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환경 작가를 만나다]최현석 “이판사판 개판똥판”

조선시대 양식으로 21세기 한국 그리다

  •  

cnbnews 제278호 김대희⁄ 2012.06.11 11:54:37

“버스가스가 폭발한 사고가 있었어요. 그 버스에 탄 승객들의 생명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었죠. 정말로 큰 사고가 될 뻔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음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또 버스를 타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면 그때뿐, 금세 잊어요. 신경을 덜 쓰는 거죠. 이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런 현대사회의 모순점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서울 연희동 CNB갤러리에서 만난 최현석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이나 이슈 등 사건과 문제점들에 주목하며 이를 한국화로 기록하고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자신의 감정을 현대미술로 표현하며 그 속에 풍자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초창기에는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들을 그렸던 그가 이처럼 일반 회화와는 달리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된 계기는,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촛불시위’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전시를 하면서 과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MB산성’(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한복판에 설치된 컨테이너 차단벽.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일명 ‘명박산성’이라 불림)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느끼게 됐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어요.”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의 정치-사회 풍속이 등장하는 향연과 의례라는 특별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 그 기록화들은 그에게 문화적 충돌로 다가왔고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열망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화들이 눈에 더 잘 읽힘을 느꼈고 그때부터 기록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했다. “전시 중이던 이조시대 향연과 의례 기록화에 나오는 사회, 정치, 문화적인 모습들은 현 시점의 우리나라 사회 및 정치, 문화적인 모습들과 시대만 다를 뿐 형식과 규율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즉 과거와 현재는 시간에 따른 겉치장만 다를 뿐 몸 속 뿌리 깊게는 사회적인 행동과 지향하는 생각이 같거나 동등한 흐름이란 거죠. 현재 대중들과 같이 소통하고 보며 느끼는 것들과, 몸에서 받아들이는 감성들을 한 화폭에 합해서 소통하려 해요. 현재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 내 감각을 통해 필터링돼 기록화로 풀이 되죠. 이로써 그림 속에는 바로 이 곳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나만의 독특하고 현실적인 기록방식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수많은 사건사고 중 어떤 이슈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걸까? 그는 “내 감정에 맡긴다”며 “울컥하는 사건이나 이슈가 소재가 된다”고 했다. 관찰을 잘하는 그는 뉴스에 나오는 사건 그대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속에서 한번 걸러 느낌과 감정에 따라 작업한다. 사건+감성(상상)=기록이다.

“내 감정이 솔직하게 투영되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가끔은 공격적이기도 해요. 그동안 나를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점점 범위를 넓혀 구제역이나 촛불시위, G20 정상회의, 버스가스폭발사고 등을 다뤘어요. 일례로 인사동을 가보면 화랑이 참 많죠. 최근에는 사람도 엄청 많아졌는데 정작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없더군요. 대중들과 소통의 장을 만들지 못하는 미술계의 문제점들을 보고 기록화로 작업했어요. 또한 ‘아트페어 작품 실종도’라는 작품이 있는데 매년 열리는 아트페어를 가보면 작년에 봤던 그림이 또 보이고 내 눈에는 다 똑같은 그림처럼 보였어요. 이를 풍자해서 그렸어요.” 더 많은 내용 넣기 위해 위에서 아래 내려보는 부감법 사용 그는 한 화폭에 많은 것을 넣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식의 부감법을 쓴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히 담는다. 현시대의 모습에 자신의 상상과 풍자적인 요소를 넣어 기록화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먼저 글로 자신의 감정을 적는다. 머릿속에 구도를 잡고 연필로 스케치를 한다. 여기에 자신의 감정이 섞이고 작업이 끝나면, 먹선으로 그리고 연필로 그린 밑그림을 지운다.

채색은 수채화 느낌의 전통방식인 수간채색으로 한다. 이유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방식보다 우리 전통방식으로 하는 게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이 이야기에 더 힘을 실어준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내가 이해해야 남들도 이해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생각을 이어가며 그리기에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민화의 풍자와 해학을 담아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했다. “결국 기록화에는 많은 것들과 더불어 나의 지배적인 감각이 표출된다고 봐요. 감상자들은 기록화를 보면서 나만의 표현과 현실의 기록이라는 점에 대해 공감하리라 생각해요.” 그는 “예술은 상업성과 만날 수 없다”며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지 돈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썩어감을 정화시켜주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맞춰간다면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다.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을 그는 “조절”이라고 했다. 요즘 사건이 너무 많아 할 이야기도 많아져 어느 순간 정리가 안 될 정도라는 얘기다. 화면에 더욱 많은 내용을 넣고 싶을 정도로 현실 세계에선 하루도 쉬지 않고 엄청난 일이 터지지만, 그렇다고 많은 내용을 그림에 담으려 들면 복잡해지면서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최근 더욱 작업이 힘들지만 그는 사건에, 감정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려 노력한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도 점점 강해지고 그래서 걸러내는 과정이 절실하다는 소리다. 반대로 그림 소재가 무궁무진해진다는 측면도 있다. 그는 “세상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릴 게 넘쳐나지만 그럴수록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기록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에 해답은 없어요. 문제의식을 갖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던지는 거죠. 설치나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를 하고 싶지만 한국 사회에 적합한 한국화를 우선은 계속 해 나갈 계획이에요. 자극이 되고, 때가 되면 변화하는, 다방면의 작가, 오래 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든 자신을 생각할 때 “현실에 굴복할까 두렵기도 하다”는 그는 “내가 뱉은 말에 최대한 책임을 지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오늘도 두 눈을 부릅뜨고 사회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대희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