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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작가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시리즈로 새롭게 주목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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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8호 왕진오⁄ 2012.06.11 12:46:16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그들을 둘러싼 기계적 오브제들의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기괴한 형태를 통해,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일상의 풍경을 그리는 박은하 작가. 박은하(30)는 2007년 중앙미술대전 선정, 2008년 송은미술대전 입상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두각을 드러낸 젊은 작가다. 최근에도 서울시립 난지 창작스튜디오 및 장흥 아뜰리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는 등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세오갤러리, 관훈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진행하면서 작가는 일관성 있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소비사회의 집약적 공간인 코스트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시간을 할애하는 오피스 등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과 소비재들의 뒤섞임을 통해 물질에 대한 뒤틀린 욕망,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 욕구를 그려낸다. 그의 작업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침투된 여러 가지 상황을 그려냈다. 많은 사람들이 PC방에 앉아 컴퓨터에 열중하며 빨려 들어가는 모습, 지하철이란 기계에 접속되어 앉아 있는 사람들…. 그녀가 그린 공간에는 사실적 표현 위에 기계와 욕망, 기호들과의 상호관계라는 추상적 표현이 함께 들어가 있다. 작가는 파스텔조의 색과 선을 사용하며 사물이나 사람이 있는 현실의 공간을 그리고, 그들로부터 빠져나오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운을 액체가 흐르는 듯한 형태의 등고선으로 그려냈다. 그것은 화면을 떠돌아다니는 존재이기도, 또한 인간과 사물이 서로 접속돼 있음을 나타낸다. 우리가 봐야할 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그냥 작업복인가? 박 작가는 ‘근원적으로 환경에 지배를 받는 인간존재’라는 관념뿐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편리해지기 위해 만든 기계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심리적 흐름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전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인간과 오브제에 극단적으로 집중하는 최근의 작업 주제로 'Ecce Homo’를 선보였다. ‘Ecce Homo’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의 라틴어로, 작품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어떤 종교적인 색채나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Ecce Homo’를 차용하지 않고, 상징적인 단어로서 이 표현을 채택했다. 온전한 형상의 인간일 수도, 작업복으로 유추할 수도 있는 한 개인을 특정 공간에 위치시키면서, 볼록거울이나 극적인 원근법 등의 극단적인 시각적 장치를 통해 이 인물 또는 작업복에게 시선이 쏠리도록 한다. 박은하가 말하는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는 인간과 오브제에 극단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세상 속 삶의 모습이다. 그가 주제로 삼은 ‘이 사람을 보라’는 유럽 여행 당시 현지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크리스천 용어에서 얻어왔다. ‘Ecce Homo’에서 기독교적인 내용이 아니라 ‘주목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봐 달라고 작가는 말했다. 작품들에는 시대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시작점으로서의 노숙자들, 그리고 사회 문제가 됐던 사건들이 들어와 있다. 진실을 회피하는 현실 속에서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개선을 도모하는 작가의 의식이 여실이 배어 있는 셈이다.

작가는 반 고흐처럼 이상주의를 동경하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현실론자였다고 고백했다. 밥그릇에 대한 고민이 화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일 때였다. 어느 정도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제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는 그는 “부조리하거나 이것은 아니라는 장면을 그리고 싶어졌다”고 한다. “생의 기로로서 미술을 대하는 것처럼 시대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관점으로 모순된 세상의 현상성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젊은 작가 박은하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지만 이제 전시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하는 즐거움도 더 자주 갖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마블링 패턴에 대해 작가는 “캔버스에 마블링을 찍는 것이 힘들었다”며 “마블링과 현실이 조합된 이미지를 그려봤다”고 말했다. “마블링 패턴이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해 본 적은 없다. 그 당시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그린 뒤 나중에 이미지에 대한 해석을 하려 한 것 같다”는 설명도 나왔다.

이러한 패턴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준 것 같다는 그는, 현대라는 사회 속에서 쉽게 시스템에 적응하고, 기계적 상황에 순응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타계하려는 욕망에서 자신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마블링 패턴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과 연계된 인간을 마블링 패턴으로 표현 그는 “과거 예술은 현실에 대해 비판과 제언을 했는데 현재는 그런 연계성이 없어지고 개인성이 강한 의미 없는 일상이 그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중산층에 대한 비판이 아쉬웠고, 그런 의미에서 내 작업을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작가는 자신의 그리는 패턴의 의미처럼 작업에 변화를 주고 싶어한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 버린 패턴이 작업 진행에 얽매임을 가져 오는 현상에 대해 이 꼬리를 없애는 것에 고민이 많다고 토로한다. ‘Ecce Homo’ 주제의 작품들은 작가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비평, 그리고 해석이 이뤄지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가 선호하는 이상주의자처럼. 그러나 이상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듯….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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