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호 박현준⁄ 2012.02.27 11:07:07
30년 넘게 소아 심장 환자들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부검을 허락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사망 환자의 사인을 추정하면서도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심장 표본이 없어 후학들을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이다. 의료계 전반으로 보면 더 큰 문제는 장기 이식을 해야 하는데 사망을 해도 장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는 것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사회 각 층에서 장기를 사후에 기증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일본 심장 혈압 연구소와 미국의 하버드대학에 있을 때 각각 5천여개가 넘는 심장 표본을 갖춘 것을 보고 놀란 바 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국민들이 자동차 면허증 등에 자신이 사망하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기록해 놓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식 받을 환자가 순서대로 기다리다가 사망자가 생기면 급한 경우에는 헬리콥터로 이송해온다. 미리 사망자의 혈액 등 정보가 등록돼 있으므로 이식에 적합한 환자를 쉽게 찾아 정확하고 신속한 이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검이나 장기기증에 인색한 것은 유교 사상 때문이라고 한다. 공자에서 유래된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유교 사상은 조선 시대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데 인의 사상, 효제 사상, 예의 사상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남겼지만 체면 차리기에 급급한 면도 생겨났다. 장기기증 더욱 늘어야 생명 살리고 의학발전 시킬 수 있다 또한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라는 관념이 굳어져 물질적인 생산 산업, 공업 등을 발전시키는 데도 큰 장애가 됐다. 이에 더해 사망한 사람을 훼손하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해 부검이나 장기 기증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 중 ‘CSI’ 시리즈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CSI란 범죄 현장 수사를 뜻한다. 미국의 의학이 우리나라보다 시설이나 기술 면에서 한참 앞서 있는 것도 많은 부검을 통해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됐는데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부검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범죄를 밝히기 위해서는 법으로 부검을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화장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장기 기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하루 속히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의학의 발달, 사인의 정확한 규명뿐만 아니라 생명을 소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방송이 다루는 의학은 “너무 단편적” 평생을 의사 해도 잘 모르는 게 인체 내가 처음 본 우리나라 의학 드라마는 1980년대 방영된 ‘소망’이란 드라마다. 당시 신구, 한혜숙, 노주현 씨 등이 의사 역할을 했다. 전문적으로 질환을 상세히 표현하기보다는 인간관계, 빼놓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소재였다. 이어 미국 의학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의 의학 드라마가 시작됐다. 생명의 윤리를 강조하고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의 이야기, 수백억 원이 걸린 프로젝트 시술을 앞두고 응급실에 급한 환자가 왔다는 소식에 이를 포기하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주인공을 부각시킨 ‘종합병원’ 등 의사들이 아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강조하는 드라마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외과 의사가 자신을 과신하며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과 이에 맞서 순수함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모습을 그린다. 의학 드라마의 대부분이 이렇게 극과 극을 표현한다. 외과 의사가 인간적 의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강조한 ‘외과 의사 봉달이’, 환자를 우선시하는 의사와 병원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의사 사이의 문제를 부각시킨 ‘뉴 하트’ 등 모든 의학 드라마들이 그럴듯한 소재를 다뤘다. 그러나 모두가 외과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권선징악 주제가 함께 했다. 권력을 따라가는 모습은 병원의 현실과 비슷하기는 했으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또한 사랑이나 인간관계를 연속으로 그려내는 것은 좋았지만, 환자를 다양화해 그날로 상황을 끝내면서 질환의 치료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가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웠다. 미국의 ‘CSI(범죄 현장 조사팀)’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싸인’이라는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돼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드라마처럼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했어도 의사들 중 그늘에서 소신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했다는 첫 시도로서 좋았다고 본다. 전공의 마치고 법대 진학하면 의학과 법학 모두에 통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전하는 드라마들 특이했던 점은 외과 전공의가 법대로 가서 의학 전문 변호사가 돼 병원에서 불이익을 받는 환자들을 대변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듯 보이기는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의학은 전공의 정도로 공부해 갖고는 심판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어설프게 알면 모르는 것만 못하다. 우리 의학 드라마도 좀 더 전문성을 갖추고 생명윤리까지 심오하게 다룰 수 있게 진화되기를 바란다. 방송에서는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통해서 의학 전문 기자가 각종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내용을 시청자에게 알린다. 그러나 복잡한 인체의 건강 문제를 통합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의학은 모든 분야가 연관돼 있으면서도 각 분야마다 특수 전문 분야로 나눠져 있다. 40년을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각종 환자를 경험한 나도 한마디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10여년 의학 전문 기자를 하게 되면 다 아는 것 같이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착각이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