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복지부가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의 약가 인하를 단행한다고 밝힌 가운데, 제약업계가 “제약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정부 정책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2일 약값 거품을 줄이고 국민의 약품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괄적인 가격 인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관련 규정 정비를 추진 한다”며 “정비가 끝나면 국민 약값 부담이 연간 약 2조1000억원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개편안은 ▲계단식 약가제도 폐지 ▲동일 성분 의약품에 대한 동일 보험 상한가 부여 ▲상한가격 인하 및 기등재 약가 조정 등이다. 특히 복지부는 기존의 계단식 약가 제도를 폐지하고 동일 성분의 의약품에 대해 동일한 보험 상한가를 부여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특허가 만료되는 오리지널 약은 특허 만료 후 70% 선으로, 복제약은 59.5% 선으로 모두 1년간 인하할 예정이며, 1년이 지난 뒤에는 오리지널약과 복제약 모두 53.55%로 상한가격을 적용한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건강보험 등재 약 가운데 8776개 품목의 가격이 평균 17% 내려갈 전망이다. 정부의 발표에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소비자들은 반가운 기색이지만, 제약업계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약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정책”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약 산업의 주요 성장 동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약 개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복지부는 이번 약가 인하 계획과 함께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복제약 판매와 불법 리베이트를 통해 기업을 유지해오던 제약 산업의 관습을 없애기 위한 ‘제약산업 체질 개선책’으로,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 역량을 갖고 있는 기업을 뽑아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가 ‘신약 연구개발에 힘쓰는 기업’을 원한다고 하면서 일괄적인 약가 인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제약업계는 연구개발(R&D)이나 신약 개발에 엄두를 낼 수 없다. 결국 우리 시장을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다”며 의약 주권 상실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토로했다. 제약협회, 정부 약가 인하 방침에 “저가 필수의약품 공급에 차질 있을 것” 제약업계는 정부의 약가 인하 방침에 반발하며 “약값이 더 낮아지면 필수의약품 공급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약가 인하 정책으로 재정에 어려움을 느낀 제약사가 생산제품을 구조조정하게 되면,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저가필수약과 퇴장방지약 등을 일순위로 생산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일 한국제약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2조1000억원의 약값 인하 조치로 환자의 본인 부담과 건강보험재정이 절감된다지만, 대규모 약값 인하 조치의 장기적 부작용은 간과하고 있다”며 “약값이 더 낮아지면 필수의약품 공급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협회는 국내의 경우 소비자들의 약값 부담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나라의 1인당 약품비가 430달러로 OECD 평균인 477달러보다 낮고, GDP 대비 약품비 비중도 1.4%로 OECD 평균 1.5% 아래”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협회는 ▲국내 제약산업 기반 붕괴로 외국계 제약사의 영향력이 커지면 오히려 정부가 약값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점 ▲사용량이 아닌 약값 통제로 약품비 증가 문제를 해결한 외국 사례가 없다는 점 ▲신약 개발에 재투자할 최소한의 수익구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점 등을 이번 약가인하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제약산업에 미칠 영향력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현재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제약업계의 대대적인 매출 감소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태희 동부증권 연구원은 “제약사별로 오리지널약 비중에 따라 5~20% 매출 감소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약가 인하폭이 큰 오리지널약을 가진 제약사들이 단기적으로는 가장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약가 제도 개편안의 파괴력이 훨씬 크다”며 “약값을 평균 17% 내린다는 정부의 안이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은 있지만 12월 정부의 인하안이 확정되기까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제약업종은 또다시 늪에 빠졌다”며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했다. 또한 그는 “7월 외자업체의 원외처방 조제액은 작년 동월보다 8.9% 증가한 1975억원을 기록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국내업체의 7월 원외처방 조제액은 2.9% 늘어난 5353억원에 머물러 국내업체의 점유율은 작년보다 1.1%포인트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정보라 대신증권 연구원도 “내년 1월부터 일괄 약가인하가 시행되면 신규 복제약 가격은 기대가격보다 12.5% 낮아지고,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복제약은 최대 33% 매출이 감소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