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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선]자선냄비와 화이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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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7호 편집팀⁄ 2009.12.07 14:09:45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어느덧 겨울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거리로 나온 젊은 연인들은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배경 삼아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고, 분주해진 쇼핑객들도 종소리를 들으며 하얀 겨울의 낭만을 한껏 느낀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가진 시종식을 기점으로 구세군 자선냄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자선냄비의 상징인 빨간 외투를 두르고 금색 종을 손에 든 구세군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파와 인파를 뚫고 거리에 나와 청명한 종소리를 울려댄다. 자선냄비의 역사 구세군 자선냄비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는데, 그 시작은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과 같이 추웠던 겨울의 어느 날, 배 한 척이 파선되어 수많은 난민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방치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당시 구세군 사관이던 조셉 맥피(Joseph Mcfee) 정위가 영국 리버풀의 부둣가에서 보았던 자선을 위한 ‘심슨의 솥’을 기억해내, 다음날부터 부둣가에 솥을 걸어 모금된 돈으로 난민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끓여 먹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1865년에 ‘그리스도교 전도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어 1878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한 구세군은 1908년 한국에 들어와 교육사업·사회사업 등에 힘써왔고, 국내 자선냄비 사업은 192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물자가 부족했던 터라 지금과 같은 빨간 냄비가 아닌 가마솥에 성금을 모았었다고 한다. 그 후로 구세군은 우리 민족의 질곡 많은 역사와 고락을 함께 해왔다. 구한말에는 무료급식·의료혜택 등의 구제운동, 금주·금연운동과 같은 사회운동, ‘구세공보’ 발간 등을 통한 문화사업에도 앞장섰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때에는 다른 나라 구세군 단체들과 공조하여 전쟁고아와 극빈자 구제에 앞장서며, 절망으로 낙심한 국민들을 위로하곤 했었다. 아니, 지친 국민들에게 진정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구세군 자체가 아니라, 함께 참여한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을 것이다. 필자도 구세군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인연으로 서울 명동과 홍대 등지에서 자선냄비 활동에 종종 나가보고 있다. 자선냄비 활동을 하는 날이면 옷을 두툼히 껴입고, 장갑과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도 하고, 그 위에 빨간 구세군 외투까지 덧입어보지만, 그리 한다고 해서 동장군의 기세가 누그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을 더 춥게 만드는 것은 동장군의 기세보다도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일 것이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행인들의 관심을 유도해보지만, 낮아진 수은주가 행인들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였는지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나가는 할머니가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지폐를 냄비에 밀어 넣고, 엄마 손에 이끌린 어린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냄비에 동전을 넣는다. 만 원짜리 지폐를 내미는 손이건, 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을 내미는 손이건, 액수에 상관없이 모두가 반갑고 감사하다. 정성이 담긴 손길이 간간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추위는 잊혀지고, 종소리도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젊음의 거리 명동에서나 어디에서도 자선냄비의 종소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젊은이들보다는 주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엄마 손에 이끌린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간절히 기대한다. 소복히 쌓인 눈 위를 걸으며 연인과 또는 가족과 함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낭만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거리의 나무와 돌담들이 새하얗게 변하는 그런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좋지만, 우리의 마음이 순백의 눈처럼 순수하고 정결해지는 마음속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어본다. “우리 모두 손을 내밀자” 크리스마스는 본래 2000년 전에 태어난 예수를 기념하면서 그 사랑을 기리고 함께 나누는 날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서 연말의 거리로 나오는 것이 구세군의 자선냄비다. 그러나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되짚어보자면,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젊은 연인들로 1년 중 모텔이 가장 붐비는 때가 바로 이때이고, 유흥과 소비문화가 가장 왕성해지는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사랑과 나눔의 상징이던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어느덧 본래 의미가 퇴색한 채, 겨울의 전령(傳令)으로 인식되는 세태가 되었다. 필자가 처음 자선냄비 봉사활동에 참여했을 때는 무심히 지나는 발길들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자선냄비의 종소리에 귀기울여주는 작은 손길들이 끊이지 않기에 이번 겨울에도 그 종소리는 방방곡곡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성금은 저소득층 구호사업과 심장병 환자 의료지원, 복지시설 구호 및 지원 등에 사용되고, 그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자선냄비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구세군이 1969년부터 서울 상암동 지역에서 운영해오던 아동복지시설 ‘후생원’의 낡은 한옥 건물이 월드컵 경기장 주변 개발로 비교적 고가에 매입되면서 충정로 지역에 새 회관을 짓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선냄비 성금으로 건물을 짓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 여파로 재작년에는 한국 구세군 역사상 처음으로 그해 모금 목표액 달성에 실패하기도 했다. 사실은 후생원의 어린아이들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이사에 큰 난항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견뎌내야 했음에도….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한겨울이 되어서야 등장하지만, 구세군의 활동이 겨울에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희망나누미’라는 중고 옷가게를 운영하며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고 있고, ‘후생원’ 등의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여 어린 이웃들에게도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 밖에도 북한과 해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작지만 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천한 작은 섬김과 사랑이 지난 101년 동안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삶의 동기를 부여해왔다. 이번 겨울에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는 어린 고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과,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고목나무 껍질 같은 손을 잡아드리자. 닫혔던 우리 가슴이 빛으로 열리고, 하얀 백합꽃 같은 눈송이들이 가슴 한가운데 소복하게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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