗물에다 ‘아리수’란 브랜드을 처음 도입해 마케팅에 나섰다. ‘아리수’는 크다는 우리말 ‘아리’와 한자 ‘수(水)’를 결합한 것으로 고구려 시대에 한강을 부르던 이름이다.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선 서울 수돗물 ‘아리수’의 품질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145개 항목 권장기준을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실시간 수질자동감시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 서울시는 2013년까지 서울시의 6개 정수센터 모두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하고, ‘아리수’의 국내 판매와 해외 수출을 통해 ‘아리수’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계획이다. ■ 국민불신 해소와 물값 안정이 관건 그러나 수돗물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의 불신 해소와 경영상의 효율성 제고는 민간위탁이든 아니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수돗물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수질검사 항목을 통과하는 등 안전성이 확인됐다는 서울시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감은 아직까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CBS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올해 7월 초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 이상(55.6%)이 ‘수돗물을 아직까지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아리수 구매 의향에 대해서도 ‘사 먹을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21.3%에 그쳤다. 수돗물은 직접 마셔도 안전한 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에 대해 바로 마실 경우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 수돗물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 시민의 수돗물 음용률은 2004년 이후 늘어가는 추세이나, 40%를 갓 넘는 수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 40%의 수치도 물을 끓여 마신 경우를 포함한 수치이고, 직접음용률은 한자리수라는 것이 환경연합 측의 설명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백명수 국장은 “국민들 중에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이처럼 국민이 수돗물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게 된 원인은 정부가 상수원 수질 오염 사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부분에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영세한 지방 상수도의 경우 청원경찰이 소독제를 넣거나 수질기록을 조작하기까지 한다”며 “어떤 형태로든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경석 경북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전문화로 수돗물의 수질을 개선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수돗물 값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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