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편집국에선 하루 종일 케이블 뉴스 채널을 켜놓는다. 그러니 똑같은 광고를 하루 종일 되풀이해 보게 된다. 광고 중에는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표현은 못 하겠고…’라며 너스레를 떠는 광고도 있고, ‘가족처럼 모시겠다’ ‘당신을 사랑한다’며 정색을 하는 광고도 있다. 너스레 떠는 광고는 그냥 피식 웃게 되지만, 충성과 사랑을 맹세하는 광고가 나오면 화가 치솟는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모신다’는 말을 한 번 생각해보자. TV를 통해 온 국민에게 광고하는, 즉 대량생산 체제로 움직이는 기업이 고객을 ‘가족처럼 모신다’는 게 가당한 소리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해타산을 초월하는 게 가족이다. 가족은 심지어 범죄도 초월한다. 범죄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불고지죄’라는 걸 적용받는다지만, 가족 중에는 중죄인이 있어도 불고지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단다. 그런 게 가족이다. 그런데도 저 기업은 나를 가족처럼 모시겠다고? 정말? 가족처럼 모신다면 이해타산을 초월해야 하는데, 그럼 저 기업은 소비자를 너무 위한 나머지 회사는 손해가 나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광고에 잘 나오는 또 하나의 문구로 ‘사랑한다’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고? 왜? 사랑에 빠진 남자는 홀딱 반한 여자에게 정찰제로 선물을 하나? 이익이 안 남으면 물건을 주지 않나?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역시 거짓말이다. 이렇게 거짓말 멘트들이 종횡무진하는 한국 광고에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 역겹고 피곤하다. 나는 물건을 만들고 파는 제조업체·유통업체로부터 가족처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 바라는 것은 그저 좋은 물건 만들고, 좋은 값에 팔고, 소비자가 원할 때 제때 반품해주고, 애프터서비스 잘 해주면 된다. 물건 하나를 사는데 제조업체 직원이나 판매사원으로부터 “제가 당신의 가족입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상대방이 나를 가족으로 대하면 나도 그를 가족으로 대해야 하는데, 매장에서 만난 낯선 젊은이를 가족으로 두기는 겁난다. 그저 두 나라 사이의 문화 차이일 수도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광고를 한 번 비교해 보자. 미국에서는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중간광고’를 하니까) 프로그램 흐름을 끊어 진득하니 TV를 보기 힘들다. 그러나 광고 내용 자체는 역겹지 않다. 대부분의 광고가 그저 웃기는 내용이라, 피식 웃고 지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TV를 봤지만, 광고 모델이 뜬금없이 나와 “너는 내 가족”이라거나 “너는 내 사랑”이라고 하는 경우는 정말 본 적이 없다. ‘더 큰 USA를 만들겠다’고 건방을 떠는 기업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TV만 켜면 사랑한다고, 가족이라고 우겨대고, 기업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난리들이니, 낯간지러워 죽겠다. 제발 뻥 좀 그만 치자. 그리고 이런 거짓 광고에 그만 좀 속자. ‘가족처럼 모시겠다’고 몇 분마다 한 번씩 대국민 약속을 반복한 상조업체는 고객 돈 수백억 원을 빼돌렸다지 않은가? 이런 걸 보면서도 기업이 국민을 사랑한다면 기분이 흐뭇해지는가? 한국에는 광고 심의를 한다는 위원회가 많다. 그래서 광고 심의를 하시는 분들에게 부탁을 드린다. 심각하고 거창한 말을 하는 광고 좀 못 하게 막아 달라고. 그냥 피식 웃게 만드는 광고만 허가해 달라고.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