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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다니는 한국인의 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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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9호 최영태⁄ 2010.05.10 16:20:08

최영태 편집국장 한국처럼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 나는 나라도 없다. 이유는 두 가지란다. 하나는 값싼 부품 탓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뛰어다니기 때문이란다. 에스컬레이터를 반으로 나눠, 절반에는 사람들이 멈춰 서 있고, 왼쪽 절반으로는 뛰어다니는 모습은 한국에만 있다. 외국에선 이런 모습이 없다. 한쪽으로 사람들이 뛰어다니니, 한국의 에스컬레이터는 절반에만 큰 하중을 받고 그래서 쉽게 고장난단다. 궁금한 것은 이렇게 에스컬레이터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가고, 닫히는 전철 문 사이에 구두를 밀어넣어 타고야 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아낀 시간을 뭐에 쓰느냐고. 그랬더니 “그냥 기다리기 싫어서”라며, 집에 가면 TV를 본단다. 이런 게 과연 시간을 아끼는 것일까? 예전에는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면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시간 계산도 못 하는 못난 사람’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5분만 일찍 나왔다면 출근 시간에,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 뛰지도 않을 텐데, 그걸 못 하니 그저 추해 보인다. 시간은 무섭다. 시간은 모든 걸 변화·파괴시킨다. 억만장자건 거지건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같다. 그래서 누구나 시간을 아껴 쓰려 한다. 그러나 그저 뛴다고 시간이 아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시간 활용의 요체가 ‘몰입’에 있다고 진단한다. 몰입하면 5분이 몇 시간처럼 길어지기도 하고, 열중하다 보면 ‘어느덧 몇 시간이 흘러간’ 경험을 하게 된다. ‘몰입의 경영’이란 책을 쓴 경영학자 미하이 칙센미하이는 ‘몰입 경험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과 자아를 망각하지만, 그 후에는 자부심과 실력이 높아진다’고 했다. 몰입해야 실력이 좋아지지, 서둔다고 실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간을 이기는 데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철학자 김용석은 저서 ‘깊이와 넓이 4막16장’에서 ‘시간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느림의 실행에서 핵심적’이라고 썼다. ‘포근한 분위기의 찻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공간이 느림을 주는 것이며, 시간을 잊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과제’라고 썼다. 몰입을 도와주는 공간이 있어야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부지런한 동물로 사람들은 흔히 벌·개미를 든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은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참다운 문화적 시간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현대 문명인들의 조급함은 동물세계에서는 볼 수 없다. 벌과 개미도 하루의 대부분을 달콤한 무위로 보낸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 위선자들을 보지 못할 뿐’이라고 했다. 그저 손발을 바삐 움직인다고 시간이 아껴지고 생산성이 오르는 게 아니다. 그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게 되지는 않더라는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해보지 않았는가. 시간 활용을 잘 하려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생각을 하려면 시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과 그럴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김용석은 이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가 아니라 ‘자유가 우리에게 진리를 보게 하리라’”고 표현했다. 한국인이여, 그러니 이제 제발 좀 그만 좀 뛰자.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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