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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일러바치는 사회

신고포상 종류 57개 ‘파파라치 공화국’…한해 80억 원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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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3,84호 박성훈⁄ 2008.09.10 09:39:10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은 업소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일명 ‘쇠파라치’ 제도를 시행한다. 정부가 제시한 신고포상금은 원산지 허위표시가 최고 200만 원, 미표시는 5만 원이다. 정부가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용하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쇠고기 원산지를 단속할 공무원 인력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원산지 표시 대상 음식점은 총 57만 곳에 달하는 반면 상시 단속인원은 고작 65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상, ‘쇠파라치’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원산지 허위표시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부가 자인한 셈이다. 또, 2004년 폐지됐던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신고포상금 제도)도 이르면 다음해부터 부활할 전망이다. ‘카파라치’는 함정 단속 및 전문 신고꾼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이유로 폐지됐던 제도인데, 이번에는 신고 주체를 일반인에서 시민단체로 바꿔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 신고포상금, 기관도 ‘각양각색’ 종류도 ‘무궁무진’ 우리나라에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여러 기관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신고포상금제를 주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은 농림수산식품부와 국토해양부·환경부 등 정부부처와 국세청·문화재청·국가정보원·관세청·식품의약품안전청·금융감독원·관할경찰서 등 행정기관이다. 또한, 각급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환경과·청소과·관할 수도사업소·한국석유품질검사소 등 공공기관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대한주류공업협회·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등의 이익단체와 롯데마트·이마트·LG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같은 기업까지도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쯤 되면 ‘파파라치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신고포상금 제도의 종류도 기관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006년 기준으로 25개 정부부처에서 57개의 신고포상금제를 운영 중이며, 이와 관련된 예산 집행액은 지난 한 해 80억985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2년 말 기준 26건, 40억4040만 원에 비해 건수로는 2.2배, 예산 집행액으로도 두 배 정도 증가한 규모다. 신고포상금제가 범람하면서 불법·부정행위를 신고해 포상금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 이른바 ‘파파라치’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국세청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이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사업자를 신고할 경우 건당 5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세파라치’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과거 산업자원부에서는 ‘짝퉁’ 제품 신고자에게 과징금의 10%를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연내에 시행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 불공정거래 행위 신고포상금 지급 최고한도액을 지난해 5월부터 기존의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각종 신고포상금 제도로 생긴 신조어만 해도 ‘봉파라치(일회용 비닐 봉투 무상제공)’, ‘쓰파라치(쓰레기 무단·불법 투기)’, ‘세파라치(탈세 및 현금영수증 미발급)’, ‘담파라치(담배꽁초 투기)’, ‘성파라치(성매매 범죄)’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외에도 △신파라치(신문 불공정 판매) △하파라치(불법하도급) △술파라치(청소년 술 판매) △토파라치(토지이용의무 위반) △노파라치(노래방 불법 영업) △선파라치(선거법 위반) △쌀파라치(쌀 원산지 및 품종 허위기재) △축파라치(부정 축산물) △농파라치(농지 불법전용) △식파라치(식품위생법 위반) △의파라치(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부정청구) △주파라치(불공정 주식거래) △지파라치(지하철역내 불법영업) △자파라치(자동판매기의 불법이나 불량) △팜파라치(약사들의 임의조제 등 불법행위) △어파라치(수산물 원산지 미표시) 등이 있다. ■ 학원 수강생 쇄도… 인터넷도 파파라치 정보 범람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사업도 따라다니게 마련인지라, 최근에는 신고포상금을 위한 전문신고요원(학원가에서는 파파라치를 이런 식으로 부른다)을 양성하는 소위 ‘파파라치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학원가에는 최근 쇠파라치의 시행을 앞두고 수강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지역에서 쇠파라치를 양성하는 사설학원들이 대전을 비롯한 다른 지방까지도 원정교육을 실시하는 등 쇠파라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A 학원 관계자는 “쇠파라치는 정부에서 공인한 제도이기 때문에 수강신청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거리가 멀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출장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파파라치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인터넷과 원정교육 등을 통해 쇠파라치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있는 파파라치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한 수강생은 “평소 쇠파라치에 관심이 있어 학원에 오게 됐다”며 “학원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얼마든지 쇠파라치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쇠파라치 학원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들 학원은 쇠고기 원산지표시제 포상내용과 성공사례 등을 소개하며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현행 신고포상 제도를 분석한 교재 등을 사용하는 3일 교육에 20~30만 원 수강료를 내야 하지만, 신청자 수가 늘어 지역 출장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 파파라치 만연, 불신 조장 역기능도 신고포상금 제도는 각종 규제·감시 대상 분야가 광범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가운데 자발적인 시민참여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시민의 감시를 통해 불법행위를 줄이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등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파파라치가 사회 각 분야에 존재하는 위법자를 감시하는 일종의 ‘시민 모니터 요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파라치(paparazzi)’라는 단어는 어원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파파라치’는 이탈리아어로 ‘사람을 귀찮게 구는 벌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유명인들의 스캔들을 노리고 몰래 그들의 사생활을 찍는 사진사를 벌레에 비유한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몰래제보꾼’이라고 한다. 결정적으로, 1997년 8월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파리 센 강변 터널 자동차 사고는 극성을 부리고 있던 파파라치의 존재를 수면 위로 띄워 올렸다. 이러한 파파라치 제도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역기능을 가져온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파파라치들은 사회를 감시한다는 취지의 시민 모니터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포상금을 노리고 타인의 위법행위를 신고하는 ‘전문 신고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포상금을 내세워 본연의 역할을 국민에게 떠넘김으로써 전문적인 ‘신고꾼’ 양산, 인권침해, 사회불신 조장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이처럼 파파라치의 기승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자, 해양수산부는 작년 7월 1일부터 수산물 판매자가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사례를 적발·신고하는 어파라치에게 지급하는 포상금 지급기준을 ‘신고한 원산지 미표시 수산물의 총 가격이 실거래가액 기준 30만 원 이상인 경우’로 강화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식파라치에게 제한적으로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 ‘쇠파라치’ ‘카파라치’ 도입 실효성도 미지수 신고포상금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쇠파라치나 카파라치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정부가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쇠파라치의 경우 서민들이 자주 가는 100㎡ 미만 소규모 음식점은 포상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데다, 전문가도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쇠고기 원산지를 일반인의 눈으로 가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제도에서 ‘미표시’가 아닌 ‘허위표시’에 중점을 두다 보니, 아예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기보다는 차라리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고 단속을 최대한 피해 가려는 ‘꼼수’도 있을 수 있다. 카파라치 역시 신고 주체를 일반인에서 시민단체로 바꾼다 해서 부작용이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 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며 혈세를 전문 신고꾼들에게 퍼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굳이 시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민 모두를 감시대상이자 감시자로 만들기 전에, 각종 법규 위반에 대한 계도 및 단속 시스템을 확충하고 위법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미리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노력은 게을리한 채 각종 ‘~파라치’에 의지해 정부 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는 것은 직무유기형 유인정책이랄 수밖에 없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이에 대해 “정부가 국민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면서까지 신고포상금제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국민의 불신감만 증폭시키고 실효성도 없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전문 신고포상꾼에게 국민의 아까운 혈세를 성과도 없이 쏟아 부으며, 분열된 국론에 국민 상호간의 불신까지 조장하는 정부가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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