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병역 면제판정 받는다면 뭐든지”

병역기피 관련 인터넷 카페 성행, 허술한 병역법도 문제

  •  

cnbnews 제139호 박성훈⁄ 2009.10.13 16:30:43

최근 어깨 탈구 진단을 받아 수술하는 술수를 써 병역을 면제받거나 ‘환자 바꿔치기’와 같은 신종 수법으로 병역을 피하려는 이들이 줄줄이 경찰에 붙잡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찰은 10월 5일, 어깨 탈구 수술 병역기피 의심자 178명의 명단을 추가로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청은 “수도권의 한 병원이 병역 감면용 수술을 자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서울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에 수사를 맡겼고, 이곳 환자들의 병역자료를 병무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병원은 서울 강동구 소재 K병원으로 알려졌으며, 수사 대상 178명은 당초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6년 이후 어깨 수술을 받고 면제나 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광역수사대는 9월 24일에는 브로커 윤모(31·구속) 씨와 접촉했던 병역 면제자와 감면자들을 추가로 소환하고, 브로커 차모(31) 씨가 입영 연기 희망자들로부터 돈을 송금받은 은행 18곳을 압수수색했다. 병무청의 ‘2004~2008 병역 면탈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 면탈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람은 모두 530명에 이르렀다. 이들의 직종도 다양하다. 야구 선수와 축구 선수를 포함한 운동선수가 200명 가량이었고, 유학생은 111명, 연예인은 15명, 의사는 4명, 고위 공직자의 자녀는 2명이었다. 이들은 신장 질환을 앓는 것처럼 꾸미거나, 재학증명서를 위조하거나, 산업기능요원 부실 편입이나 부실 복무, 고혈압 조작 등의 병역 기피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에, 군 입대를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인터넷 카페가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어 병역 기피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병역법도 여러 면에서 허점이 발견돼 병역을 피할 만한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몹쓸 ‘경험담’ 오가는 카페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역 기피 조장 사이트는 9월 말까지 115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발견된 수십 개의 비공개 카페에는 100명 안팎의 회원이 활동하면서 어떻게 하면 병역에서 빠질 수 있는지를 골몰하고 있다. 개중에는 가입자가 무려 7만 명에 이르는 대형 카페도 있다. 병무청이 병역 비리의 소지가 있는지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병역 기피 조장 사이트들에서는 병역등급 판정을 낮추는 문제와 입영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주요 논의거리이다. 이 중에는 생계가 곤란해 순수한 목적으로 병역 연기를 고민하는 청년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쁜 시력이나 허리 디스크·다한증 등 개개인이 가진 병력을 질문하면서 어떻게 하면 진단서나 신체검사를 유리하게 받을 수 있는지 질문과 훈수가 오가기도 한다. ‘자격증 시험이 가장 쉬운 연기법이니 시험부터 등록하라’는 조언(?)에서부터, 상담을 원하는 글에 댓글을 달아 개인 연락처를 남기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방문해 정보를 얻을 것을 독려하는 이들도 있다. 입영 연기 5년 간 증가 추세 이 같은 사정은 입영 연기자가 최근 5년 간 꾸준히 증가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학교진학·질병·자격시험 등의 사유를 들어 입대를 미룬 병역 대상자는 2004년 4만3840명에서 2005년 4만4372명, 2006년 4만7479명, 2007년 5만28명, 2008년 5만706명 등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질병을 사유로 한 입영 연기는 2004년 4956명에서 2008년 9376명으로 5년 새 2배 가량 훌쩍 뛰었다. 물론, 입영 연기는 병역을 면제받거나 등급 판정을 낮추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병역 비리가 일어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병역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210명의 기피 의심자가 위조된 학원 재원증명서 등을 통해 입영 날짜를 미룬 사례를 발견했다. 구속된 브로커 윤모 씨와 차모 씨는 각각 ‘국가자격증·공무원 시험 신청 대행 사이트’를 운영하며 이들의 입영을 연기해주고 돈을 받았다. 경찰은 “이렇게 일단 병역을 미룬 뒤 다른 방법을 동원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등급 판정을 낮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입영 연기가 재검을 받기 위한 ‘시간 벌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현역 판정을 받은 입영 대상자 중 입영 연기 기간이나 이후에 질병을 사유로 보충역으로 처분 변경된 사례는 2004년 2006건, 2006년 2282건, 2008년 2626건으로 계속 늘었다. 면제로 처분 변경된 사람도 최근 5년 간 3372명, 연평균 67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우 의원은 “최근 발생한 병역 비리에 입영기일연기제도가 나타난 만큼 입영연기제도의 허점을 보완해 악용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곳곳에 구멍 뚫린 병역법 허술한 병역법도 오히려 병역 비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병역 관련 법규를 개정하거나 보완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병역의 최대 기피 수단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는 어깨 탈골은 수술을 한 차례라도 받은 기록만 있으면 추후 완치돼도 병역 면제나 보충역 판정을 받도록 돼 있다. 징병검사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현행 병역법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제189조 ‘견갑관절의 불안정성’ 조항에는 어깨 탈골 수술을 하면 공익근무요원인 4급에서 병역 면제인 5급(제2국민역)으로 하향 판정을 받게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완치가 돼도 수술한 전력만으로 현역(1~3급) 판정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브로커들은 이 같은 맹점을 노려 정상인에게 일부러 어깨 탈골 수술을 하도록 해 손쉽게 4~5급 판정을 받아내고 있다. 이게 현행법으로는 이상이 없는 것이다. 비지정병원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하도록 한 ‘특례조항’에서도 병역 비리를 부추기고 있다. 병무청은 1992년에 비지정병원에서도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는 특례조항을 신설했다. 수술과 1개월 이상 입원, 6개월 이상 통근치료의 경우에는 병사용 진단서를 내게 된다. 비지정병원에 대한 사후 관리 감독 없이 끊임없이 병사용 진단서가 남발돼 문제를 만들고 있다. 2006부터 올해까지 4년간 기록된 병무청의 ‘견갑관절 질환 병사용 진단서’에 따르면, 한 비지정병원은 병사용 진단서를 210명에게 발급해 전체 10개 병원 중 2위를 차지했다. 병무청이 진료기록부를 제대로 조회하는 권한을 갖지 못한 현실도 병역비리와 관련한 사후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5년 간 병역 면제자 질환 현황에는 불안정성 대관절이 2753명이었지만, 병무청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기록부를 조회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공단 측이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조회를 거부하는 탓이다. 면제받고도 입대 지원한 청년도 있는데…

이같이 어떤 수단과 수법을 동원해서라도 병역을 피하려는 청년이 있는데 반해, 병역 면제 판정을 받고도 현역으로 자원 입대하는 사례들은 병역 기피자들을 더욱 부끄럽게 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영우(한나라당) 의원은 병무청이 제출한 최근 5년 간 군복무 희망자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5년부터 지난 8월 말까지 징병검사에서 병역 면제 또는 보충역 판정을 받고도 재신검을 한 사람은 6396명이었다. 재심 신청자 중 20명은 보충역(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고, 3089명은 자비를 들여 질병을 치료한 뒤 다시 입영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군 면제자와 보충역 판정자 가운데 현역병 자원 입대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병역 기피를 위한 어깨 수술과 환자 바꿔치기 같은 신종 병역 비리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현상과 대조적이다. 김영우 의원은 “사회 전반에 병역 기피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현역으로 군 복무하기 위해 질병을 치료하거나 학력 등의 조건을 갖추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며 “국방의 의무는 기피 대상이 아닌 당연히 거쳐야 할 신성한 과정이라는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